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뿌리내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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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흐믓한 소식이다. 연일 뉴스에서 들리는 신종플루 어쩌니 하는 우울한 소리와 풍년임에도 불구 폭락하는 쌀값이며 어느새 문밖에 떠억~~하니 버티고 서있는 동장군의 위엄스런 모습에 다소 주눅들었었는데... 발랄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핑크빛 소식을 전해주는 그녀의 사랑스런 얼굴이 선하니 머리속에 떠오른다. 지금 살고있는 곳은 충남 금산...인삼으로 유명한 곳이라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었다. 친구이기는 하나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살은 아래... 그치만 그렇게 많이 살아본 세상은 아니였지만 나이가 많다고 다 철든게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다 철없는게 아님을 대충은 깨닫고 있어서였을까? 어린 나이에 고생을 바가지로 해서 해서였는지... 조숙한 그녀에게 은연중 진한 공감대를 느끼면서 마음을 터놓았었고, 그렇게 나이를 초월한 친구로써의 우정은 우리들의 만남을 이어주었던 타향의 낯선 거리 골목에서부터 대륙을 넘어 오늘날까지 근 팔년의 세월을 돈독하게 이어오고 있다. 그녀...하며는 잊지 못할 이야기가 떠오른다. 태어난곳도 자라온곳도 서로가 달랐지만 단 하나 한국으로의 목숨건 탈출의 나날들속에서 함께 동고동락을 하면서 서로의 지나온 나날들을 털어놓고 위로도 받군 했었다. 그녀의 고향은 함북도 무산이다. 아시는 분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무산 하며는 앞을 보아도 돌, 뒤로 보아도 돌 사방천지에 돌가루 풀풀 날리는 광산지역이다. 그녀의 아빠 역시 무산광산 광부였고 고난의 행군 시절 함북도와 북한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였듯이 당과 수령께 충직한 노동계급으로써 배급 한톨 안주어도 열심히 출근하였단다. 이런 남편을 보다 못해 그녀의 어머니는 황해도 친척집으로 쌀구하러 간지 보름째, 1남2녀중 장녀였지만 아직 어렸던 그녀에게 덜컥 지워진 엄마의 빈자리는 그렇게나 버겨웠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러던 어느날 출근했던 아빠가 광산의 광석을 나르는 운반차에 치여서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고... 돌아올 날짜가 지나버린채 감감소식없는 엄마와 다리를 다쳐서 누워 운신도 못하는 아빠, 그리고 이미 바닥나버린 쌀독...어찌 하여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더랬다고... 그래서 옆집 아줌마(몰래 중국장사 하시는 분)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더니 개를 중국에 가져다 팔며는 돈 좀 많이 받는다고 하였단다. 멍멍이, 그랬다. 집에는 몇년째 정성스레 키워오던 멍멍이가 있었다. 북한에서 팔려면 쌀 몇키로면 될 가격이였지만 강건너 중국은 개값이 제법 비싸단다. 배고프다고 울부짖는 동생들과 힘없이 누워계신 아빠께 꾸어온 옥수수가루로 죽을 쑤어놓고 어쩔수 없이 온 집안식구들이 사랑스레 키우던 누렁이를 배낭에 넣어서 짊어진채로 옆집 아줌마를 따라 나섰단다. 때는 7월 초 막 두만강은 붇기 시작하였고 비가 퍼붓고 번개가 내려치는 날일수록 경비가 느슨하다고 하여 그날을 택했단다. 조심스럽게 물가로 들어가서 가는데 어느 순간에 그만 굽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풍덩 빠져버렸단다. 등뒤로 짊어진 배낭위로 숨쉬게끔 멍멍이머리만 내놓았는데 물에 빠져서 허둥지둥 하는 사이에 개가 빠져나왔단다. 그런데 저를 팔려고 가는줄은 꿈에도 모르는 멍멍이가 주인이랍시고 구하러 오더란다. 개가 헤염을 그렇게 잘 치는줄 난생처음 보았다면서... 그래서 개꼬리를 부여잡고 겨우 살아나와보니 중국땅이였단다. 하마트면 물살에 휘말려 어쩌면 처녀귀신이 될뻔 했더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그날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멍멍이를 부여안고 산설은 이국땅 산골짜기에서 꺼이 꺼이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저는 나를 목숨바쳐 살려주었는데 나는 먹고 살려고 저를 고기집에 팔아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가슴아팠단다. 누렁아 나를 용서하라고... 마음같아서는 다시 데리고 집으로 가고싶었지만 손가락만 빨고있는 동생들과 다쳐서 운신도 못하시는 아빠가 어른거려서 정말 어쩔수 없었노라면서... 어느 누가 사람만, 사람만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뚝뚝~~떨구길래 듣고 있던 우리도 다 함께 콧물을 훌쩍이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각자 가슴속에 묻어둔 아리고 시린 아픔들을 다독이면서... 그 개를 팔아서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약도 사서 엄마가 오시기 전까지 동생들과 아빠를 살렸다면서 장군님도 못살린 우리 가족을 멍멍이가 목숨으로 살렸다고 했다. 아무튼 그런 가슴아픈 추억들을 마음 한구석에 꼬옥 담아놓은채로 나름대로의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가 드디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단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푸껫으로 간단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너 정말 출세했다. 북한같으면 어디 신혼여행이 다 뭐니?" 지도 그런줄 잘 안댄다. 워낙에 짠순인지라 그냥 가까운 국내로 갈려고 했는데 신랑이 굳이 고집을 하여서 큰 맘 먹고 동남아로 간단다. 아들 딸 떠억~~하니 낳아준 당신에게 이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랬다면서... 신랑을 바꿔달래서 축하드린다고, 하늘아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달라고 그랬다. 사랑스런 아들 딸 앞세우고 비록 순서가 조금은 뒤바뀐 느낌은 있지만 순백의 드레스를 입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니 내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흐믓하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억척스레 뿌리를 내리면서 야무지게 살아가는 그녀의 옆에서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지켜줄 대들보같은 신랑 또한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성실하고 듬직한 가장이기때문에... 화목한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속에서 통일의 2세들 얼마나 또한 씩씩하게 자라날것인가. 그렇게, 그렇게 통일로 이어지는 조그만 징검다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줄기차게 놓여지고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어느새 나의 눈길은 책상위에 놓인 탁상달력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결혼식만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달음에 달려가 진심어린 축복을 하늘만큼 해주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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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무산인데요 방갑습니다
힘든시기도 끗끗이 이겨낸님.진심으로 추카드려요
매끄러운 글 솜씨가 마음을 사로잡네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