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정찰조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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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밀로사건 이라고도 부르는 공화국 영웅 이중영웅 불사조 칭호받은 사람들 전부 간첩이래 청와대 습격갓다온 불사조두 간첩이래 적후교본에 나오는 리경림사건두 조작이래 (김신조와 함께 내려왓다가 살아온 사람 불사조 칭호를 받앗고 그가 한강얼음속에서 코만 내놓고 어두울때까지 기다렷다고 전인민군적으로 아침 기상후 얼음속에들어가15 분 잇는 훈련3 년간하다가 감기 몸살로 고 생만하다 그만두엇다) ( 리경림 사건 은 5군단 63 저격여단 802 부대의 5 인조가 남조선 나와서 임무를 수행하고 귀대하던중 휴전선인근서 적들과 조우 당시 전쟁때쓰던 갱도안에 잇을때 부조장이던< 부조장이 당비서> 리경림이 조원한명과 함께 적을 유인하여 일주일간을 휴전선 부근에서 전투 국군 연대장이하 600여명을 사상 당시 5군단장 리을설이 직접 대남방송으로 < 경림동무 용기를 내라 조장이하 동지들은 무사 히 귀대햇다 >격려하고 이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일 친애하는 지도자는 헬기로 밤에 탄약과 전투식량을 휴전선부근에 뿌렷다고 청천강 군관학교 < 강권제2 군관학교 로 경보 저격장교양성 학교 > 교육강령에 나와잇다 ) 강권군관학교 교장도 잡혀갓다 제2 전투훈련국장도 잡혀갓다 현직장령 30여명 좌급 수백명 쏘련 군사유학생 사건후 영웅들이 싹 쓸이햇다 외국나갓다온 군인치고 무사한건 월남전쟁 참가자 뿐이다 공군과 해군에는 지금도 기술유학을 중국과 러씨아에 의존하고잇다 중국 장춘에잇는 항공학교 6 대대는 조선인 대대엿다 이들도 중대장 이하 승진못한다는 지시가 내려왓고 쏘련가서 비행기 만타던 조종사 300 명도 일반 기술군관으로 비행기에서 내리웟다 강원도 세포군 토성이라는곳과 강원도 회양군에는 대남 영웅들의 묘가잇다 일천여명에 달하는 이들의 이름들도 지우는 놀음이 벌어졋다 조국통일과 남조선 혁명을휘하여 용감히 싸우다 히생된 전우들을 기리며 하고 줄줄이잇던 이름들 커다란 합장묘와 개인묘들 시신은없고 사품만잇다고 하엿엇다 구후 보위사령부가 출판한 비공개도서 ( 보위영장 김정일) 에는 위대한장군님께서 이미 80년대에 도보 정찰조를 료해할데대한 말씀이 계셧고 평양주변에서 모란봉 태평산 이라는 대호로 날던 무전의 주인도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이엿던 리용무 라는것을 밝히는 성과를 거둘수잇엇다라고 서술하엿다 인민군 기강의 전형이라고 내세웟던이들이 모두 간첩이라니 전군이 뒤숭숭하엿고 그후부터는 수류탄을 몸으로 덥는 사람들이 영웅으로 더많이 생겨나기 시작하엿다 육군에 김강철 공군에 길영조 이들은모두 사고의 히생자들을 영웅으로둔갑시키고 차마 서해교전용사들은 전형으로 내세우지 못하고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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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民族保衛省) 정찰국 소속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하였던 사건.
언제 1968년 1월 21일
어디서 서울 세검정고개
누가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
어떻게 불심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 무차별 난사, 시민 살상
왜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하기 위해
본문
이 사건은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한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휴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하여 수도권까지 잠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자 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하는 한편,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들이 살상당하였다.
군 ·경은 즉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그날 밤 현장에서 비상근무를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총경 최규식(崔圭植)이 무장공비의 총탄에 맞아 순직하였다. 그날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金新朝)는 그동안 김일성의 허위선전에 속아 살아왔음을 깨닫고 한국으로 귀순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한 향토예비군을 창설하였다.
- 위계질서 부족 : 당시 남침하였던 124군 부대 소속 31명은 하나같이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이들였으나 상위, 중위, 소위 등의 급조된 계급을 부여받았을 뿐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는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 북한산을 북악산으로 착각하여 그곳으로 침투함으로써 시간 지체 발생
- 침투 전 수행한 실전 훈련(개성시청? 대상 침투 등)에선 제한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하였으나 서울에 침투한 실제 상황에선 청와대 근처에서 발각된 후 대부분이 임무 완수보다는 퇴각 및 북상에 주 목적을 두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 국민들의 신고정신 경시 등 : 침투 도중 산에서 조우한 나무꾼을 두고 대원들 사이에 죽이자는 의견과 그냥 살려 보내자는 의견이 있었다던데 살려보내자는 의견을 낸 이들 중 다수는 그 나무꾼을 죽인 후 시신을 묻기 위해 언 땅을 파는 것이 싫어서였다고도 합니다.
일사분란 =>일사불란
몇년 전 선물용 송이버섯을 들고 왔던 김재경 대장이 그 생존자라고 들은 듯도 합니다.
북에서 영웅이 되었겠군요.
남파되었다가 피격되어 복부가 찢어졌음에도 간신히 돌아간 무장공비 한명이 공화국영웅으로 칭송받았으며, 북한 특수부대의 지휘자가 되었다던가요.
사실대로 글을 올리세요.
조직 부국장이 이용무가 아니라 리봉원 으로 알고 있는데...제가 틀렸으면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