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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6)
Korea, Republic o 장현석 1 669 2010-03-07 13:59:58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적이 없는 대륙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 03월 06일 (토) 22:35:32 뉴스코리아 qor829@naver.com


한번 추격을 당하고 나니 더 걸을 수 없었다.
1년 전 부모님이 먼저 걸으신 길이였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 걸었다.

새 아빠와 엄마는 엉뚱한 길로 가게 될까봐 자꾸만 사방을 살피셨다.
나침반도 없고 지도도 없는 상황에서 눈썰미 하나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종종 엄마는 나지막했지만 밝은 말투로 ‘이 길이 맞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러다가도 때로는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니라 왼쪽 길이 맞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막연하게도 느껴졌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을 이쪽이고 저쪽이고 하면서 안내했기 때문이었다.

희귀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유창하게 들리고, 잎이 무성한 잣나무에는 잣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추격을 당할 때의 두려움은 잠시 잊고 평화로움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세상이 그토록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인지 처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다.

중국 땅에는 북한처럼 벌거벗은 산이 없었다. 어디가든 무성한 숲이고 숲속에는 수 종류의 새들이 노래하고 있고 늦가을까지 익은 머루향이 지그시 눈을 감게 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산기슭에 잘 정리되어 보이는 밭들에는 콩이며 옥수수들이 엄청나게 여물어 있었다.

민가와 떨어져 있는 밭들의 곡식은 북한과는 달리 지키는 이도 없었다. 꿈꾸는 것 같았지만, 생시였다.

세상이 우리가 들어오던 것과는 달리 모두가 다 가난하지는 않다는 것을 하나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금 새 중국의 아름다운 가을을 느낄 수 있었고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어디서 엄청난 과일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멀지 않은 곳에 과수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사방을 살펴보다가 우리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란색에 붉은 빛이 어울린 사과 배 과수원이 한눈에 그림처럼 들어왔다. 가족은 한참을 넋을 읽은 채 과일을 움켜쥐고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인지, 늦가을까지 무르익은 과일의 진 맛인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서로 제일 크고 잘 빛깔 좋은 과일로 따서 두 개씩 먹었다.

배불리 먹고도 나와 동생은 빛깔 고운 과일을 가방에 몇 개 챙기려 했었다. 우리를 지켜보시던 엄마는 이젠 그렇게 안 해도 배고픈 고생 없을 테니까 무거운 거 챙기지 말라고 하셨다. 아쉽지만 그냥 출발했다.

사실은 그런 과수원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마지막으로 보는 게 될까봐 빈손으로 떠나는 게 못내 아쉬웠다. 앞으로 보게 될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새 날이 훤하게 밝아왔다.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적이 없는 대륙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가에 늘어진 과일나무들, 잘 익은 옥수수밭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 선 울창한 산림이며 모든 게 다 어색하고 신비스러웠다.

갑자기 흉년이 들어 수확할 것도 없는 북한의 농장들과 밭을 일구느라 나무들을 다 뽑아버린 벌거벗은 산림들이 떠오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 북한은 그렇게도 가난하게 살까. 왜 그렇게 가난하면서도 자기들이 가난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살까. 누가 과연 북한을 가난하게 만들었을까...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낯선 의심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자꾸만 치밀어 올라왔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피부로 느끼고 온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북한을 떠나 중국에 와 있다는 사실과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멀고 험한 길을 와버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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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현자유 2010-03-07 15:27:29
    감동..감동...저도 가을 풍경을 너무나 좋아합니다...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17세 소년의 놀라움이 너무도 아름답게 잘 묘사되어 있네요...잘 읽었습니다....제발 자주 좀 올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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