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과연 존경할 만한 인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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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 대통령의 모택동 존경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모택통은 타고난 운과 지략, 군사적 재능, 천부적인 언변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또한 엄청난 정치적 권력의 탐욕을 소유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와는 6.25 당시 중공군을 파견하여 싸움까지 했던 우리의 적이다.
모택동을 존경하다는 사람들은 모택동의 타고난 정치적 능력만을 가지고 모택동을 평가하는 것이 마치 객관적으로 사태를 보고 배울 점을 배운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모택동은 타고난 재능을 국가나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서만 사용한 타고난 권력의 화신이였다. 따라서 모택동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효웅을 좋아하고 영웅을 좋아하는 역사매니아여야지 공공 복리를 외치는 좌파계열이여서는 안된다. 타고난 지략과 권모술수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탁월한 책략가 모택동의 업적을 좋아 할 수도 있겠지만 소위 서민의 생활을 지지하고 거대역사에서 희생당한 소수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사람들이 모택동을 존경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좌파들은 버젖이 전대통령의 망언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해 그 사상적 성향을 의심캐 만든다. 여기서는 효웅 모택동의 여러가지 일화들을 통해 모택동의 진실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모택동은 과연 효웅임에는 틀림 없는 인물이지만 좌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인물은 되지 못하다는 것이 기본적인 시각이다.
1. 자기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했던 모택동 6.25가 나자 모택동은 자신의 아들을 지원군에 포함시켰다. 소련군의 약속한 공군 지원을 실행하지 않자 죽어가는 인민을 대신해 자신의 아들까지 전쟁터에 보낸다는 책임감 있는 행동이였다. 그리고 그 아들은 유엔군의 폭격을 맞아 죽었다. 며느리가 유해를 찾고 싶다고 말하자 모택동은 " 수많은 인민들이 타국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어 나가고 있는데 나의 자식만 찾아올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며느리의 청을 거절했다. 적국의 수장이지만 인민을 위하는 공명정대함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모택동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일화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실상은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모택동은 일찌기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국 중국도 아닌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지도자란 사람이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말도 되지 않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들은 전쟁터에 내보냈을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애초에 소련은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재촉하면서 소련의 공군 지원을 약속했다. 모택동은 그 말을 믿고 한국에 중공군을 파견했다. 그런데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다. 소련 공군이 집적 출격하는 것은 미국과 소련의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중공이 이외로 미국을 쉽게 격파하는 듯 보이자 중공의 위상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공군은 승리하면서도 연합군의 폭격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택동은 자신의 아들이라도 원정군에 포함시켜서 소련 공군이 참전하지 않은 책임을 대신하려 했던 것이다. 지원군 사령관 팽덕회는 모택동의 이러한 뜻을 알고 그를 후방에 배치 시켰다. 그런데 일이 재수가 없어 되어버려 연합군의 폭격을 맞아 모택동의 아들이 죽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모택동과 평덕회의 관계는 급격히 어색해 졌으며 결국 팽덕회는 전쟁 영웅임에도 불국 모택동에게 숙청당해 모든 칭호를 박탈당했으며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에게 끔찍한 만행을 당하고 죽어 버렸다.
후에 동소평 이후 제일 먼저 복권된 인물이 팽덕회라고 한다. 팽덕회가 모택동의 눈 밖에 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정적 계기로 두 사람 관계가 멀어진 것은 모택동 아들의 사망 사건 때문이였다. 모택동은 자신의 아들까지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전쟁터에 내보낸 것 뿐이다. 인민에 대한 마음에 아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생각한 선전으로서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것이고 후계자로 생각했던 아들이 죽자 지원군 사령관을 숙청한 잔인한 인물이였다. 자신의 아들까지 권력을 향한 욕구로 사용한 모택동의 일화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효웅이였나를 잘 보여주는 사건일 뿐 그의 공명정대하고 담백한 인물이였는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2. 항일 전쟁의 선봉에 선 팔로군 ?
모택동의 군대는 항일 운동에 앞장선 것이 아니라 국민당 정부의 뒤퉁수를 치기 위해 더 노력했다는 사실은 이미 개념 사학인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팔로군이 군기가 엄정하여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순 거짓말이다. 팔로군은 약탈수준의 군대 였으며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사료에서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심지어 일본군 조차 팔로군은 약탈자 수준의 마적으로 생각하였고 국민당을 자신들이 주적으로 생각했다.
항일 전쟁의 최우선에 싸웠다는 모택동의 팔로군이라 하지만 팔로군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은 단 두차례 밖에 없다. 평형관 전투와 백단대전이 그 두번의 유일한 전투이다. 만주사변 이후 국민당이 일제국주의자 수백 차례 치열한 전투를 하는 동안 정작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싸웠다는 모택동의 팔로군은 2차례의 전투 이외에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모택동은 국공 합작을 통해 외세를 몰아내는 것에 힘쓴 것이 아니라 국민당과 일본군이 싸우다 지쳐 공산당 정권을 세우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모택동은 공산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친일적인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모택동은백단대전에서 승리해 일본군을 무찌름으로서 결과적으로국민당을 도왔다는 이유로 팽덕회를 견책했다고 한다. 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많은 동지들이 일본군의 영토를공격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의생각은 그와 다르다. 일본군의 패배할 수록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세력은 커지고 공산주의자들이 자리를 좁아진다. 동지들은처음엔 나의 생각에 반대했으나 결국은 나의 주장이 맞았다는것이 공산당의 승리가 보여준다."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는 중국 독립운동의 아버지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모택동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군이국민당을 공격해 중국국민이절망에 늪에 빠지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것이다.팔로군 지도자인 모택동의 생각이 이렇고 실제로 항일 전쟁에서 승리한팽덕회가 견책까지 당하는지경에 이르렀으니공산주의자들은실제로 항일운동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국민당뒤퉁수를 치려는 노력만 하며 일본을 도운 친일파인 셈이다. 후에 장개석의 군대가 밀려나자 마적단 수준의팔로군은 엄격한 군기로 국민의 지지를 받은 군대로 항일전선에 최전방에 서 싸운 것이며뒤퉁수를때리고 민족을 배신한진영이 장개석인 것처럼 역사를 왜곡했다. 그러나 자신들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쪽팔린지사실상무승부로 끝난 백단대전의 결과만을 과장 선전할 뿐 항일운동 수십년의 기간 동안 과연 팔로군이 어떻게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는지는 얼버무리고 있다.
모택동은 민족적 위기조차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에게 항일운동의 아버지나 민족애국자와 같은 칭호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3. 모택동의 원한 것은 인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자신에게 한마디에 전국민이 순종하는 나라였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통해 모택동은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동안 선진국을 자랑했던 중국의 문화를 100년도 더 후퇴시킨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모택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택동의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가 나쁘게 나타난 것이라는 식으로 모택동을 변호한다. 그러나 모택동은 잘못된 결정으로 히틀러가 죽인 유대인의 4배도 넘는 중국인 수천만명이 굶어 죽거나 희생당했으며 중국의 문화까지 파괴되었다는 결과를 볼 때 의도가 좋았다고 용서할 만한 사항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모택동이 대약진 운동을 벌이고 문화대혁명을 벌인 것은 인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한 선한 마음가짐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권력을 연장시키는 악랄한 의도 때문이였다.
대약진 운동 실패로 모택동은 정치 생명은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다. 그러자 루산 회의에서 팽덕회는 모택동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위기에 몰린 모택동은 팽덕회의 라이벌 임표를 매수하여 오히려 팽덕회를 숙청했다. 팽덕회가 숙청당할 이유에는 놀랍게도 국민당을 도와 일본군과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어이없는 이유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항일운동에 최전선에 싸웠다는 모택동이 일본군에 승리했다는 이유로 전쟁영웅을 숙청하다니 정말 치열한 막장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팽덕회를 숙청한 모택동은 지식인 계층을 살려 두었다간 자신의 정책에 논리적인 반기를 들까 두려워 벌인 운동이 바로 문화 대혁명이다. 마치 진시황이 유학자들의 여론을 두려워해 분서갱유를 단행한 것과 같은 이유로 문화대혁명을 벌린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모택동 어록이라는 모택동의 성격과 전혀 상관없이 모택동을 신격화 한 경전과 비슷한 책을 든 젊은이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면서 지식인들을 이유없이 학살하고 중국 문화재를 파괴한 사건이다. 지식인들은 이유 없이 젊은이들에게 끌려 다녔고 팽덕회를 비롯한 구혁명동지들도 홍위병들에게 참혹한 학대를 당했다. 지식인들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모택동에 반대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개 끌리듯 포박되어 죄인처럼 집단 구타를 당했다. 이 모든 것을 배후에 조종하며 정당한 주장을 하는 지식인들과 혁명동지들까지 일거에 숙청해 중국 문화를 100년이나 퇴보시킨 역사적 인물이 바로 모택동이다.
그아 인민의 행복이나 삶의 질 개선에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그의 손가락 대로 움직이는 중국을 원했다는 또 다른 사건으로 유명한 참새 사건이 있다. 어느날 농업지도를 하던 중 벼 알을 먹는 참새를 본 모택동은 참새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 저 새는 해로운 새다." 모택동의 이 한마디에 모든 중국인들이 새잡기에 나섰으며 아첨하기 좋아하는 간신들은 참새가 얼마나 인류에 해로운 새인지 연구했다. 결국 중국 전역의 참새가 멸종 상태에 이르자 참새가 잡아 먹던 해충들이 날 뛰기 시작했고 결과는 대 기근으로 엄청난 중국인들이 굶어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소련에서 수십만 마리의 참새가 공수되었고 이 황당한 참새 전쟁을 지속해야 할지를 묻자 모택동은 "됐어"라고 말해 겨우 참새전쟁은 중지 되었다. 인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발언 한마디가 정당한 검증을 거치지도 않고 신격화되어 결과적으로 3천만의 인민이 굶어 죽었는데도 "됐어" 이제 그만이라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었을까? 그는 인민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전 중국이 그의 손가락질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신격화 하는 일을 즐기고 있었으며 거기서 발생하는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며 권력을 유지한 모택동은 대단한 권력의 화신이였던 것이다.
4. 최소한 좌파라면 모택동을 존경해서는 안된다.
모택동을 정치적으로만 살펴본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정치가라 아니 할 수 없다. 권력을 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으며 자신의 실책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형태로 중국이라는 수억명이 사는 나라를 마치 손바닥 위에 가지고 놀드 농락했으니 말이다. 그의 군사작전과 선동 능력을 게임으로 표시한다면 삼국지의 모든 영웅들보다 높게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모택동이야 말로 유비와 같은 지지와 조조의 같은 간특하고 정치력과 결단력 제갈양의 지략을 갖춘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나 정치적 욕심을 위해 어떠한 국민의 희생도 서슴치 않았던 그를 볼 때 최소한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좌파에서는 그를 존중한다는 소리가 나와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 ingo1level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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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운동권에서 영웅 애국 소위" 민중의 기수" 들은 모두 거품이엿습니다
또 그리 될수밬에 없습니다 공산 < 재산의 공동> 본질자체가 외곡이고 허구이고 표플리즘이기 때문입니다
그안엔 영웅은 남쳐나고 애국은 소리높고 진실은 잠잘수밬에 없는것이 우리들의 경험이엿습니다
택동이네 아이들은 북한에서도 80년대까지 우습게 보앗던 아이들입니다
택동이 논할가치 없는 택도없는 놈일뿐입니다
항일투쟁은 혼자서 한것 처럼 꾸며내고 자기를 우상화 시켰습니다.
북한에 이름있는 장군들인 최현. 김책.안길.최용건. 등 많은 사람들이 동북에서 유격대를 무어서 김일성보다 먼저 반일을 했으나 그런것은 하나도 알려 지지 않고 오직 김일성에 의하여 유격대가 창건된것처럼 날조 하였습니다.
최현이나. 김책은 항일을 하면서도 김일성을 알지도 못했고 40년대 초에 한번 인가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수 많은 백전로장들이 김일성에게 정권을 넘겨 준것은 아첨쟁이 같은 김일성이가 소련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며 해방되여서도 스탈린이 그를 지지하였던것입니다.
해방되기전에는 소련에 도망가서 숨어 살다가 소련군 군복을 입고 있으면서도 조선혁명력사에는 한 마디도 서슬되여 있지 않습니다.
오직 조선혁명 대사변을 맞을 준비를 했다고 넉두리로 국민을 기만한것입니다.
공부못하고 주둥이만 까진 절세의 사기군으로 고난의 길을 걸었고
아직도 그 비참한 험로를 걷고 있습니다.
좀 웃기는것 대한민국의 뇌물현이 가장 존경했다고 줴쳤던게
강청의 남편이였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갑니다.
주둥이뼈가 발달했던 강청의 장난감/
지금 지옥에서 고생많겠지요~
하나님은 강청의 남편을 제대로 지옥의 불가마에 닦고 계실것입니다.
그럼 네놈이라면 생사를 가늠할수 없는 전쟁판에 아들넘을 내 보낼수 있느냐?
뭐?후방?조선전쟁에 전후방이 따로 있었더냐?
휴,,,사람 긁어 내리는데 이골튼 넘들이지...
목택똥이 노망써서 문화대혁명때 조선족들 엄청 죽었는데, 넌 밸도 없냐??
그냥 "?方?太?升,中?出?的毛??。“ 노래나 열심히 부르세요...
하긴 현대인 가수 따올랑같은 또라이들이 아직도 "친아이더 모저뚱"노래나 부르고....언제 깨겠냐?? 그냥 목~택~똥~~~
나도 모택동 옹호 지지자가 아니다.
그러나 네놈 처럼 파렴치 하게 비난하지는 안는다
맞아,중국이 한때 북한 보다 못살았지..
그런데 그것이 북한 때문 이라는건 아느냐?
ㅎㅎ관두자,너희 같은 무지렁이하고 말을 섞는 내가 바부지 ,,어휴,,,
천안문가면 냄새 풀풀나는 목탱똥 시신 진열해놓고, 기념품이랑 팔면서 장사한다면서. ...
하여간 짱개들은 약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