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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월드컵 북한축구선수들중 숙청당한 사람들 있나요?
United States 1966 0 468 2010-06-21 10:14:08
그저 소문인지 아니면 실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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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10-06-21 16:23:47
    예, 엄연히 존재했던 현실입니다..
    당시 뽀루뚜갈과의 경기에서 전반 24분만에 3골을 넣었는데 유세비오가 교체해 들어오면서 4:3으로 역전패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경기 전날 북한대표선수들의 "미인전술"에 넘어가 여자들과 밤을 보내 후반에 들어와 맥을 추지 못했다는 후문입니다.
    북한으로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사상투쟁회의가 열렸지요, 여기서 약삭바른 당시 문지기였던 이찬명과, 공격수였던 박두익이 모두불어 버리는 바람에 비자루방어로 유명했던 중앙방어수 신영규(주장)를 비롯하여 또다른 중앙방어수 림중선, 전방미드필 한봉진, 중앙공격수 오윤경, 최종공격수 박승진 그리고 당시 책임지도원이였던 연승철과 명례현 등이 혁명화 대상으로 길주팔프공장과 아오지 탄광, 경성도자기공장 등으로 좌천됐고 그후 북한대표팀 주장 신영규는 지주아들이라는 성분때문에 사회적으로 영원히 매장돼 정치범 수용수에 감금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로서 북한축구는 8차월드컵을 기점으로 내리막 길을 걸을수밖에 없었던거지요.
    이것이 바로 악마의 제국-김정일 독재제국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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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덜덜 2010-06-21 22:35:31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되는거... 부디 모두 무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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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2010-06-22 01:18:11
    최전방 공격수 박승진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요덕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의 책 '수용소의 노래'에 보면 자세하게 나옵니다. 박승진은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 다시 사회로 나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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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은 2010-06-22 08:40:49
    경기에서 졌다고 수용소에 보내지 않습니다. 1966년 당시 수용소 행은 이들의 발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공을 김부자에게 돌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 자본주의 물 들어 왔다고 말이죠. ㅋㅋ

    아무튼 문닫고 살던 우물 안 개구리들이 세계의 벽을 실감했을 겁니다. 북괴의 국력을 대변한다고 보면 될 겁니다. 스포츠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물론 남미의 경우는 축구쪽으로 특화했지만 ... 동계올림픽 등엔 맥을 못추죠. 못 사는 나라들이니까..

    그러나 북괴는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군께서 늘 함께 하시며 지도를 하기에 ㅋㅋ

    아Q처럼 정신적 자기 승리법으로 버티면 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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