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을 노예로 만든 공산주의자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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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숙청의 피바람 1953년 전쟁이 끝난 때로부터 1960년대 초까지 북한에서의 10여년은 참으로 무서운 청산과 숙청의 시기였다. 식이라고나 할 가. 어쨌든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중앙과 군부의 큰 간부에서부터 독립운동을 한 민족주의자 또는 공산당계열의 사람들일지라도 김일성의 사상을 지지하지 않거나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몰아서 무조건 숙청해버렸다. 종교인들 역시 첫 번째 숙청대상 이였다. 남쪽에서 <만민이 평등하다> 라는 공산주의 이념에 현혹되어 북으로 들어갔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남쪽에서 들어 온 사람들 중에서 자기들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남노당 당수였던 박헌영과 같이 미국의 <고용간첩>으로 몰아서 처형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에 가담하여 만행한자, 불복하는 악질지주로 규정된 사람들은 <반동분자>로 몰아서 가차 없이 총살하였다. 내가 살던 자강도의 깊은 산골 군 에서도 그 당시 한두 명씩 묶어세워놓고 는 총살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지금도 생생한 것은 그 총살당하는 사람들 중에서 한두 명이 를 부르며 죽는 것을 본 생각이다. 물론 그 후부터는 그런 소리를 못 치게 입을 헝겊 조각으로 막았던 생각도 난다. 그 때에는 어린 마음에 죽는 것이 무서울 텐데 살려 달라고 빌지 않고 왜 저런 만세는 부르는지가 의심스러웠던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1960년대 초 어느 여름날에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한 노인이 허약한 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우리학교 옆으로 난 신작로를 걸어서 힘겹게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학교 선생님에게 물어 보니 한설야 라는 이름난 작가인데 나쁜 글을 써서 추방되어 온다고 했다. 자강도 전천군에서 부터 기차가 없는 산골 군까지 100리가 넘는 길을 늙은 몸으로 겨우 걸어서 가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함경남도 산골에 3300볼트의 강전이 흐르는 전기 철조망을 두른 첫 를 세우고 반대파들을 모두 여기에 영원히 감금시키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은 그때에 말했다. <그들이 반항하지 않는 한 죽이지 말라. 자기들이 반대한 사회주의가 어떻게 승리 하는지 살아서 보게 해야 한다.>라고... 그러나 그들은 오산하였다. 소련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사회주의를 포기 했거나 진로가 보이지 않는 사회주의 마지막 길로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지금도 정적들을 없애버리기 위한 숙청의 피바람은 끊이지를 않고 있다. 무시무시한 사형수의 도끼날과 같은 <당의유일사상체계 확립의10대원칙>이란 것을 만들어 놓고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물론 그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모조리 재판 없는 처형 또는 수용소에 투옥 시킨다. 특히 1990년대 초에 강행되었던 전 쏘련 유학생들의 처형 사건은 유명하다. 1991년에 최고사령관 자리를 물려 받은 김정일은 군대도 안 갔던 자신이 군부를 한손에 그러쥘 구실을 물색하던 중 전 쏘련 군사 아카데미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 쏘련의 비밀경찰에 흡수되었다는 누명을 씌워 수백 명의 유학생들을 모두 체포하여 재판도 없이 도끼로 까서 처형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북한에는 소련에 보내서 유학시켰던 의학대학 졸업생들과 군사병종별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학생들이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으며 그 가족들과 친척들 모두 수용소에 갇히거나 산골로 추방 당하였다. 이렇게 되여 국민의 피로 얼룩진 선군독재의 군사파쇼제국이 현재 북한에 존재한다. 날이 갈수록 정치범 수용소는 차고 넘쳤고 지금 북한의 여러 곳에 설치된 정치범 수용소들에서는 십여만 명 이상의 정치범들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어찌 보면 북한 전체가 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2009.10.07 김태산 다음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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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요. 김정일 밑에서 빌어먹는 놈들이 나쁜 짓은 더 하는 것 같아요. 인간 말종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