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나는 '혁명'하는 사람… '풍선'이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것"
글쓴이 최보식 조선닷컴 선임기자
출처: 조선닷컴/ 입력 : 2011.03.06 22:27
대북전단 4억장을 북으로 날려보낸, '삐라의 원조'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대형 비닐풍선 직접 개발, 삐라 6만장 한번에 달아… 전단지도 비닐로 바꿔 목표지점에서 터뜨려… 두세 시간내 평양 도달
경기도 포천시의 한 지점에서 그가 탄 차를 뒤따라갔다. 인적없는 야산의 좁은 진창길을 올라가 공터에서 멈췄다. 거기에 주차된 2.5t 트럭의 짐칸을 열었다. 안에는 고압가스통 80여개와 풍선·전단·나일론줄·곡괭이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민복(54)씨는 “대형 풍선 하나에 수소를 가득 채우려면 가스통 두 개가 필요하고 풍선 한 개에 전단 6만장을 매단다”고 설명했다. 허름한 점퍼와 트레이닝 바지, 낡은 운동화 차림이다.
탈북자인 그는 ‘삐라의 원조’다. 대외 직함은 ‘대북풍선단장’이다. 단원은 한 명뿐이지만. 그런 그가 지금껏 북한으로 삐라 4억장 이상을 날려보냈다. 북한으로 날아간 삐라의 9할이 그의 손에서 비롯됐다.
[사진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 이민복씨는 "북한이 포격을 공언한 임진각은 상징적이지만 풍선 날리기에는 안 좋은곳"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풍선 날리는 날이 따로 없다. 기상예보 자료를 보고 바람만 맞으면 뛰어나간다. 삐라 내용은 독재자에 저항한 중동사태에 관한 것이다. 재작년 8000만장, 작년에도 8000만장…, 2005년부터 그렇게 날렸다. 이걸로 김정일을 무너뜨릴 것이다. 바깥세계를 알려 북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그 체제를 무너뜨리게 할 것이다.”
열흘 전 조선중앙방송은 마치 그를 겨냥하듯 이렇게 말했다.
“추악한 인간쓰레기들(탈북자 지칭)과 너절한 물건짝들을 가지고, 일심으로 뭉치고 선군으로 위력한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를 흔들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신념을 허물어보려는 것은 백 년 천 년이 흘러도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어리석은 망상이다.”
그의 곁에는 사복 경찰 두 명이 늘 붙어 있었다. 그는 24시간 경호 대상이다.
“지난 정권에서는 국정원과 경찰이 동원돼 나를 쫓아다니고 막았다. 풍선을 날리러 가면 내 차 번호를 알아 즉각 쫓아왔다. 전화도 추적됐다. 아예 전화기를 꺼버려도 현장에서 잡히기 일쑤였다. 장비를 압수하려고 하면 싸우기도 했다. 이제는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의 ‘사무실’은 공터 한쪽에 있는 컨테이너였다. 의자도 탁자도 커피도 없는 컨테이너의 바닥에 앉아 인터뷰를 했다.
―남북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이 “임진각을 비롯한 반공화국 심리모략 행위의 발원지에 조준격파사격이 단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러 탈북단체들이 매스컴을 불러 임진각에서 풍선 행사를 한다. 임진각은 상징성은 좋지만 풍선 날리기에는 가장 나쁜 곳이다. 거기서 날리면 영락없이 경기도 연천·포천 쪽으로 떨어지게 돼 있다. 바람이 북쪽으로 안 부는 데도 날린다. 내가 이들에게 풍선 날리는 걸 가르쳤다. 하지만 다들 꽹과리만 친다. 북한이나 좌파세력에 빌미를 준 것이다. 북한이 임진각 포격까지 공언했으니 불상사가 날까 걱정이다. 자제해야 한다.”
―본인도 이제 더 이상 풍선을 날리지 않겠다는 건가?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떠들면서 해오지도 않았고.”
―어찌 답변이 모호하다.
“요란하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풍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레이더에도 안 걸린다. 북한에서도 이를 막으려야 막을 수 없다. 증거를 찾아낼 수도 없다. 풍선에 날짜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풍선 날리기로 북한과 ‘잘 해보려는’ 우리 정부를 곤란하게 만든 적 있다. 한때 당신은 “우리도 정부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 정부에서 ‘좀 자제해달라’고 주문했을 때 ‘알겠다’고 했다. 이는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겠다는 뜻이다. 풍선 날리는 것은 내가 떠들어야 안다. 스스로 안 떠들면 시끄러울 게 없다.”
―말 그대로 ‘자제’할 생각은 전혀 없고?
“풍선 날리는 것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김정일과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다. 중동 시위가 일어날 때 ‘북한은 왜 움직임이 없느냐’고들 말한다. 바깥세상을 모르는데 어떻게 시위를 하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줘야 한다. 풍선은 훨씬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다만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도 매스컴에 나오지 않았나.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너무 행사성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단체들끼리 서로 다투어 ‘삐라 이벤트’를 벌인다. 성경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나. 선한 일을 할 때 요란 떨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알려지는 게 목적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정권 때 특히 풍선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이 심했다. 고압가스법으로 막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피 흘려 쓰러지는 북한 주민들을 보지 않고, 그렇게 만든 강도를 더 의식하는 격이다. 고압가스법으로 금지하겠다면 그 자격증을 따면 된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헌법이었다. 선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풍선은 선교 목적이고 북한 주민들의 기본 인권을 위한 것이다.”
당시 남북 군사실무회담 때 북측 대표단은 삐라 수백 장을 모은 상자를 회담장에 가져와 던지기도 했다. 개성공단 통행 제한 및 차단은 물론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지금껏 36차례 항의가 있었다.
―당신은 “여기에 정치 논리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명백한 정치적 행위다.
“잘 봤다. 사실은 김정일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저쪽은 절대악(惡)이고 거짓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찰 없이 지혜롭게 하고 싶다. 우리는 ‘타도’니 ‘뒤집어엎으라’는 말을 안 쓴다. 정치적 비방을 하지 않는다. 있는 진실을 알려줄 뿐이다. 삐라는 누룩과 같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누룩은 보이지 않는 균이다. 하지만 이것이 빵으로 부풀어 오른다. 일단 삐라가 떨어지면 북한 전역을 부풀게 할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은 빽빽하게 적힌 삐라의 힘을 이해하지 못 한다. 정보의 홍수니까. 너무 조잡해 누가 읽겠나 한다. 그러나 정보에 굶주린 북한 사람들은 한 자 한 자 뚫어지게 본다. 폐쇄사회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북한 정권에서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북한은 자존심이 있어 저렇게 떠들지 않는다. 그만큼 다급하고 심각한 것이다.”
그는 북한농업과학원의 전문연구원이었다. 탈북자로는 처음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도움을 받아 1995년 서울에 왔다.
“그쪽에서 살 때는 순수하고 충실했다. 내가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 ‘쌀은 공산주의’라는 김일성 말에 남포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했다. 하지만 증산 연구를 하면서 농업 종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경영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중국식 개인농(個人農)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전국적으로 행하면 수확이 두 배 더 올라가는 걸로 나왔다. 개인농은 자본주의이니 반동사상이다. 하지만 내가 젊고 순수하며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걸로 면책됐다. 대신 입을 다물라고 했다. 그때부터 내 고민이 시작됐고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은 풍선을 날리게 됐나?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나?
“사실 1990년 여름 북한에서 남한 삐라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갈등하던 시기였다. 그 삐라로 6·25가 남침임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삐라는 북한 실정과 맞지 않았다. 당시 동구권 시위를 다루면서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가 나왔다. 이러면 북한 사람들은 모른다. ‘웽그리아’, ‘폴스카’, ‘로무니아’다. 소위 대북 전문가들이 작성했다는 게 이런 식이다. 인민군을 타깃으로 한 삐라에는 여자나체 사진을 넣는다. 물론 보기는 본다. 보고 나면 ‘썩어 빠진 부르주아 문화가 이런 것’이라고 느낄 뿐이다. 또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월드컵’으로 쓰면 ‘남한은 역시 미제식민지’라는 걸 믿게 해준다. 김일성을 배 나오고 혹 튀어나온 모습으로 인민들을 손갈퀴로 집는 만화를 그린다. 이는 반감만 낳는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안다. 귀순한 뒤 국방부에 찾아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밥탁(밥그릇) 싸움’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2003년부터 ‘풍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고무풍선에 전단을 한 장씩 매달아 보냈다. 기압차에 의해 30분도 못 가 풍선은 터졌다. 원하는 지점까지 날아갈 수 없었다.
그는 연구원의 본색을 보였다. 2005년 가로 1.8m, 세로 11m의 대형 비닐풍선을 직접 개발했다. 전단 6만장(7㎏)을 한 번에 매달 수 있다. 전단지도 종이보다 3배 가볍고 물에 젖어도 괜찮은 비닐로 바꾸었다. 목표 지점에서 풍선을 터뜨리는 기술도 진화했다. 화학용액으로 줄을 끊게 하다가 이제는 소형 전동기를 이용한다.
“백령도나 연평도에서 날리면 두세 시간이면 평양에 닿는다. 열 시간이면 함경북도까지 날아간다. 목표지점에 풍선을 폭파시키는 것이 핵심기술이다. 과거에는 융단폭격했다면 지금은 스마트 폭격하는 것과 같다.”
―정권도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굳이 탈북자인 당신이 나서서 풍선을 날린 이유가 뭔가?
“당초 내게 농촌경제연구원에 들어오라고 했다. 북한 농업을 연구할 게 뭐 있나. 북한은 개인농만 하면 해결된다. 정치구조가 잘못됐을 뿐이다. 정권만 무너뜨리면 된다. 어쩌다가 나는 ‘혁명’을 하는 사람이 됐다. 남한에서 감옥을 견학한 적 있다. 죄수 혈색도 좋더라. 여기서는 굶어 죽진 않겠다 싶었다. 급하면 감옥에 뛰어들어도 되고, 그런 배짱이 생겼다.”
―풍선과 삐라 제작 경비는 군(軍)이나 국정원에서 대주나?
“풍선 하나 날리는 데 12만원이 든다. 정부 돈을 받은 적은 없다. 교계와 일반 시민들이 보내준다.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대로 달러·북한돈·약·라디오 등을 전단 봉투에 넣는다. 북한 동포 직접 돕기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나. 재작년 가을부터는 DVD를 보내기도 한다. 전단에는 꼭 후원자 개인 및 단체의 이름을 적는다. 풍선 날리는 장면을 찍어 후원자에게 이메일로 보내준다. 나는 풍선을 보내는 심부름 역할을 할 뿐이다.”
―밥벌이 직업은 없는데 어떻게 생활이 되나?
“쓰지 않으면 돈이 나갈 데 없다. 남이 입던 옷과 가구들을 감사히 받아 쓴다. 처음에는 풍선 날리는 건 무상봉사로 했는데, 후원자들이 내 생계를 걱정해 작업비를 가지라고 했다. 아내는 자식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내 사명감을 이해했다. 하지만 같이 살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명절이나 여름 휴가철에도 나는 풍선을 날려야 했으니….”
―향후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보나?
“때가 됐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과 같은 것이다. 북한 정권은 폐쇄정책과 우상화, 핵무기를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뭐 그리 많은지 온갖 방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풍선밖에 없다. 그 안으로 바깥 세계의 정보를 넣으면 된다. 소련을 붕괴시킨 것은 ‘라디오’라는 분석이 있다. 주민들을 더 깨우쳐야 한다. 어느 순간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똑똑한 남한 사람들이 왜 그리 풍선을 이해 못 하는가.”
지난 토요일 그는 강원도 김화(金化)에서 또 풍선을 날렸다. 한 번 나가면 풍선 80개쯤 날리는데, 이날은 바람이 까다로워 10개밖에 못 날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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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은, 좌파 한겨레와 결별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너무 잘난듯 자신을 광고한다, 종교 선교에 집착한다보수 우익이 탈북자들에게 섭섭할 만큼 편의를 봐주지 않았다는 개인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등등이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겨레가 나라를 위태롭게하는 좌파들이라는 점에서 이를 찬성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 종교 (기독교) 를 떠난 사람이므로 풍선 사업에 특정 종교를 전도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리고 보수 우익이 탈북자들의 해외 여행에 어떤 불이익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추측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면으로 보아 그분의 하시는 일이 남한과 북한을 위해서 엄청나게 큰 중대한 일이라는 점에서 이민복님의 노력과 공적을 높이 찬양하고 위로와 격려를 드려야 마땅한 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민복씨가 잘난체를 한다거나 자신을 앞세운다는 말에는 전혀 공감을 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생활하는 모습을 유튜브 비디오 및 인터부기사를 통해 몇번 본적이 있는데 이분처럼 검소하고 아무 형식없이 오직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서 삶을 온통 바쳐 수고하는 분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이 이민복씨의 100분의 1만큼만 애국하는 정신과 용기가 있다면 김정일과 북한 문제는 1년도 안가서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북 심리전을 담당하는 한국 관계기관의 사정을 이민복님 인터부를 통해서 어느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 한마디로 대북심리 담당자들을 모조리 목아지를 비틀어 비료통에 처박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도 이민복님은 크게 불평하지 않고 그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국을 위해서 스스로 연구하고 발명하고 고안을 해서 풍선사업에서는 남한에서 명실공히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입니다.
직함이 대북풍선단장이라고 해서 단원이 여럿 있는 줄 알았는데 단원이 단 한명(이민복님 한명)이고 거처하는 사무실도 손님맞을 의자나 커피도 없는 허름한 콘테이너 창고입니다. 옷이나 가구도 남이 거저 주는 것을 사용하여 전혀 돈 쓸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민복님은 풍선사업에 관한한 회장님이고 사장님이고 총재님이고 대통령입니다. 그분은 CEO의 자격을 넘칠 정도로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후원금이 모아지고 하는 것에 대해 오해하거나 질투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나 나는 이분의 정성과 근면검소한 삶을 진정으로 고맙고 훌륭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분 헐뜯지 맙시다. 이분과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을 해 봅시다. 이분이 남한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 면이 있거나, 좌파들 세력에 대한 어떤 인정의 끈이 있고 보수우익에 대한 다소의 오해의 측면이 있다해도 이분은 절대로 좌파들 편이 아닙니다. 나는 그분의 헌신과 노력에 눈시울이 젖어올 뿐입니다. 남한 출신으로서 한없이 이민복님앞에 부끄럽고 대한민국 사람들의 생각없음에 대해 사죄를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 이민복님에게 자주 격려와 감사의 인사들 드립시다. 어렵고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을 구경만하고 잠잫고 있는 것은 국민된 도리가 아닙니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분들은 후원금이나 물품을 지원하면 더욱 좋고 그렇지 못할 경우라도 자주 격려와 위로의 말을 드립시다. 사람은 아무리 수고와 고생을 많이 해도 “ 감사합니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라는 인사 한마디에 고생의 수고로움이 따 씻어지고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고마움을 알아주고 노고를 알아주는 말 한마디가 인간 세상을 살만하게 해주고 나라를 구하는데도 큰 힘이 됩니다. 남을 인정하고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은 돈도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아낄 필요가 뭐 있습니까?
이민복 풍선단장님 감사합니다. 오해, 불인정 꾹 참으시고 계속 수고해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