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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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찾는 듯이 군인들은 이곳저곳을 헤집으면서, 계속 뭐라고 서로 말했다. 2010년 03월 02일 (화) 03:23:39 뉴스코리아 qor829@naver.com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전히 차가운 공기는 온 몸을 집요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그래도 잠시라도 눈을 붙인 덕에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밥은커녕,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한 채 걷다보니 다리가 후둘 거렸다. 다들 너무 많이 지쳐 있었지만, 우리가 있는 곳에 결코 머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차가운 새벽길을 걸어가는데 자그마한 오솔길이 나왔다. 이젠 가시나무가 마구 엉켜 있는 숲으로 가지 말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로 걷고 싶었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니 설마 위험한 일은 안 생기겠지 하면서 조심스럽게 오솔길로 걸었다. 오솔길을 100m정도 걸어가니 조금 넓은 길에 합류하게 되었다. 오솔길보다는 좀 더 용기가 필요했고, 우리는 결국 용기를 내기로 결심하고 걸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우리가 원하는 중국의 한적한 마을이 나올 것 같았다. 배고픔도 잊고, 여기저기에 이슬이 배어들어가 쓰리고 아렸던 상처들도 잠시 잊었다. 그 길로 조금만 더 극복하고 걸어가면 그때의 괴로움과 고생이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예상치 못한 상황가운데 갇히게 되고, 극도의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어디선가 지프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소리는 점 점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날도 채 밝기 전이고, 인적이 드문 산길에 자동차 소리가 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점 점 더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는 소리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흩어졌고, 길 양옆으로 마구 들어가 박혔다. 심장이 마구 뛰었고 너무 무서워서 숨을 들이 마실 수가 없었다. 키가 크고 무더기로 자란 억센 풀 무더기 속에 몸을 숨겼다. 다행이도 나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 있더라도 동생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이 주변에 있을 텐데 엄마는 어디쯤 숨어 있을까, 혹시 우리 중에 누구 한명이라도 발견되면 어떻게 할까? 동생이랑 내가 잡히면 어떻게 할까? 그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열심히 달려오던 자동차가 우리가 숨어 있는 숲의 가까운 곳에서 시동을 멈췄다. 우리 숨도 멈추고, 온 몸의 피도 멈추는 것 같았고, 온 세상이 얄밉도록 고요했다. 동생 손을 꼭 잡고 무더기 채 자란 풀 속을 헤치고 그 속에 머리를 깊숙이 박았다. 바로 앞 길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변방부대 군인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왠지 알고 좇아 온 것 같이 우리가 숨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춘 사람들.. 뭔가를 찾는 듯이 군인들은 이곳저곳을 헤집으면서, 계속 뭐라고 서로 말했다. 우리가 숨어 있는 곳까지 제발 오지 않길 바라며, 불편하고 힘든 자세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제발 우리 가족을 피해가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화려한 중국어는 가까이 들릴수록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얼마 안 있어서 자동차에 다시 시동이 걸렸고, 차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듯 했다.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방금 전 군인들이 다 타고 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너무 놀라서 한참을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그 산속에는 우리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숲에서 나오는 게 두려웠다. 아무도 없어 보이는 길에 가족을 노리는 무서운 누군가가 숨어 있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잔뜩 겁에 질린 움직임 소리들이 들렸다. 한참 만에 가족은 한명도 빠짐없이 다시 만나는 또 한 번의 기적을 경험했다. 나와 동생은 방금 전 우리를 추적해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새 아빠와 엄마는 방금 전 사람들이 중국 변방대 군인들이라고 말해 주셨다. 관련기사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1) · 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2) · 17세 소녀의 탈북이야기(3) · 17세 소녀의 탈북이야기(4) 뉴스코리아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코리아(http://www.newskorea.info)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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