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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1)
Korea, Republic o 장현석 1 878 2010-02-27 11:59:17
안녕하세요

뉴스코리아에서 좋은 글이 있어 이렇게 퍼왔습니다.


-가난은 우리에게만 내려 진 저주일까?

2010년 02월 05일 (금) 14:37:38 뉴스코리아 qor829@naver.com


그녀의 나이는 24살이다. 17살 때 먼저간 어머니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한 뒤, 4년 전 남한에 정착하기까지 그녀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탈북민들마다 각기 다른 사정과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북한을 빠져 나온다는 것이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다 점에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이 글은 그녀가 탈북과정 2년여에 걸쳐 겪었던 어려움과 그때의 상황이 적힌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종종 탈북민들이 수기나 기타 활동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하는 경우 정체모를 사람들로부터 협박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지는 그녀와 상의 끝에 실명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또 문맥상 이름을 사용해야 만 할 경우 가명을 쓰기로 했다.

그녀는 현재 대학생이다. 모든 일에 의욕이 넘쳐 있다. 그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공부도 하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한다. 특히 “나도 그랬듯이 가난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며 “봉사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많은 부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고 있다.

그녀에게 처음 수기를 부탁했을 때 “초라했던 나를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었다. 몇 차례 설득 끝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호기심정도나 유발시키고, 신비스러운 이야기꺼리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승낙했다. 또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북한을 알리고 북한의 실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유익하게 쓰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어렵게 마음을 바꾼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하며, 그녀가 바라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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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을 나간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가는 이유도 모르는 채 나랑 동생은 엄마를 잃었다.
집안 곳곳에는 아빠의 지독한 술 냄새만 가득하다.

직업도 없고, 딱히 할 만한 일도 없는 아버지는 사실 소문난 술주정뱅이였다.
물론 우리 가정에만 있는 드문 일은 아니니까 신기하지도 않다.
거의 대부분의 가정들도 직업이 없고, 공산주의 특성상 국가의 일에 보수도 없이 종사하고 점점 더 가난해지는 가정들에는 아이들의 굶주림만 더 해지는 게 현실이었다.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도 더 이상 가난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해졌다.
엄마가 사라진 후에도 아빠의 국가에 대한 증오와 사회에 대한 혐오감은 걷잡을 수 없는 타락으로 이어졌고, 나랑 동생은 하룻밤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었다.

낮에 텃밭을 가꾸고 농사를 하면 아빠는 부족한 도시락을 들고 오징어 잡으러 나가신다.
밤새 오징어를 잡아봤자 그거로 살 수 있는 건 쌀 1~2키로 정도가 전부다.
안 그래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수입인데 해안경비대 군인들에게 오징어의 반을 빼앗기고 나면 아빠의 어깨에는 거의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앉아서 굶어 죽게 생겼었다.

곡식보다 잡초가 더 많은(북한에는 살초제가 귀함) 텃밭에서 하루 종일 풀과 씨름했다.
고등학교를 1년만 더 다니면 졸업이었던 나는 엄마대신 동생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느라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다.

1년 내내 농사 해봤자 반년 양식도 못되는 옥수수며 농산물을 하룻밤이라도 안 지키면 누가 와서 다 훔쳐갔다. 사실 지킬만한 가치도 없지만 그래도 지킬 거라고는 그것밖에도 없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로 나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매일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빈자리와 점점 더 심해지는 경제위기는 17살 나에게 정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고 고난이었다.
종종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될 영원한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도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질 무렵이면 시골집들의 초라한 굴뚝으로 시커먼 연기만 힘없이 뿜어져 나오고 엄마에 대한 나의 사무치는 그리움과 원망이 연기와 섞여 하늘 어디론가 날아갔다.
나는 궁금했다.
가난은 우리에게만 내려 진 저주일까, 아니면 세상 모든 이들이 이렇게 사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어린 동생과 나를 두고 엄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아빠는 왜 직업이 없으며 길가에 늘어나는 버려진 아이들의 시체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리고 나랑 내 동생은 과연 어떻게 될까.
어느 하루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아빠는 조금이라도 벌어보시려고 매일 밖에서 이것저것 알아보신다.
결국 종일 헤매봤자 일거리를 찾지 못한 아빠는 또다시 술에 취해 이 세상과는 멀리 떨어 진 곳으로부터 보내진 사람처럼 몸을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입고 나갔던 단벌옷을 그냥 입은 채 원망스러운 잠꼬대를 하며 아빠가 주무신다.
밉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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