보안원의 아들이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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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원의 아들이기 때문에... 나는 청진시에 있는 소학교,고등중학교를 거쳐 사회에 첫 발을 옮긴 순수한 북조선의 평민이다.한 마디로 빽 없고 힘 없는 인민의 한 사람인 것이다.내가 이 글을 올리게 된 사연은 북조선의 인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수준이 아니라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고난의 시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지난 90년대는 더욱 심했다.그렇게 잘 나가던 보안원들도 쌀이 없어 굶주리는 일들이 많았는데,출신성분이 나쁜 나와 각별히 지냈던 보안원의 아들(별명:똘만이-이름 철만)과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어느날 배낭을 메고 야산에 심겨진 강냉니 밭 서리에 나서게 되었는데... 탈북자들 누구나 잘 알겠지만 자고나면 여기저기에 굶어 죽은 사람들 때문에 통곡 소리가 매일 끊이지 않는 터라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또 그것이 내가 살아야 가족들이 살 수 있다는 한가지 희망뿐이다. 다행히 강냉이 밭을 지키던 인민군 5명은 잠을 자느라 누가 코 베어가도 모를 깊은 잠에 빠져 우리는 강냉이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그리고 배낭에 한가득 짊어진 것도 모자라 주머니에도 손에도 가득 들고 조용히 빠져나와 교원리를 흐르는 냇가로 건너 청진으로 가는 도로로 걸어갔다. 그런데 한창 수학철이라 여기저기에서 불시에 배낭을 검열하는 보안원과 인민군,보위부원들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도로 낀 산 옆으로 걸어야 했다.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여자,남자,어린이,노인 등 닥치지 않는다)은 무조건 길 옆에 세워놓고 증명서를 요구한다.물론 증명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그것을 트집잡아 배낭을 뒤지고 주머니 등 옷 구석구석을 찢어질 정도로 찾아보고 조그만 트집을 잡아 폭행하고 심지어 구류장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렇게 한나절을 걸어서 겨우 직하리 협동농장 입구에 다다랐다.이제 조금만 더 가면 포항에 갈 수 있다는 희망과 이 식량으로 우리 가족들이 조금은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배고픈 줄로 몰랐다. 나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는데,하도 많이 굶어 몸에는 살이 보이지 않고 뼈가 보이는데 거짓말 보태지 않고 이야기 하지만 인간 도면 같아 보였다.뼈에 가죽만 남았으니 눈만 게슴츠레 뜨고 죽을날만 기다리고 먹는 음식은 토해내고 정말 세계에서 제일 살기좋은 북조선의 현실에 인민들은 한숨속에 죽지 못해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운이 없었다. 철길을 따라 반죽동이라는 마을을 지나가다 보안원의 불신검문을 받게 되었다.증명서를 요구하는 보안원에게 없다고 하자 다짜고짜 따귀부터 때리고 구둣발로 때리더니 팔을 꺾어 뒤로 묶어 놓더니 보안서로 압송하는 것이었다. 내가 소리 지르며 왜 그러느냐 박박 대들며 소리 지르자 내 입에 무슨 걸레같은 것을 집어 넣어 소리 지르지 못하게 했다.지나가던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그렇게 우리 둘은 묶여 보안서 사무실에 들어가 조사를 받았는데,친구인 똘만이는 조사도중 보안원인 아버지가 오자 배낭과 함께 집으로 갔다.당시 폭행했던 보안원은 얼굴이 벌개져 어쩔줄 모르며 허리굽혀 인사하고 또 인사하면서 잘못했다고 빌더니 주변에 앉아있던 보안원들도 똘만이 아버지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춰 비위를 맞추는데 그 꼴이 흡사 일제에게 빌붙던 매국노들의 인상과 같았다.더럽고 치사해 침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동안 굶은 나에게는 그런 힘조차 없었다. 그러더니 똘만이 아버지에게 몇개의 마대자루와 석탄,나무 등을 자동차에 싣고는 보안서 마당을 떠나갔다.보안서 창고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많은 마대자루와 석탄 나무 등은 불신검문에 걸린 사람들에게 빼앗은 물건들이고 식량들이었다. 똘만이를 보낸 보안서 한 사람이 나에게 오더니 나의 옷을 칼로 찢었다.그러더니 거의 알몸 상태인 나에게 각목(못이 대 여섯개 박힘)으로 패기 시작했다.이름도 묻지도 않고 그냥 고문하기 시작했다.얼마나 맞았는지 한 10여대를 맞고나니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자 나에게 물을 붓고 정신을 차린 나에게 두 보안원이 다가와서 나를 끌고가서 나무 의자에 앉히고는 팔을 새끼줄로 사정없이 묶었다.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묶고는 두 명이 양 무릎에 굵은 통나무를 대고 누르기 시작하자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새어나기 시작했다.뼈가 우스러질 정도로 나무가 우두둑 소리가 났는데, 그렇게 혼절하고 또 혼절하면 물을 치고 또 고문하고 이번에는 가죽채찍으로 앞 가슴과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나를 고문하던 보안원들도 힘이 들었던지 저들끼리 헉헉 대며 “야, 이 지독한 놈 봐라.다른놈 같으면 벌써 갔을텐데,아직도 살아있네”하더니 “이젠 좀 쉬자”하더니 나에게 몽둥이를 또 대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는 혼절하여 아예 일어나지 못했다.정신이 가물가물해 지면서 눈이 감겨져 그 이상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였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입에서 단내가 확 풍기며 온 몸에는 여기저기 피 범이 되어 상처 속에 허연 살이 드러나 있었다.입술에는 피가 달라붙어 있었고 눈은 크게 부어올라 앞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아무런 조사도 없이 그냥 폭행만 당하고... 단지 증명서가 없다는 구실로 나의 소중한 아니 우리 가족의 소중한 식량을 빼앗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밥은 소금국에 먹다남은 죽인지 무엇인지 두 숟가락 정도 주었는데 목구멍이 아파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하여 아무런 조사도 없이 15일간 감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그동안 보안원들은 나를 비행기고문,물고문,고춧가루 고문 등 수없이 많은 고문을 해댔다.어느날은 나에게 겁 주기 위해 내가 묶여있는 옆 자리에 다른 죄수 한 사람을 앉혀놓고 고문하더니 끝내는 죽이기까지 했다.그가 숨 넘어가는 것을 본 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나 하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가족들 생각에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뿐,이제 살아서 나가면 보위원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 모두 죽이고자 다짐하고 또 벼르기(복수하기 위한 기회)시작했다. 아마 그 초인간적인 힘이 나를 오늘까지 살려 주었는지도 모른다. 훗날 그 보안서를 나서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보안원이나 보위부 사람들이 배낭을 지고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 모두 빼앗고는 고문을 하고 다시는 입밖에 내지 않는다는 지장을 찍게 하고는 집으로 돌려 보낸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를 하는 사람은 그냥 보내되 식량 자루를 든 사람이나 식량 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들여 빼앗고는 고문하고 다시는 발설하지 많는다는 조건을 내걸고는 집으로 돌려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 돌아오니 똘만이는 나와 더 이상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똑같이 잡혔는데 누구는 식량 배낭을 빼앗기고 누구는 빼앗기지 않는 현실에 입이 쓰겁기만 했다. 나는 그후 살기위해 바닷가에 가서 미역과 섭(홍합)등을 따다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가족들을 보양했다.우리집은 다행히 나와 가족들이 힘을 합쳐 가족들이 뿔뿔이 헤쳐지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집을 팔고 거리에 나앉아 꽃제비로 생활하며 떠돌다 죽거나 사라지는 일들이 많았다. 먹고 살기 위해 식량을 구했지만 보안원들은 그 직위를 이용하여 식량을 빼앗아 저들 배만 채우기에 급했는데,이것이 오늘날 북조선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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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합쳐 김정일 타도하는 사역으로
그 정신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