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외부활동 자제하며 주민 통제 강화할 가능성
20일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죽음으로 김정일은 '독재자 친구'를 또 한 명 잃었다. 중동발 '재스민혁명'의 여파로 지난 1월 실각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 2월 쫓겨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이제 지구상에 남은 독재자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 정도다. 그나마 카스트로는 일선에서 물러나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물려준 상태다.
◇닮은꼴 두 독재자
정부 당국자는 "다른 독재자들보다 카다피는 김정일과 닮은 구석이 유난히 많다"며 "이번에 김정일이 받은 심리적 충격이 다른 때보다 컸을 것"이라고 했다.
동갑(1942년생)인 두 독재자는 나란히 40년 안팎의 독재 체제를 유지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 2월 이후 37년간,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42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카다피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 사건은 김정일에게 큰 충격을 줬을 것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국가정보원 3차장(북한 담당)을 지낸 한기범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21일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형적 정치체제를 구축한 점도 유사하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자신의 공포통치를 가미한 '선군사상'을 내세웠고, 카다피는 자신의 지배체제를 '자마히리야(대중의 국가)'라고 부르며 이슬람 민족주의 기반의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했다.
여객기 폭파 테러를 저질렀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정일은 서울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1987년 11월 인도양 상공에서 KAL기를 폭파했고, 카다피는 1986년 미군의 트리폴리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1988년 12월 미 팬암기를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파했다. 각각 115명과 270명이 죽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김정일의 후계자인 3남 김정은은 자신의 집무실 신축에만 200만달러를 쏟아부었고, 차남 김정철은 지난 2월 싱가포르 특급호텔에 머물며 에릭 클랩튼 공연을 구경하고 보석 쇼핑을 즐겼다. 카다피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은 런던 북부에 2000만달러짜리 호화저택을 소유했으며, 수백만 달러를 주고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와 비욘세 등을 개인 파티에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침묵하는 북한… 핵 집착 더 강해질 것
카다피의 죽음에 대해 북한은 침묵하고 있다. 북한은 2006년 12월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사형당했을 때도 18일이 지난 뒤에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을 통해 처형사실을 간단히 전했었다.
김정일은 당분간 외부 활동을 자제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정일은 2003년 이라크전을 전후해 50여일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고, 지난 2월 무바라크 실각 때는 열흘간 자취를 감췄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무바라크 실각 직후 김정일은 관저 주변에 탱크 등 중화기를 배치했었고, 시위 진압 장비를 중국에서 들여오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카다피 사망을 계기로 주민 통제의 고삐를 더욱 조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핵무기를 포기한 카다피의 죽음을 계기로 핵에 대한 김정일의 집착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치안정책연구소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김정일은 카다피와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외부에서 쉽게 건드리기 힘든 핵무기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군사 모험주의에 더욱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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