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사태와 천안함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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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년 천안문광장에서 류혈사태가 잇은후 평양에서 진행된 13파세계청년학생축전시 잇은일이다 각국의 대표들은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앞에서 규탄시위들을 하려하던참이엿다 허나 어림도없엇다 시위 는 고사하고 어디 대사관주변에서 소리한마디 지를수잇는 공간조차없엇다 대사관주변은 수만명의 사람들이 주야로 춤을추고잇엇다 축전 전기간 북한은 중국대사관을 춤마당으로 포위하고 지켜주엇다 그때 평양시내의 모든대학은 물론 군사학교들 기간기업소들까지 순번을 짜주어 교대로 춤을추게한 북한의 공로를 중국은 고맙다고 하엿다 춤을 추다가 쓰러진 학생들도 적지않게 발생하엿다 천안함 사건을보니 그때 천안문 사태의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든다 중국은 눈감고 아웅할것이다 아니그들은 아직 교전국이다 한국전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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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로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천안'이라는 글자는 같군요.
당시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유학을 위한 공부를 하던저도....
그사건을 남에서는 그리 기록했는데,북과 중국에서는 그리 했었군요.
학사대님
저는 민주주의를 믿고,역사의 발전을 믿는 사람입니다.
님또한 북녘의 남겨 놓으신 동포들을 사랑하고,그들이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수 있는 날이오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학사대님에게 그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북녘의 동포들이 그날을 맞았을때...우리가 해야할일이 많은데,거기에 대해 우리는 너무 안일하고 준비가 안돼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조금더 생각하고,조금더 고민한다면...그 고통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왕이 통치하는 왕정제도로 말미암아 퇴보해 오다가 두갈래로 갈라졌는데 한쪽은 더욱 퇴보하는 쪽으로 한쪽은 그나마 조금 회복하는 쪽으로...
공산주의는 왕정보다 더욱 역사가 퇴보한 것이요
자유민주주의는 역사가 조금이나마 회복되어갈 길을 열어놓은 제도라고 정의하고 싶군요.
인류의 역사는 발전되어온 역사가 아니라
퇴보하여 온 역사이며 인간의 사상도 타락하여온 역사이죠
그래서 역사는 회복이 필요한 것 이고요.
사상도 교정이 필요한 것이죠.
공산주의 보다 더 나쁜 근본문제는 유물론이며
유물론보다 더 나쁜 사상의 타락은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은 그야말로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허무맹랑한 미신이죠.
민주주의는 북한이 해방후 먼저시작하엿습니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산업화를 이루고 생활수준높은 민주주의를 누리고잇지만 정치민주주의는 북한이 해방후 5년동안 아니할수없엇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공고화되여갈수록 민주주으는 중앙집권제적 민주주의로 다시 전체주의로 바뀌는 과정을 우리는 격어보앗습니다
결국 군사파쑈국가로 전락하는것을 보고서야 속앗구나 이나라를 뜨는것이 최선이로구나하고 생각하엿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아직 역사발전의 법칙으로 굳어질려면 시간이흐르고 민주주으의 적이 없어져야한다고봅니다
그적은 곳 북한과 중국 공산독재입니다
해방후 북한이 시행한 무엇을 정치민주주의라고 말씀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학사대님 같은 분이 국정원이나 통일부에 꼭 근무하셔야 하는데요
이것에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 민주주라 할 수 없죠.
남한은 1948년 5월10일에 정치민주화를 시행하였는데 북한은 언제 정치민주주의를 시행하였는지요?
아마 제가 알고 있는 정치민주주의와 다른 민주주의를 말씀하신듯 합니다.
남한의 정부수립후 지금보다 더 많은 선거 즉 더많은 지방자치 즉 동장 이장가지도 투표로 뽑았습니다.
박정희 정부들어서면서 민주주의가 후퇴 즉 작은 선거(시장 구청장 군수 동장 이장선거 등등)를 없애고 대통령이 임의대로 임명했죠. 대통령과 국회의원만 국민이 뽑았습니다.
박통때는 국민들이 이승만 정부시절에 비해 국민들의 선택권이 줄어들어 사람들이 박정희를 독재로 느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