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진보주의자가 80년대 운동권 분께 고합니다 : freechal님께 드리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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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freechal님(이하 선생님이라 칭하겠습니다.)의 '80년대 운동권의 고백'이라는 글을 보고 나름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는 것이 옳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먼저 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 칭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편한 옷을 입은 느낌은 아닙니다. '내가 진보주의자일까?' 라는 것은 저 스스로도 항상 자문하는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위대한 지식인 카(E. H. Carr)가 말한 '역사의 본질, 인간의 본성은 진보를 향하고 있다'는 명제에 깊은 동의를 한다는 점에서 넓은 범주의 진보주의자 축에는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름 용감하게 '진보주의자'라 칭해 봤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봤던 선생님의 다른 댓글들을 보면 선생님은 스스로를 주저없이 '진보주의자'라 칭하시더군요. 저로서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도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하며 따지는 것이 나름 이론적 측면에서는 효용성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것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또 실제로 그것을 분명하게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면이 혼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좌우'의 개념이 섞여 버리면 '좌우'라는 개념과 '진보, 보수'라는 비슷하고도 다른 개념의 혼란으로 인해 더욱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곳에서 말하는 이념적 표현은, 진지한 학술적 구분이 아닌 상식적인 (이것마저도 모호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사회통념에 따른 것임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누가 어떤 주장을 하면 '아~ 저 사람은 보수(진보)주의자구나'라고 생각하는 그런 모호하지만 일반적(?)인 판단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께서 주장하시는 내용은 통상적인 진보주의자를 자임하는 이들의 주장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되려 요사이 보수진영의 브레인으로 활동하는 '뉴라이트'계열의 분들의 주장과 많이 닮았습니다. 더구나 선생님께서 스스로 소개하신 이력, 예컨대 80년대 운동권 참여와 그 후 생각의 변화 등의 내용은, 현재 '뉴라이트'라 불리우는 분들의 이력과도 많이 흡사합니다. 그 분들도 예전에 운동권이었던 분들이 많았죠. 저는 선생님의 개인적 생각과 경험이 틀렸다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만의 인생이 담긴 이야기니까요. 어찌 제가 감히 선생님의 인생을 부정하겠습니까.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 역시 다른 이들의 인생을 (자신의 생각만으로) 판단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감히 선생님의 생각이 틀렸다 말할 수 없지만, 반대로 선생님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틀렸다 말할 권능을 선생님 역시 갖고 있지 않으십니다. 선생님께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으니, 저도 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물론 제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이기 때문에- 제 주장의 논리적 근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왜 제가 선생님과는 다른 생각을 갖는지에 대한 이해는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저 역시 80년대 대학을 다녔습니다. 선생님께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겠지만, 당시에 대학은 비단 운동권만이 학생운동의 주체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앞장서는 그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엔 대학생이라면 거의 모두가 학생운동에 직, 간접으로 참여하고 있었죠. 오죽하면 우스갯 소리기는 하지만 '(가장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음,미대생들도 돌을 깨서 날랐다'라는 말이 회자되었겠습니까. 당시 저 역시 운동권에 몸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취지에 일정부분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소위 '운동권' 학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죠. 그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 독선적 태도. 둘째, 교조주의적 태도. 셋째, 최대주의에 몰입된 모습. 첫째, 독선적 태도. 거슬러 생각해 보면,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주장은 대개 이러했습니다. 먼저 정의와 공정성, 평등함이 무너진 우리 사회를 거세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이런 '썩어빠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민중(혹은 노동자)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그 방법론은 대개 '싹 갈아엎자'는 혁명론이었습니다. 걔 중에는 그런 주장 중에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던 이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옆에서 보면 확고하고 결의에 차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확신에 찬 나머지 다른 이들의 말을 들을 줄 모르더군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시 저는 그들의 주장에 일정부분 동의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평과 정의가 살아있는 천국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비판 내용이 나름 근거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우리 사회가 '갈아엎어버릴 쓰레기'같은 사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무작정 갈아엎는다고 천국같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믿지도 않았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사는 어디나 비슷합니다. 좋은 사람 있고, 나쁜 놈 있고, 공평과 정의가 좀 더 잘 지켜지는 사회가 있는 방면에, 그렇지 못한 곳도 있고... 우리는 대개 공평과 정의가 잘 지켜지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부르지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발전한 겁니다. 반면에 우리 사회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으며, 건설적 비판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켜 줄 촉매제임을 믿습니다. 물론 이런 제 생각이 정답이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과거 운동권 친구들은 이런 제 말을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더군요. 또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공공연하게 북한의 체제를 찬양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제겐 충격이라기 보다는 실소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당시 모든 정보가 폐쇄되다시피한 상황이었기에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들에게서 역시 독재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북한은, 이곳 남한에서 어린애들에게 심어주었던 '머리에 뿔달린 사람들'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주체들도 아니었습니다. 제한된 정보만으로도 북한의 극도로 폐쇄된 사회와 신앙과도 같은 비정상적 독재가 분명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남한에서 독재와 싸운다는 사람들이 또다른 독재를 보고도 눈감은 척 못본 체 한다는 것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둘째, 교조주의적 태도. 첫번째 언급한 문제와 상통하는 것으로,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독선에 빠져있다 보니 대화라는 것이 불가능하더군요. 그들은 저와 대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물론 이는 비단 운동권 학생들만의 문제점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런 면이 있죠. 지금의 저 역시 항상 스스로 그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 애씁니다만, 얄팍한 지식의 힘에 매몰되어 교조주의적 태도를 보이기 일쑤입니다. 다만, 그들의 단점이 더욱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그런 교조주의적 태도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경계심이나 자각도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선생님'역할을 하려는 태도를 숨기려 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큰 프라이드를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셋째, 최대주의적 태도. 최대주의. 쉽게 말해 '모 아니면 도'란 태도죠. 모든 것을 얻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물론 때로는 성사가 어려운 큰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용감무쌍한 태도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몸까지 불살라가며 가치를 이뤄내려는 운동권 학생들의 모습에는 일순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이런 점이 제가 그들에 대한 많은 비판적 생각을 갖고 있었슴에도 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즉, 내가 차마 용기내어 못하는 것을 저들은 몸으로 부딪치니까, 그런 점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앞서 말한 '최대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는 이 최대주의야 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민주주의 사회란 생각이 다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의견을 수렴해나가는 시스템인데, 어떻게 내 생각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받아들여질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내 생각만이 100% 반영된 정책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냥 꿈이지요. 그것도 허황된 꿈. 함께 어울려 사는 한 그런 사회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대주의는 '독재'의 변종일 뿐입니다. 내 생각을 100% 반영하려면 독재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즉, 그런 면에서 과거 운동권은 스스로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애쓰면서도, 안으로는 독재적 요소가 다분히 존재했습니다. 물론 이는 과거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지금의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세력들 역시 여전히 이 함정에서 빠져 있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현재의 진보세력을 욕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진보, 보수 나눌 일이 아니죠. 보수나 우파는 이 최대주의로부터 자유로울까요? 결코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운동권의 주장에 일부 공감하고 행동을 함께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고 거부했습니다. 변명같기는 하지만 그래서인지 저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볼 때, 집회 등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적습니다. 과거 운동권 세력이었던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많습니다. 하지만, 또 그 때문에 그들에 대한 마음의 빚도 있습니다. 제가 감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그들이 나서서 한 면이 있고, 민주화라는 대업에 그들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당시 제게 운동권은 지지와 비판이 혼재된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히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운동권이었던 선생님과는 애초부터 조금 다른 시각들이 존재했다는 것과 그 후 생각의 변화 과정도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난 과거에는 이리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더라.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선생님의 과거 경험과 생각의 변화 과정을 존중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개연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개연성은 어디까지나 선생님 개인의 범위내에서만 유효합니다. 무리하게 다른 이들에게도 선생님의 경우를 대입시키려 들지 마세요. 저처럼 과거 운동권의 모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진보적 가치를 갖고 그 가치를 지키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과거 운동권에 대해 비판을 했다 해서 그것을 근거로 지금도 여전히 진보계에 몸 담고 있는 과거 운동권출신인 분들을 함부로 비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과거와는 생각이 많이 바뀌셨죠?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정당한데, 다른 이들은 옛날 그대로의 불합리성에 빠져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꼭 선생님처럼 생각이 바뀌지 않더라도, 과거의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좀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좌파, 진보성향을 갖게 된 분들도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을 살짝 이야기해 본다면, 앞서 말씀드렸듯 저 자신이 학생운동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 오랜 사회생활동안 소위 '좌파 내지 진보적 가치'를 앞세우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분이 있었다해도 사회생활 중에 그런 면을 알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러다 재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난생처음 자신을 '당원'이라 소개하는 분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를 '좌파 내지 진보주의자'라 자임하는 분들과 나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과거 운동권 학생들과의 좋지 않은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었고요.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껏 다방면에 걸쳐 여러 분들과 좋은 교류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이 분들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거처럼 북한의 찬양하는 머저리같은 사람들도 없고 (만약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사이에서도 매장당할 겁니다.), 과거 운동권의 활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권 출신 특유의 나쁜 버릇이 간간히 보이기도 하고,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화가 없는 분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선생님께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의 과거에 가졌던 가치관과 생각의 변화, 그리고 지금을 포함하는 선생님의 인생이 소중한 만큼, 선생님과 생각을 달리 하는 다른 이들의 모든 것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다소 건방지다 여길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힘주어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는 상호존중이 바로 '민주주의적 태도의 근본'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디 좋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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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군요... ( 그게 당연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