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이명박 정부는 천민자본에 유린당하는 대한민국으로 방치할 것인가?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253 2011-04-04 17:34:41

[잠언 11:25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서로 잘살게 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制度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정치역사는 그런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별스런 실험을 다한 것이다. 그간 인류는 共産主義와 社會主義 실험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악마적인 제도인지를 구분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젠 시장자본주의의 흐름으로 인류가 가고 있는데, 거기에 賤民資本主義라는 것이 나와서 가진 자들에게 압제당하는 또 하나의 압제가 형성되고 있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하나님의 원칙에 서야 한다. 하지만 그 원칙을 거절할 자유를 가진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천민자본주의가 得勢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더 많은 부요창출을 이루는 길은 무엇인가? 그 방법론의 考察은 그야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다. 부요창출은 어디서 오는가? 진정한 시장자본주의의 성공에 있다고 본문은 강조한다. 이웃사랑이 자본을 사용할 때만이 부요창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진정한 시장자본주의 성공이란, 이웃에게 압제하는 자본이 아니라 이웃을 살리는 자본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자본으로 이웃에게 경제적인 자유를 壓制하고, 그것으로 정치적인 자유와 기타의 모든 자유를 압제한다면 그야말로 자본은 인간을 해치는 毒이 되는 것이다. 자본은 좋은 것이지만 사용자에 따라 毒이 되기도 하고 生命이 되기도 한다.

 

자본이란, 그것을 使用하는 자들 活用하는 자들의 心性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제도나 억지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품어서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自薦하는 세상을 열어야 비로소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豫言이기도 하다. 그것이 본문의 의미다. 본문의 의미는 blessing, prosperity, praise of God, a gift, present, treaty of peace를 담고 있는데 결국 서로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이웃사랑의 의미 co-prosperity에 있다. 빚을 내어 부의 창출이 어려운 것이라면, 결국 서로간의 구제로 부의 창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론이다.

 

이런 방법은 여러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이웃사랑이 경제사회의 권력을 갖고 물가가격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고, 이웃사랑이 得勢하는 세상이 된다. 돈보다 인간을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능력의 枯渴은 천민자본주의의 得勢를 가져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제 글에서 살펴낸 것처럼 빚으로 부의 창출이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면 그것을 금해야 할 것이다. 자본이 악마의 도구화가 되어 가면 갈수록 빚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묶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자유를 앗겨가게 하고 노예로 만드는 것이 발생한다. 그것은 자유대한민국이 아니라 천민자본에 자유를 앗겨버린 대한민국이게 한다.

 

이웃의 경제를 성장 곧 살찌게 하는 섬김의 의미를 담는 것은 to be fat, grow fat, become fat, become prosperous, anoint적인 의미를 담는다. 특히 anoint의 의미는 기름부음의 의미를 담는다. 하나님의 이웃사랑과 그 지혜의 능력으로 이웃을 섬겨 번영하고 있는 번창하는 부유한 성공한 자들은 모두다 anoint的이다. 빚을 주어 세상을 빚의 멍에를 확산시키는 것은 부의 성장을 막는 길이다. 자본을 가진 자들이 부의 성장을 위해 빚을 주는 것이 잘하는 짓인데, 그것도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善한 것이어야 한다. [잠언 19: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자본의 의미를 살펴보면, 그 財産을 주실 때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그 재산을 통제하는 조건으로 주신 것이다. 인간의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고, 그 사랑이 이웃을 살리고, 이웃을 세우는 일을 능동적으로 自薦하는 일을 하는 세상이 될 때, 거기서 부의 창출이 일어나고 거기서 서로가 잘 사는 공영을 맞게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잘 살게 하는 능력이 아니면 결코 부의 창출은 일어나지 아니하고 부의 창출이 일어나지 못하면 富益富 貧益貧의 현상으로 몰려가서 결국 서로가 망하게 되는 나락으로 몰려가게 한다.

 

인간은 돈을 하나님보다 인간보다 더 사랑하여 악마의 殺人請負業者가 되어 사용한다면 그 자본은 사람을 죽이는 악마의 兵器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가들이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랑으로 그 자본을 활용하면 사용하면 많은 사람이 산다. 그런 자들에게만 하나님은 부요창출을 주신다고 하신다. 이는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noint的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의 권능을 기름부어 주시면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사채공화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어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국민의 빚이 1,000조로 육박했고 곧 넘어서게 된다고 한다.

 

이런 빚들이 결국 자본의 창출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권 침해를 가져온다. 그것에 매여 일생을 종살이할 수밖에 없는 자유의 喪失로 가게 하는 그 害惡은 가히 악마적인 결과라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평생을 돈을 가진 자들에게 돈을 늘려주는 도구로 전락하는 인간이라면 그 상실감과 상대적인 박탈감은 무엇으로 위로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비참한 인생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성공은 서로 잘사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자본의 활용 곧 구제에 있다. 자본주의의 의미를 살인의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도구로 삼아내는 능력자들로 양성해야 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바로 하나님 나라의 構成員으로 인정받게 된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결국 자본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활용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는 것에 있다. 천민자본주의는 결국 살인착취이고 진정한 자본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자본을 활용하여 인간을 살리는 도구 인간의 행복을 높여주는 도구로 인간의 자유를 찾아주는 능력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선택의 자유는 자기 자본을 스스로 사용하는 권리도 포함한다. 하지만 그것의 결과가 살인 착취적이라면 그것은 그 자신 스스로 금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으로 인간을 살리는 능력의 성장이 부의 창출의 出口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강조한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좋아하는 회원 : 0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북한군 상사 안찬일
다음글
탈북자가 남한 사회 성공한다면 정주영만한 롤모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