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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7)
Korea, Republic o 장현석 2 722 2010-03-11 15:52:42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오직 ‘죽지 않고 살아 버티는 것’이었다.

2010년 03월 10일 (수) 22:49:25 뉴스코리아 qor829@naver.com


여기저기에서 양들의 울음소리와 소들의 씩씩하고 거만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경음기의 활기찬 소리도 들렸고, 이곳저곳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잘 피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다.

우리는 날이 밝은 관계로 또 다시 길이 아닌 산속으로 걷기로 결정했다. 엄마의 말로 중국인들이 탈북자를 신고 할 경우 상당의 상금이 있다는 것이다.

결코 방심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주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 법한 곳으로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전날 밤 강을 건널 때 하얗게 불었던 발은, 밤새 얼고 녹고를 반복하고, 다시 새벽녘에는 이슬에 젖고 또 불어서 신발에 꽉 차올라 왔다.

언제쯤이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걸어야 이 길이 끝이 있을까,

이렇게 막연함이 한 가슴 가득한데, 그래도 이 막연한 길마저 멈출 수 없는 나와 내 가족은 탈북자라는 것이 깨달아지는데 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북한을 떠날 때는 차를 타고 출발하고, 편하게 이동하고 좋은 곳에 도착할거라고 생각했고,

며칠 안 되어 곧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탈북과정은 내 기대와는 달리 정말 힘든 과정이었고, 목숨을 걸어야 만하는 순간순간 이었다.

아주 조금씩 나는 내가 결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상실감과, 조금 나아졌을 뿐, 내 삶은 결코 완전히 바뀌기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뀐 것처럼 약간 흥분한 듯 기분이 참 좋았다. 어쩌면 조금 만 더 북한에 있었더라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굶어죽지 않았을 거라고 차마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스러운 기분이 들지만, 마음 한 편으로 몰려드는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소외감은 또 다시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내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거나,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 하지만 고향을 떠났고, 내 조국이 어디인가에 대한 허무함과 숨어 지내야 만하는 불안감들이 나를 혼돈스럽게 했다. 그래서 진지하게 나를 진정시킬 것을 작정했다.

나는 내게 가장 절실히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게 가장 원했던 것은 오직 ‘죽지 않고 살아 버티는 것’이었다.

사실 그랬다.

굶어 죽게 생긴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끊어지려고 하는 호흡을 연장 시켜 줄 밥 한술 물 한 모금이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은 당시 상황에서 고향을 떠났다거나 조국이 어디인지에 대한 허무함 같은 감정 때문에 우울해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내 나는 내게 정말 간절했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슬퍼하기에는 너무나 감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깨닫고 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걸 깨닫는 사이에 가족은 길가에 옥수수를 날거로 씹어 먹어가면서, 과일도 씻지도 않고 그냥 먹어가면서 부모님이 1차 목표로 정하신 중국인의 산막(산에 지은 작은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며칠 만에 처음 열어 본 출입 문, 그리고 처음 앉아 본 온돌방이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국인 아저씨는 부담스러울 만큼 친절하셨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자꾸만 말을 걸어오시면서 당신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으신 듯 자꾸만 환하게 웃어 보이셨다.

아마도 환영한다는 뜻, 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냐는 뜻인 것 같았다.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중국에서의 첫 번째 고마운 분이셨다. 아저씨는 냄새나고 초라한 우리 가족을 왜 그리 반가워 하셨는지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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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에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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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손02 2010-03-11 16:34:40
    "굶어 죽게 생긴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끊어지려고 하는 호흡을 연장시켜 줄 밥 한술 물 한 모금이었다."

    어쩌면 이 한마디가 현재 식량난 속에 고생하고 계실 북녁동포분들의 내심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 아닐까 하여 가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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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현자유 2010-03-11 21:39:21
    제가 장담하건대, 이 소설이 출간된다면, 201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소실이 될 것 같습니다....무엇보다도 문체가 뛰어납니다...글쓴이의 사고의 결과 깊이가 느껴지는 매우 훌륭한 문체를 지니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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