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연일
한미 FTA 발효 정지와 재협상을 촉구하더니
급기야
“정권교체를 통해 폐기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또 지난 8일에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좌파야당
전·현직 의원과 예비후보 등 100여명이
미국대사관으로 몰려가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폐기를 추진하겠다’는 서한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의원 96명 명의의 이 서한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 앞으로 작성됐다.
한명숙 대표는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굴욕적인 매국협상이
지금 국민들의 삶을 피폐화시키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고 있다”며
한미 FTA 발효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좌파야당들이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는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때 타결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동차 분야 등에 대한 일부 양보가 있긴 했지만,
한미 FTA의 본질적인 내용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특히 좌파진영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반드시 없애야 할 독소조항이라며
‘매국행위’라는 비난까지 퍼붓고 있지만,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에 포함시킨
ISD 조항은 이명박 정부들어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았다.
한미 FTA를
4·11 총선의 최대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민주당의 중심에는 한명숙 대표가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한명숙 대표는
한미 FTA 타결의 일등공신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맡아 한미 FTA 타결에 크게 기여했던
한 대표의 총리 임기는 묘하게도 한국과 미국이
FTA 협상을 추진해 타결시킨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2월 협상추진이 공식 발표돼
2007년 4월 타결됐고,
한명숙 총리는 2006년 4월 20일 취임해
2007년 3월 7일 퇴임했다.
한명숙 대표는
총리를 맡은 내내 왜 우리가 한미 FTA를 꼭 추진해야 하는지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차례 언급했다.
한 대표의 절절한 호소는
‘한미 FTA 전도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한 대표는
2006년 4월 17일 열린 총리 인사청문회 때부터
이미 한미 FTA에 대해
“자유개방 국가로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한 총리는
두달여 뒤인 7월 28일 무역협회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한미 FTA는
우리 경제를 세계 일류로 끌어올리는
새 성장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총리로서 각계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하나로 묶어 국민의 힘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한미 FTA가 체결되면
장기적으로 중, 일 등 주변경제가 한국을 매개로 연계되는
효과와 안보리스크 완화로 인한 대외신인도 제고도 기대된다”고
도 했다.
한 총리는
이듬해인 2007년 1월 30일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에 한미 FTA 협상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는 “그동안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많은 논란과 갈등이 있었지만 정부와 업계의 합심된 노력 덕분에
국민이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됐다”며
“아직까지 타결을 보지 못한 중요한 쟁점들이 많이 있지만
한미 FTA가 반드시 성공적으로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또 4일 뒤인
2월 3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Korea Society) 50주년 기념 만찬 축사에서는
“앞으로도 (한미 FTA 타결에) 어려운 고비가 남아있지만
양국이 윈윈하는 결실을 맺으면
무역과 투자의 획기적 증대 등
한미 양국 경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 강화와 한반도 지역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북핵 문제와 한미 FTA는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때
한미 관계는 한 단계 발전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명숙 대표의
한미 FTA 찬양가는 총리를 그만둔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됐다.
특히 대선을
9개월여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복귀한 한 전 총리는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등 당 핵심인사들이 인기가 떨어진
노무현의 정책에 반기를 들 때도 끝까지
한미 FTA를 적극 지지하며 노 대통령에 힘을 실었다.
한 대표는
총리 퇴임 2주일 뒤인 2007년 3월 19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이고 다음 정부로 넘긴다고
해서 더 좋은 조건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20년 뒤를 내다보면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손익 계산을 따져 봐야 한다”고 당내 한미 FTA 반발 기류를 겨냥했다.
그는 며칠 뒤에는
더 강한 어조로 한미 FTA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반대론자를
적극 설득하고 나섰다.
한 대표는
3월 2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FTA에 반대하는 분들은
한미 FTA가 불리하게 체결되면 우리 경제가 미국에 통합,
예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한국 경제와 시장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할 수밖에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반대론자 비판
그로부터 8일 뒤인
2007년 4월 2일 한미 FTA가 최종 타결되자
한명숙 대표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균형외교,
실리외교의 결실”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 대표는
“개방은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이며
이번 협상 타결은 그 시작일 뿐”이라며
“이번 기회를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가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
라고 밝혔다.
그는 국회 비준과 관련해서도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할”이라며 반대론자들을 비판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에 따르면,
한 대표는
한달여 뒤인 5월 11일 오찬을 함께 하며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 대사에게
“내년 봄 새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기보다
이번 가을에 한미 FTA가 비준되길 희망한다”며
“반대론자들은 ‘큰 힘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회 원천금지··형사처벌··손배청구··지원금 중단
‘反 FTA 시위대 압박’
한미 FTA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좌파진영은 3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를 결성해
국내외를 오가며 ‘한미 FTA 저지’ 결사항전에 나섰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범국본 도심집회 원천 금지
▲폭력시위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청구
▲불법 폭력시위와 관련된 시민사회 단체의 보조금 지원 중단 등
폭력시위대를 강도 높게 압박했다.
국회도 ‘불법시위 전력’ 단체의 정부 지원 제한을 촉구하며
힘을 실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이 같은 강도 높은 조치들이 잇따라
취해졌다면 ‘국민탄압’이라는 선동이 봇물을 이뤘겠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총리는
국회의 지원사격까지 받으며 단호히 시위대에 맞섰다.
노무현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對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불법 폭력시위 무관용 원칙’을 발표하며
엄단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한미 FTA 2차 협상을 앞두고
범국본과 전국농민회총연합(전농) 등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나서자 노무현 정부는
2006년 7월 7일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폭력시위로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우리의 대외 신인도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된다”며
“정부는 폭력시위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FTA 반대 시위 거세지자
“좌시 않을 것… 모든 수단 동원해 엄단”
그러나 이후에도 폭력시위가 계속되고
교통혼잡으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자
한명숙 총리는
그해 11월 22일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해
“이번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엄단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 이틀 뒤인 24일에는
폭력시위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불법폭력에 대한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며
“불법 폭력 집단행위의 주동자를 비롯해
적극가담자, 배후조종자까지 밝혀내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확실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폭력시위나 교통혼잡 등의 문제를 야기하는 도심집회는
엄격히 제한할 것”이며
“과거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도심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이날 한명숙 총리 주재로
‘불법·폭력시위 관계장관회의’를 마친 직후
행자부 주재로 전국 16개 시·도 부시장·부지사 비공개 연석회의를 열어
“각급 지자체는 불법 폭력시위에 민형사상 필요한 모든 조치를
반드시 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작성해 16개 광역 시·도는 물론
246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 시달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12월 6일 한명숙 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는
“방화와 폭력 등 민주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불법 폭력시위
주동자는 구속 등 엄중처벌뿐 아니라 향후
대통령의 사면검토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의견을 모았다.
뉴스파인더 엄병길 기자 bkeom@newsfin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