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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사는 이유
United States 기고고 0 265 2012-10-10 22:46:28

내가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사는 이유

지난 3월  인요한박사(53)가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수여받은뒤 태극기를 흔들며 자축하고 있다 <지난 3월 인요한박사(53)가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수여받은뒤 태극기를 흔들며 자축하고 있다>

나는 5.16혁명과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 때문에 하나님께 제일 감사하였으며,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한 대통령 때문에,

철이 들고 난 후에야 감사함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큰 우리 전라도에서는 그 당시, 김대중 선생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좀 난센스 같지만, 제가 노대통령 취임 5일 만에 이북전문가로 비밀리에 만났습니다.

이제는. 얘기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확인시켜드리는 일입니다.

 

노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야 이북에 대해서 이해를 하실까?’ 엄청 고민을 하고.

노 대통령께 말씀드렸습니다. “이북의 상황은 집안에 정신박약아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이 골치 아픕니다. 그러니까. 10년, 20년 갈 수 있는 아주 단단한 정책을 펴셔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운 정책을 펴시면 안 됩니다. 냉정한 이성으로 정책을 펴십시오.”

이렇게 제가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제 얘기를 딱 10분 듣고 질문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잘하면 그이들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

그래서 “그 사람들 핵 포기 안 합니다. 절대로 포기 안 합니다.

숨어서 몰래 라도 핵을 만듭니다.”했습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한테 잘해 주면

그들도 우리한테 잘 할 거라는 그런 오해, 그런 잘못된 생각이 큰 문제입니다.”

 

그분 얼굴이 벌겋게 변하고 누구를 부르더니 담배를 갖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저는 혹시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박정희 대통령께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새마을 사업을 일으키면서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던 그 생각과 그 사상이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개성에서 평양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안내원이 “남조선이 우리보다 좀 앞선 것을 얘기해보라우!” 그러더라고요.

‘좋다. 무엇이든 물어봐라, 다 이야기 해주마.’ 이런 심정을 가지고

이 사람한테 40분을 강의를 했어요.

 

“첫째, 우리가 잘사는 까닭은 박정희 때문이다. 박정희 다음은 당신 정주영 알지 않느냐?

정주영만 있는 게 아니었고 거기 이병철도 있었다. 박태준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박정희로부터 특명을 받고 특혜를 받고 엄청난 공장들을 세우고 국가를 발전시켰다.

 

나는 전라도에서 컸기 때문에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너무 너무 너무 잘 몰랐다. 박정희가 위대한 사람이었다.

중국이 오늘날 잘살게 된 것도. 박정희를 공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잘산다.

 

중국도, 싱가포르 이광요도 박정희 사상을 배운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위대한 사람이다. 뭐 인권문제 가지고 따지는 사람이 있는데

기본 생계가 보장되어야 인권도 논할 수 있는거다.

남조선에서 보릿고개를 없애 준 사람, 그게 박정희다.”

 

“두 번째, 잘살게 된 까닭은 남쪽에 있는 근로자들 때문이다. 구로공단에서 16시간씩 일했다.

잘 살려면 돈을 모아야 된다. 그래서 돈을 모으기 위해서 16시간씩 공장을 돌리고

심지어는 여자들이 머리카락까지 팔았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다.”

 

“세 번째, 남조선이 잘사는 이유는 한국의 여성들 때문이다.

근면·절약정신. 당신 한국 여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아냐?”

 

그건 공감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여자들이 근면·절약 정신교육. 이런 걸 우선시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 여자들! 바로 우리 어머님들 때문에 잘 산다”

 

그렇게 얘기했더니 이 양반이 뭐 좀 시큰둥해요. 

“줄 잘 섰디 뭐?”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거 무슨 얘기요?”했더니 “남조선 아이들은 미국 뒤에 줄섰고,

우리는 소비에트 러시아 뒤에 줄 서가지고 이렇게 돼버렸다.”

 

중국 얘기는 하지도 안합디다. 그래서 내가 그이 보고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 필리핀은 미국 뒤에 백 년 전에 줄을 섰는데 왜 이렇게 못살죠?”.(웃음)

 

한국 사람들에게 아부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고요.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말합니다. 미국에 이민가면 한국 사람들이 1년이면 80% 이상이

새 차를 사요. 5년이면 80% 이상이 새 집을 마련해요.

미국 사람들은 30년이 돼도 그걸 못해요. 대단한 일입니다.

 

제가 ..좋은 얘기 많이 했죠? 나쁜 얘기 좀 해도 되겠죠?

지금 한국 사람들이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모든 사람들이 소모를 하고 있어요.

성숙하면 타협을 해야 돼요...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돼요.

 

링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보다 백 배 더 독재했습니다.

신문사 300개 문 닫았어요. 주 의회를 재판도 안하고 연금을 시켰어요.

대법원장 불러 가지고 “당신 까불면 감옥에 넣어 버리겠다!”했어요.

남북이 나눠지고 전쟁이 날 것 같으니까, 링컨조차도 그런 극단의 처방을 냈어요.


미국 사람들은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성'을 감안한 평가를 하는데,

대한민국은 당시의 '시대성'은 배제하고서 오늘의 잣대로 옛날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박정희 대통령은 기념관이 없어요. 이거 바뀌어야 됩니다.

미국사람들은 링컨이 잘못한 부분은 땅속에 묻어 버렸어요. 미국 방문해 보셨죠?

워싱턴 링컨기념관에 가보면, 링컨이 예수님 다음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있어요. 아쉽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업적을 냈을 때, 이순신장군 어떻게 했어요?

왕이 감옥에 넣어 버렸어요. 그렇죠? 사촌이 땅을 사면 유태인들은 잔치를 벌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세력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배 아프기는커녕 잔치를 벌여야 될 일이에요.

남 잘 된 것을 축복해 주고 축하해 주고 그런 문화로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세브란스에서 공부 잘 못하고, 꼴등 하다시피 했는데 미국에 가서는 중간이 아니라

우수한 쪽에 들어갔어요. 그게 세브란스 교육덕분이에요.

나가서 힘을 겨뤄보니까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박정희 대통령이 기초를 닦은 대한민국의 희망을 얘기하겠습니다.

첫째 희망은 조선 사업입니다. LNG선을 영하70도, 그 액체 LNG를 보관할 수 있는 조선소 기술이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최고입니다. 1 위예요.

특허가 있어서 흉내도 못 내요. 극비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포항제철에서 박태준의 후배들이 지금 철을 만들어내는데

전 세계적으로 거치는 코크스(Cokes)라는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철을 만듭니다.

아무리 철 값이 떨어져도 생산능력 있고 수익이 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IT산업. 전 세계에서 고속인터넷이 제일 완벽하게 깔린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이게 제 마지막 비판이자 칭찬입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5년 동안에 소니(Sony)를 앞섰는데

최대 10년을 앞섰답니다.

 

삼성, 대단한 기업입니다. 누가 만들었죠?

기아자동차가 미국의 최악 불황일 때 최악의 지난 1년 동안 미국자동차 시장점유율을 6% 올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북한의 실상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재미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여러분한테 이북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이북 사람들이 선택을 잘못해 가지고 이북이 어떻게 저렇게 망가졌는지….

 

전쟁 전에는 평양이 서울보다 더 잘 살았다고 그래요. 전기도 남아돌아가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는지…. 김일성이 이렇게 나왔어요.

“머슴과 지주를 없애겠다.” 그 사회는 머슴과 지주가 당원하고 인민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97%가 소위 인민입니다...3 %가 소위 그 사람들이 없애겠다는 지주 쪽에 들어갑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통일이 아쉬운 것은 하나밖에 없어요.

이산가족! 지금 나이들이 많아요. 이산가족들이 그 유일한 인맥이에요....

여러분 우리 집사람이 중국으로 . 북한의사들을 데리고 나와서 교육을 시켰어요.

최고 3일 정도 교육받다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이런 것 가르치지 마세요. 우리는 마취할 시약도 없는데 이런 것 배워 봐야 머리만 아픕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 28개의 뇌물이 필요합니다.” 우리 집사람이 깜짝 놀랐답니다.

무슨 뇌물이 필요하냐? 뭘 요구했을 것 같아요? 돈? 선물?

유에스비(USB:컴퓨터 이동식 저장장치)입니다. 남조선 사극을 좀 담아 달라.

최대한 가능하다면 지난 것까지도 담아 달라. 최신 것.”,

 

“이거 가지고 가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총살 아니냐?”

그랬더니 “아~ 일 없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지우고 들어가서 파일을 복구시키면 돼요.

그러니까 세관 통과할 때 누가 보면 없는 걸로

되어 있고…. 그래 가지고 거기에 있는 고관들한테 최고 인기선물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 북한 사회의 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2003년도 쯤 되는데…무쏘車를 사서 1년 반 만에 폐차를 시켰어요.

비포장도로 마천령 고개를 넘고…. 함경남도, 북도 사이에 일제 때 길이 그대로예요.

변한 것 하나도 없어요.

 

이북호텔은 평양을 떠나면 정말 지내기가 힘듭니다.

‘청진 관광려관’에 도착을 했어요.

“우리는 남의 돈을 모금해 가지고 오니까 제일 싼 방 주세요.”

그러면 그 쪽 얘기는 항상 똑같아요. “3등실 돈 가지고 일등실에서 주무세요.”

호텔 선임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위대한 장군님이 주무셨던 방에 가서 자라.”

 

그래서 호기심에 갔더니 몇 월 며칠 위대한 장군님이 거기서 주무셨답니다.

다음 .목욕을 하고 싶어요. 비포장도로로만 열 몇 시간을 달렸으니

머리에다가 흙을 한 삽 올려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 프런트에 가서 “나 목욕을 좀 하고 싶은데 더운물…”하고 말하니까

“우리 십 분씩 쏴주겠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그래서 호텔방에 올라와서

7시5분 전부터 옷 다 벗고 목욕탕 앞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세 가지 장비가 필요해요.

 

바케쓰가 하나 있어야 돼요. 그걸 목욕탕 속에 잘 빠트려야 돼요.

사회주의 국가는요, 목욕통 청소를 안 해요. 밑에 진흙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찬물을 받아놓고, 그거는 화장실용 물이거든요.

 

그 다음에 세숫대야 하나 놓고 바가지 갖고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영락없이 딱 정각이 되면 물이 나와요. ‘퀄퀄퀄퀄’하고 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걸 또 빨리 받아내야 합니다.

 

왜? 녹물이에요. 관이 오래됐거든요. 그 다음에 더운물 갖고 목욕을 시작했는데

여러분은 거짓말 같으실 텐데요. 거짓말 아닙니다. 갑자기 세상이 새까만 거예요.

정전이 된 겁니다. 온 호텔방을 기어 다니며 배낭 속에 플래시를 찾는데 한 3분 걸렸어요.

찾아가지고 왔는데 처음에 3분 보냈죠, 찾는데 3분 보냈죠, 그래서 한 3분밖에 안 남았어요.

 

소중한 이 국가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귀국해서 나중에 연희동 공중목욕탕에 갔는데

아주 불이 훤하더라고요. 갑자기 청진 생각이 나는 거예요. 찬물도 퀄퀄 나오고

더운물도 퀄퀄 나오고….

 

제가 벽을 보고 혼자서 울기 시작했어요. 너무 너무 고마워서, .. 마음껏 목욕하는 거

한 번도 고맙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냥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버지 장례식 때도 안 울었어요.…그런데 그것보다 더 소중한 메시지는

박정희 대통령이 깔아놓은 바탕에 대단한 국가를 세우고, 우리가 가진 것이 엄청 많아요.

우리 다 재벌 같이 삽니다. 여러분들이 손자손녀, 여러분 자녀한테 다 얘기해야 됩니다.

여행갈 수 있는 것, 자기차 운전 할 수 있는 것,

친구 만날 수 있는 것, 가서 통닭하고 생맥주 마실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 여름에 다 에어컨 켜고 지내는 것... 여러분 소중한 것이 많습니다.

 

이 국가를 잘 지켜야 합니다.

이 나라를 우리가 잘 지켜나가야 됩니다.


인요한

<연사 약력>

미국명: John Alderman Linton      

1959년 12월 8일 한국에서 출생. 국적 미국

1987.2.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2003.8.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

1988∼1991 미국 뉴욕 주 Catholic Medical Center of Brooklyn Queens

가정의학과 수련의 과정 이수

1991∼현재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 부교수/국제진료센터 

2012-10-01 12:05:20

http://www.kamerican.com/GNC/new/secondary_contents.php?article_no=5&no=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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