緣木求魚(연목구어)! 미래창조과학부에 빨갱이 반역자들이 득실대면 어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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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緣木求魚(연목구어)! 미래창조과학부에 빨갱이 반역자들이 득실대면 어쩔 것인가? 대한민국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잠언3:11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도제식(徒弟式)의 문화가 철저한 세상에서는 아주 뛰어난 기술의 전진을 이룬다. 日本(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받게 하는 이유가 도제식 교육에 있다고 한다. 보다 앞선 자가 제자를 받아들이고 그를 도제식 방법으로 그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고 그 수준에 도달한 제자는 계속해서 기술을 연마하여 높은 수준에 이르고 그 수하에 제자들에게 도제식으로 전수하고 거기서부터 그 나름대로 더욱 연마하여 그것을 그 제자에게 전수하고 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국제경쟁력을 갖춘 도제식 교육이 필요하다 하겠다.
여기서 문제는 차원이다.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올려주는 권능이 필요한데, 그것에 따라 수용능력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된다. 오늘 날 대한민국은 도제식이 없어졌다. 하나님도 그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징계와 꾸지람을 주신다. [요한계시록3: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인간이 인간을 교육하는데 필요한 징계와 꾸지람의 권위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 날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징계와 꾸지람을 폭력으로 치부한다.
사랑의 매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교권이다. 때문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도제식의 의미가 존중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교권은 무너지는 것이고 아이들은 다만 돈 내고 지식을 배우고 졸업증만 얻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무슨 기술의 전진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애국심의 함양이 나올 것인가? 스승의 차원이 국제경쟁력이 없다면 언제나 하류 국가가 된다. 그 때문에 스승의 차원은 높아야 한다. 우리는 스승 중에 스승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다.
스스로 계셔서 모든 만물을 창조운영하시는 하나님을 스승으로 모시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지혜의 통치를 받게 된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셔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수준으로 그 차원을 높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차원은 지극히 높아 그 보다 더 높은 차원은 없는 것이다. 우리처럼 미약해도 그 차원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권능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차원을 높이는 기술 곧 통제의 미학이다. 하나님의 그 통제의 미학은 창조와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세상이어야 한다. [고린도전서1:27-29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천재만 데려다가 그런 훈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보라도 또는 누구든지 원하는 자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제자삼아 주신다.
추악한 통제는 모든 것을 착취 갈취 강탈하는 것에는 능하나 창조와 생산은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 창조와 생산이 안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통제를 그 아름다운 통제의 미학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자고 늘 강조하는 것이다. 전 국민이 하나님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면 그런 은총을 입게 되는 것이다. 천재만 데려다가 훈련시키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시편 118:22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12장 6절부터 12절까지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받으시는 아들마다 징계하고 꾸지람을 주셔서 책망을 하셔서 이끌어 올리신다. 때문에 인간은 그 징계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통제의 미학을 참으로 즐거워해야 한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과 책망을 받기 위해 이를 수용하는 참음에 동참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잠언 13:24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곧 자식을 사랑하는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기나라에 대한 애국심의 투철함과 이웃을 위해 이바지 하려는 멸사봉공의 진정성과 그를 위해 기술의 초고도의 발전을 이루는 자식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고 이웃을 인류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자식사랑은 이런 것이다. 본받아야 한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라고 하셨다. 과연 이 나라가 종북을 품는 길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잠시라도 겪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늘 그것이 우려스럽다 하겠다. 중우들이 어서 눈을 뜨고 악마를 품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과학기술의 전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과연 기술경쟁이 심화된 세상에서 기술의 차원을 높이는 길은 또한 무엇인가? 모든 만물의 창조자 운영자이신 하나님 여호와와 조우하는 것에 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 속으로 오셔서 그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배하시고 지혜로 통치하심에 있다. 그들만이 여호와의 권능 곧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공유하여 그 모든 만물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런 비밀을 아는 것을 눈이라고 하고 그 눈의 원어적인 의미는 spring이라고 한다.
또는 fountain이라고 하고 또는 그 貯水池(저수지) 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그 눈에 공유하면 그 눈으로 볼 때 마치도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고 그 안에 모든 새싹들이 돋아나듯이 마른가지들에서 새 싹들이 돋아나듯이 즉각적으로 본질의 에센스가 드러난다. 용수철이 눌려 있다가 그 눈으로 보는 순간에 눌림에서 벗어나 뛰어 오르듯이 한다. 그처럼 각기의 본질이 그 눈앞에 발가벗겨져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에서 응용력을 찾아내고 명철이 나와서 세상을 치료하는 권능이 되는 것이다.
그것에서 신기술이 나오고 신약이 나오고 새로운 치료능력(명철)이 나오는 것이다. [히브리서4:13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fountain은 분출되는 분량의 의미를 말한다. 그 모든 것의 비밀이 드러나는 분량의 의미가 그것의 의미이고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저수지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a fountain of wisdom’의 의미로 세상을 복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치료하는 힐링 캠프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다.
만물의 모든 비밀을 알아내는 자가 있다면 악마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수작을 다할 것이다. 그 때문에 그런 능력자들의 악마化(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국가의 기술이 악마의 기술이 된다면 결국 세상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기술은 악마를 이기는 하나님의 성품의 轉移(전이) 곧 의로운 성품 인간을 사랑하는 성품 良善(양선)의 성품의 성장과 함께 전진되어야 한다. 이를 하나님의 사랑의 지배와 지혜의 통치라고 한다. 하나님의 통제의 미학이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성품과 지혜의 훈련을 받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폭력과 교육을 구분치 못하는 세상에서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상에서는 교육의 의미가 다만 지식전달에만 있을 뿐이다. 국가교육의 의미는 애국심으로 가득하되 심지가 견고한 국민성을 기반으로 하는 바탕을 삼아 기술의 차원이 높아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발전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한적화를 목적으로 하는 전교조의 침투와 그 개입으로 인해 그것이 파괴된 것이다.
애국심의 고결한 성품을 성장시키는 길은 무엇인가? 학교 교육에서 그런 성품을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다만 지식만 배우는 곳이 될 뿐이다. 고결한 성품으로 성장시키는 일을 학교에서 못한다면 애국자는 없어지는 것이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의 기술은 결국 악마의 기술이 된다. 반역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사랑을 따라 산다. 애국심이 가족애보다 자식사랑보다 부부사랑보다 더 앞서는 것이 멸사봉공인데, 멸사봉공이 없다면 어떻게 국가사회에 이바지하겠는가? 緣木求魚(연목구어)일 뿐이다.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 애국심을 함양하고 있는가? 있다면 그 함양의 분량은 얼마나 되는가? 대한민국의 태생을 증오하고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는 분노로 가득 찬 선생들의 입김에 아이들의 속에 있는 애국심마저 증발되는 것 도리어 반역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미래창조과학부를 둔다고 해도 그 안에 애국심은 얼마나 되고 과연 멸사봉공을 할 수 있는 애국심을 가진 과학자인가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한사람 그 한사람의 애국심의 의미를 고찰하고 그들이 과연 세계를 재패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생각한다.
첨단기술만 개발한다면 애국심이 없다 해도 별문제가 없다고 하는 자들도 있다. 기술에 국제경쟁력만을 높이고 애국심은 평가절하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해도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다면 가난한 대한민국으로 유지될 것이다. 그것만으로 대한민국강국만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철한 애국심과 국제경쟁력을 지닌 기술, 이 두 가지를 다 갖춰야 한다. 무엇으로 그것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그 지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은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북괴가 핵무장했는데 왜 그것에 관해 국제사회가 반대를 하는가? 그것은 북괴가 악마 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 성을 가진 집단이 첨단의 기술을 가지면 이는 세상의 패망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속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시자고 강조한다. 하나님을 모셔야 악마성에서 그 노예에서 벗어나서 애국충정을 멸사봉공을 다해 나라를 국민을 인류를 섬기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통제의 미학을 즐거워해야 국가의 미래가 산다. 모름지기!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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