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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표심은 종북세력의 봉인가? 종북의 선동질에 학습효과를 얻고 있는가?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199 2012-08-21 15:14:26

[잠언29:20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조급증은 최선을 추구하는 것에 지대한 방해가 된다. 모든 것을 제대로 읽고 그것에서 늘 승리하는 최선을 찾아내야 하고 그 최선을 행동하는 시스템의 완벽한 훈련을 마친 후 시의 적절한때에 일사분란하게 행동해야 한다.

 

때문에 언어의 조급증을 치료해야 한다. 생각 없이 불쑥 말을 뱉어 놓고 당하는 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생각하는 습성보다 행동이 말이 먼저 나가는 자들의 일상은 災殃(재앙)을 만드는 공장이라 하겠다.

 

말과 행동이 생각보다 앞서는 자들은 어쩌면 자신을 믿는 자들일 것이다. 자기를 믿으니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태를 자아에 도취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를 믿으니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진다. 상상할 수 없는 그 엄청난 복잡성을 카오스적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을 어떻게 단순성으로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신중치 못하면 독해력난조에 걸리게 된다.

 

그런 자들은 조급하게 행동하고 말하다가 만들어진 재앙을 처리함에도 그 조급증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그것 때문에 스스로의 올무에 걸려 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겠다. 적절한 유비무환이 없는 인간의 만사는 언제나 조급함을 만들어낸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의 정신이 없이 사는 자들은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당황에 시달린다. 당황은 조급함을 불러일으키고 그 조급함은 그로 재앙으로 가게 한다. 언어에 조급한 자들은 대개 분을 잘 내는 자들이다. 냄비근성의 소유자란 말이다.

 

언제나 작은 것에도 작은 열에 충동되는 자들은 늘 분노에 노출된다. 그들은 분노에 잡혀 아무 생각 없이 말과 행동을 통해 그 분노를 쏟아낸다. 그런 분노는 자신에게 심각한 재앙 곧 손해를 불러 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미래가 없다.

 

우리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이런 조급증에 시달리고 언어조급증에 시달린다면 국가 계속성의 미래는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서 대한민국 밝은 미래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이들이 악마의 종자들에게서 늘 충동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국가계속성은 언제나 모든 적들을 이겨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 때문에 모든 적들이 부리는 모든 술책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것에 대한 승리는 유비무환이 가능한 독해력에 있고 그것은 모든 조급함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하는 지혜에 있다.

 

우리 사회는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 종북세력의 거짓말에 충동당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이것이 경험의 법칙을 통해 종북의 공격 술책을 알아가는 것이라면 비싼 수업료를 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함에도 조급한 체질이라면 그 체질이 대한민국 미래를 말살한다.

 

종북은 전교조를 통해 아이들의 조급성 강박성 저속성을 비열성 폭력성 호색성을 습관화하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유도당하는 아이들은 조급성 저속성 비열성 폭력성 호색성에 체질이 되고 그 체질은 모든 적의 충동에 잘 놀아나게 하는 독해력난망에 빠지게 한다.

 

적의 모든 의도를 간파 격파하는 독해력을 가져야 나라를 지킬 것이 아닌가? 간파하는데도 조급하고 격파하는데도 조급하면 자충수를 두게 되어 자멸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사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모든 적의 공격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격파해야 만들어진다.

 

조급함의 반대도 문제가 된다. 적의 모든 공격에 따라 곧바로 맞받아치지 못하면 이미 진 것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에게 보복하기가 어려운 여건에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급함이나 그 반대도 역시 유비무환이 없었다는 말이다.

 

산에나 들에서 젖은 나무로 불을 지피기 위해 젖은 나무의 물기를 없애는 것부터 한다. 그처럼 인화성이 강하도록 종북에게 잘 충동되도록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종북세력의 짓거리를 방치하는 것이 중도실용이라는 것이다.

 

종북은 반역이고 그것을 국가의 적으로 삼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그분이 나와서 전교조의 영향으로 조급증에 시달리는 국민을 치유해야 한다. 조급증에 시달리는 국민을 치유하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203040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각 후보들이 노력하는데, 그들은 이미 모든 적들을 간파 격파하는 독해력의 부재 독해력 난조의 계층임을 인지해야 한다. 때문에 지각적인 면보다 감정적인 면이 우세하다. 이성을 상실한 감정적인 세상은 미래가 없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 미래는 그 감정적인 능력에 의해 침몰되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문제를 치료하는 대통령 후보가 보이질 않는다. 심각한 일이다. 능히 적을 제압하는 지각적인 능력이 넘쳐나는 미래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이어야 계속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령의 대 각성으로 대한민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기름부음을 복된 장맛비처럼 받아야 한다. 전국적으로 내리는 장맛비처럼 국민의 심령 속에 가득하여 홍수를 이루게 해야 한다. 그때만이 감정적인 습성을 극복한다.

 

아마도 종북과 친북의 선전선동 질에 놀아나는 과정을 거쳐 가면서 대한민국이 성장해 간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그것 때문에 망한다면 이는 국가계속성의 상실이다. 이런 일이 오지 않으려면 조급한 국민성을 치료하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빨리빨리 근성은 감정적일 때 문제가 된다. 지각적인 빨리는 적정속도이지만 감정적인 빨리는 과속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파괴한다. 적정속도로 대처해가는 대한민국의 균형감각은 대한민국만세를 만든다. 지금이 바로 종북세력을 무너뜨릴 때라는 것을 직시하자.

 

하나님의 지각에 의해 조종 조정되는 속도는 시의적절 대응을 찾아내는데 분명확실하다. 적중한다는 말이다. 그 적중을 따라 종북세력을 제거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종북에 놀아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출하는 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참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종북 대통령이 나오면 나라가 완전히 감정적으로 기울다가 과속도로 망하게 된다. 모든 속도는 스릴을 느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를 위해 있는 것이다. 생산과 창조의 경제를 위해 내는 이런 경제속도는 아주 뛰어난 지각의 조종 조정을 받아야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행하자고 강조한다. 그 지혜로 우리는 참된 대통령, 대한민국을 감정적인 과속도 에서 건져낼 대통령 과속도의 문화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치유할 대통령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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