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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공작의 실체를 말한다
United States 침투포섭 0 363 2013-01-22 09:20:03

 



대남공작의 실체를 말한다

김민우 < 전 북한 통일전선부 해외공작원>

한반도 통일 가로막는 적화통일노선

현 재 세계는 자유와 평화를 원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요구에 의하여 핵무기 없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 오고 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끊임없는 전쟁으로 지난 세기 수많은 인명들이 목숨을 잃었고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소실되었다. 전쟁의 역사는 지배계급들의 세력과 영토 확장을 위한 것으로 시작되었고 종교분쟁, 이념분쟁, 그리고 민족의 자주권과 통일을 위한 처절한 싸움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와 같이 한 민족이 둘로 갈라져 첨예한 이념과 제도 대결로 분단되어 반세기 이상을 반목?질시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지구상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한반도는 6.25라는 동족상쟁의 비극을 겪고도 70여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필 자가 이 자리를 빌어 북한 대남공작활동의 전모를 파헤쳐 보려는 것은, 김일성김정일을 ‘영원한 수령’이라며 모시고 있는 북한 정권의 적화통일노선이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필자 본인은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에 귀순하기 전까지 근 20여년을 북한의 적화통일노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해외에서 활동하여 왔으므로 북한 대남공작의 실체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여러 언론매체들이 북한 대남공작에 대해서 정확한 분석 없이 너무나 추상적인 추측성 보도로 일관해 온 것을 보면서 이 기회를 빌어 북한 대남공작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헤쳐 보려고 한다. 특히 1995년 10월 24일 부여에서 체포된 김동식 간첩사건, 1997년 10월 체포된 최정남?강연정 부부 간첩사건, 2011년 7월 적발된 ‘왕재산’ 간첩단 사건들과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제 나름대로 쏟아져 나오는 북한 대남공작에 대한 분석자료들을 보면서 대남공작기관에 오랫동안 종사하였던 한사람으로서 그 실상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진실 되게 알려 줄 의무가 있고, 이것을 통하여 이전 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반드시 이루어 질, 아니 반드시 이루어야 할 통일조국의 기둥이 될 새 세대들이 올바른 대북관과 안보의식을 가지도록 하는 데 적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바람이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또한 북한의 대남도발이 일어 날 때만 요란하게 떠들다가 시간이 흐르면 무관심해지고 마는 한국 국민들의 안보의식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북한 대남공작의 실체에 대하여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대남공작의 첫걸음 ‘강동정치학원’

1945 년 8월 15일 한반도가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민족의 앞날에 대하여 온 나라, 온 민족이 들떠 있었으나 1946년 2월 129 북한지역 주둔군인 소련군의 후원을 받던 김일성이 일방적으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선포하면서 남북통일의 희망은 사라져 갔고 장장 70여년을 분단국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정권을 잡은 김일성은 이때부터 적화통일의 야심을 자신의 필생의 사명으로 삼고 1994년 7월 4일 사망하기 전까지 그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김일성은 적화통일을 위한 첫 단계로서 남한의 좌익세력을 장악하여 남한내에서 정치적 혼란을 조성하는 것과 동시에 중도세력들을 적화 통일을 위한 세력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공작에 들어갔다.이를 위하여 남한에 파견할 공작원들을 조직적으로 양성할 기관의 창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1947년 6월 평안남도 강동군 봉화리에 ‘강동정치학원’이 설립되었고 김일성이 개원식에 직접 참가하여 첫 학원생들과 교직원들을 격려하였다. 여기에서 김일성은 “조국의 통일을 위해 학원생들이 정치사상적으로 육체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하고 남한에 파견되어 통일을 위한 세력들을 묶어 세워 통일을 위한 기반을 축성해야 한다”며 역설하였다고 한다. ‘강동정치학원’의 학원생들은 주로 남한출신들이 선발되었으며 남로당 당원들도 이곳에서의 단기강습반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남로당의 비밀당원들과 무장조직의 대다수는 ‘강동정치학원’ 졸업생들이었다. 학원생들을 교육할 교관들은 김일성과 함께 항일활동을 하던 빨치산 출신들로 구성되었으며 교육과정은 3년제를 기본으로 하고 6개월~1년 과정의 단기강습반도 운영하였다.과목은 남조선 정세분석과 지하조직의 조직원칙과 활동원칙, 군사훈련이 기본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이곳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는 ‘대남정치공작원’이라는 칭호를 주었다고 한다. 훗날 한국에서 일어난 1949년 춘천 지역의 국군 2개대대의 월북사건도 성시백이라는 북한 공작원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바 ‘강동정치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파견되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군에 침투한 대남정치공작원들인 표무원,강태무 등이 성시백의 지시에 의하여 벌인 대표적인 사건이다. 또한 1948년 11월부터 1950년 3월까지 지리산에서 활동하다 괴멸된 남부유격대도 강동정치학원 졸업생들로 구성된 유격대였다.1948년 10월에 있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의 여수 반란사건의 주모자들도 역시 강동정치학원을 졸업하고 남한에 파견되었던 북한정치공작원들이 주축을 이루어 일어났던 대표적인 군사반란사건이다. 소설과 드라마를 통하여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남부군, 즉 6.25사변 전후로 한국을 일시적인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그들 역시 사령관 이현상과 핵심세력들 모두가 ‘강동정치학원’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유격투쟁도 한국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대표적인 무장투쟁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해방 후 한국에서 일어난 정부전복을 위한 사건들의 배후에는 김일성이 있었고 그 선두에서 활동한 공작원들은 모두 ‘강동정치학원’을 졸업한 정치공작원들이었다. ‘강동정치학원’이 설립됨으로써 북한 대남공작의 첫걸음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하여 오늘날의 노동당 대남공작기관인 ‘대외연락부’, ‘통일전선부’, ‘대외정보조사부’, ‘작전부’가 설립되었고 북한군 ‘정찰총국’과 같은 강력한 대남공작기지가 마련된 것이다.

대남공작기관들의 임무

현 재 대남공작기관들의 임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외연락부’는 대남공작기관의 핵심 기관으로서 한국을 기본 타겟으로 하여 해외의 모든 국가들에서 북한노동당의 당조직을 결성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다. 이런 당조직들을 북한노동당 지하당 조직이라고 부르고 있는바, 여기에는 한국인들과 해외동포들을 흡수하여 노동당원으로 만들고 그 조직을 확대하여 한국정부를 전복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삼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해당국가의 주요 인사들도 포섭대상으로 삼고 공작활동을 하고 있다.‘대외정보조사부(35호실)’의 경우에는 물론 조직망을 형성하기도 하지 131北 만 기본은 한국과 해외에서 한국의 중요정보들을 수집하며 아웅산폭파사건, 87년 KAL기 폭파사건과 같은 테러활동과 한국인과 일본인을 포함하여 필요한 인물들을 납치, 납북시키는 활동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다.‘통일전선사업부(통전부)’는 한국과 해외에서 공개적인 활동으로 조직망을 구축하여 적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형성하는 것을 기본임무로 하고 있는바, 조선아세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민족화해협의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명칭을 가지고 활동을 하면서 ‘범민련’과 ‘6.15공동선언 실천위원회’, ‘한국민족민주전선’과 같은 합법적인 단체들을 조직하여 해외와 한국내에 적화통일을 위한 조직결성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다.대외연락부와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는 모든 활동을 비합법적으로 진행하는 반면 통일전선사업부는 합법적인 활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하여 여러 형식의 남북대화와 경제협력, 남북관계의 모든 공개된 활동들에 통전부가 나서고 있어, 일부 언론들이 남북관계와 대남공작의 총체를 지도하는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정보이고 통전부의 활동상의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과 해외에서 일어난 모든 간첩단 사건들과 테러, 납치사건들은 모두 대외연락부와 대외정보조사부에 의하여 일어난 사건들이고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활동들이다.‘작전부’의 기본임무는 대외연락부와 대외정보조사부의 공작원들이 한국으로 파견될 때 그들을 엄호하여 안전한 침투와 임무수행 후 무사복귀 임무를 주로 수행하며 해외에서 테러?납치공작을 진행할 때도 엄호와 복귀를 지원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작전부에는 북한의 개성과 원산, 남포, 함흥 등 해안지역에 수십여 개의 연락소를 가지고 있으며 잠수함과 잠수정, 쾌속정들과 해외에서 진행되는 공작활동 지원을 위하여 4~6천톤급의 무역 화물선들을 수척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선박으로서는 ‘수근호’, ‘동건애국호’를 들 수 있으며 이를 관리하는 기관은 대외적으로 ‘대흥선박회사’의 명칭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70년대 중반 한국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유명인 부부의 납북도 바로 ‘수근호’에 의하여 이루어 졌던 것이다.이와 같은 대남공작기관들은 2009년에 대대적인 개편을 실시하였는데, 노동당의 대남공작기관들인 ‘대외정보조사부(35실)’와 ‘작전부’를 인민무력부의 정찰국과 통합하여 ‘정찰총국’을 창설, 그 기능과 역할을 한층 강화하였다. 이유는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표방하면서 사회전반에 군중심의 영도체계를 수립하는 한 과정으로서 대남공작 분야에서도 군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내포 되어 있는 것이다. 통합이전 북한군의 대남공작 활동이라는 것은 정찰국과 적공국의 주도로 해상과 DMZ에서의 무력도발 형식과 대남방송과 선전물 살포와 같이 단순한 것이 고작이었다.그러나 한국과 해외에서 수십년간 지하당 구축과 테러, 납치와 정보수집과 같은 대남활동을 벌여온 노동당 35호실이나 작전부와 같이 풍부한 경험과 준비된 인력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노동당의 대남공작기관들과 통폐합하여 정찰총국을 창설함으로써 북한군의 대남공작능력은 한층 높아졌으며 앞으로 도발의 수위는 더욱 위험해 질 것이다.

대남공작기관들의 기구 체계

북 한의 대남공작기관에서는 우수한 인력들을 선발하여 대남공작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여 한국과 해외에 파견하여 대남공작활동을 벌이 고 있다. 대표적인 공작원 양성기관은 ‘봉화정치학원’, ‘김일성정치군사대학’이 있으며 대남공작원들은 3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공작원(국내공작원이라고 칭함), 해외에서 활동하는 공작원(해외공작원), 공작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공작원(일반적으로는 공작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전투원’이라고 불리며 이들은 작전부에 속한다)이 있다. 공작원 선발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국내공작원은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만17~18세의 남녀 학생들과 대학생들 중에서 출신성분이 좋고 신체조건과 학업성적, 개인생활에 문제가 없는 자들을 선발하여 시?군당, 도당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부 간부부에서 심의 결정하여 해당 양성기관에 보내진다. 한국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공작원들은 위와 같이 선발돼 김일성정치군사대학에서 4년제 과정을 마치고 5년 정도 중국과 해외에 연수를 보내 어학과 해당 국가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도록 한다. 이 연수 과정에서 일부는 앞으로의 한국침투를 위하여 해당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국적 취득은 이미 해당 국가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는 공작원들이 협조하여 진행한다. 필자도 중국에서 활동하던 1990년대에 2명에게 중국 국적을 만들어 준 경험이 있다. 대학과 연수를 통하여 약 10년간의 공작원 교육과정을 마치면 이들은 공작 임무가 주어지기 전까지 북한의 각지역에 있는 초대소들에 분산거처하면서 사상교육과 신체단련, 남조선 현지화 훈련(한국의 지형과 행정체계,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습득하여 한국인과 같아 보이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공작원 교육과정에서 앞으로 부부공작조로 활동할 대상들을 따로 선발하여 자기들끼리 결혼을 시켜 하나의 공작조로 편성, 훈련을 받고 파견되기도 한다. 1997년 10월에 한국에서 체포된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해외공작원들은 주로 현직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발하여 ‘봉 화정치학원’에서 1년제 과정을 거쳐 교육된다. 이 학원의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며 학과목은 다음과 같다. 김일성동지 혁명역사와 로작, 김정일동지 혁명역사와 로작, 김일성주의 지하당건설이론, 김일성주의 정치경제학, 김일성주의 철학, 지형학, 사격, 수영, 태권도, 운전교육 과목들이 있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과목은 김일성주의 지하당 건설이론이다. 이 학과목에서는 한국과 해외에서 북한노동당 조직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부한다. 지하당의 성격과 임무, 조직과 운영에 대한 모든 것을 1일 2강의(1강의는 90분)로 한주일에 금요일까지 1년 동안 진행한다. 이 과목에서 부교재로서 대남공작의 경험과 교훈을 서술한 소책자들을 이용한다.이 소책자들에는 지난 시기 주요 대남공작활동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고 한국과 해외에서 적발된 공작들이 실패한 원인과 교훈들이 서술되어 있다. 이 글에 등장한 한국과 해외에서 일어난 간첩사건과 테러사건에 대한 사례들은 필자가 공작원 교육 당시 해당 교관들과 참고자료들을 통하여 습득한 것들을 피력한 것이며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상 밝히지 못하는 사건들도 다분히 있다. 강의는 교수와 공작원간 1:1교육방식이며 숙소와 강의실, 도서실이 함께 있는 약 80평 정도의 초대소에서 진행된다.하루 일과는 아침 6시 기상, 6~7시 세수 및 아침운동. 7~8시 식사 8:30~12시 오전강의, 오후 12~2시 점심식사. 2:30~5시 강의, 5:30~7시 산악행군, 7:30~8:30 식사, 이후 자유시간으로 진행된다.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학원내 이동시 선글라스 와 마스크, 검은 우산을 반드시 착용하고 이동을 하여야 한다. 이동 도중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에는 길에서 벗어나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목적지로 이동하여야 한다. 식사는 식당에서 진행하는데, 개별적인 방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어 옆 사람을 전혀 볼 수가 없으며 식사는 미리 식탁에 놓여 식모도 볼 수 없다. 학원이 위치한 용추동에는 김일성 동상이 있고 한국생활을 그대로 접할 수 있는 교육관이 지하 터널에 있다. 매 교육생들에게는 그를 담당하는 지도원(사원)들이 있어 강의시간표와 생활조건 보장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교육생들의 생활정형을 상부에 보고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교육 기본과목인 김일성주의 지하당 건설이론은 교육과정이 끝나면 시험을 보는데, 다른 과목은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도 괜찮으나 이 과목을 통과하지 못하면 학원을 졸업할 수 없으며 동시에 공작원 자격도 얻지 못하고 다시 자신이 근무하였던 곳으로 복귀해야 한다. ‘지하당 이론’ 시험은 이론 필기시험과 가상적인 인물들을 선정하여 지하당 조직을 결성하고 운영방식을 진행하는 실기시험으로 진행된다. 실제로 한국의 김근태, 임종석, 권영길 등 실존 인물들에 대한 프로필을 놓고 그들을 흡수할 방법론을 제기하는 식으로 시험을 치루고 있다.다음으로 중요한 과목은 ‘지형학’이다. 이 과목에서는 적의 추격을 피하기 위한 은폐호 만들기, 산악지역에서 나침반을 이용한 목적지 찾기, 드보크(간첩장비 비밀 매설지) 설치 및 찾기, 연락책과의 접선 실전연습 등과 같이 실제 공작 활동에 필요한 지식을 이론과 함께 현장에서 실습방식으로 교육을 받는다. 또한 암호문 작성방법과 난수표에 의한 암호해독법 등 통신에 대한 교육도 동시에 진행한다. 난수표에 의한 암호작성과 해독은 주로 한국에서 출판된 각종 사전들과 특이하게는 성경을 가지고도 진행한다. 사격은 일주일에 1회 3시간 정도 진행하는데 학원내 사격장에서 각종 저격무기들의 분해와 조립, 실탄사격훈련을 한다. 수영은 2km를 건널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여 여름에는 호수 등지에서 진행한다. 태권도는 매일 2시간을 교관과 함께 진행한다.봉화정치학원에서의 생활과정에서 1개월에 1회 외출을 하는데 이때에도 반드시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차량은 벤츠를 이용하며 공작원이 된 후에는 노동당 고위간부들의 전용차와 동일한 급의 고급 벤츠를 배정 받아 북한내에서의 이동과 해외공작 도중 잠시 귀국을 하는 경우에 이를 이용한다. 물론 담당 운전기사들이 있는데 보통 50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입사한 사람들이다. 공작원들의 최종시험은 해당 부서의 부부장(차관급) 2명, 과장, 부과장, 담당지도원, 학원 원장 감독하에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른다. 물론 시험은 공작원 후보생 한명을 놓고 진행한다.대남공작기관들의 기구 체계대남공작기관들의 기구 체계는 다음과 같다. 부장, 부부장 4명(실무담당 2명, 인사담당 1명, 양성및 경리담당 1명)과 임무 특성별 업무과가 있는데 대외연락부의 경우 7개 과로 구성되어 있다. 대외연락부를 핵심으로 하는 대남공작기관들은 일반적으로 ‘중앙당 3호 청사’라고 부르며 북한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기관들의 조직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부장(한국의 장관급), 부부장(한국의 차관급), 과장, 부과장, 지도원으로 직급이 나누어져 있으며 3~4명의 부부장들과 임무분담에 따라 6~7개정도의 과로 구분되어 있다. 대외연락부의 경우 한국담당 부부장, 해외담당 부부장, 간부(인사)담당 부부장, 양성 및 후방담당(공작원 양성과 부의 일체 경리분야 담당) 부부장으로 4명이 존재하며 임무역할 분담에 따라 1과는 한국담당(현지과), 2과는 해외담당, 3과는 일본담당, 4과는 기술담당, 5과는 해외공관담당, 경리과와 운수과가 있다.주로 공작활동은 부과장을 단위로 하여 진행되는데 일반적으로 ‘작업반’이라고 부르며 지도원들이 해당 공작원들을 장악지도하며 각 지도원들이 지도하고 있는 공작원들과 그에 의하여 조직된 한국과 해외에 있는 지하조직들의 실체는 지도원들 상호간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매 과에는 과장, 부과장 2명, 지도원 7~10명 정도 근무하고 있다. 대외연락부의 조직 체계와 다른 대남공작기관들도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대외연락부를 포함하여 대남공작기관들은 공작원 양성과 관리를 위 하여 초대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주로 평양시 대성구역과 룡성구역, 만경대구역 등 대동강 주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초대소들은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고 있으며 경비는 인민보안부와 경비대에서 맡아 수행하고 있고 각 초대소들은 2층의 단독 주택형식으로 대략 100평 정도 규모이다. 이곳에는 항시적으로 관리원 1명(30세 미만의 처녀가 근무)과 식모 1명이 있다.일부 평양시 중심부에도 초대소를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외연락부에서 소유하고 있는 평양시 보통강 구역에 있는 초대소로서 일명 ‘대나무 초대소’라고 불린다. 초대소들의 내부 설비들은 주로 일본산 가전제품들로 채워져 있다. 침실, 서재, 영화상영실(거실을 주로 이용), 사우나 등이 갖추어져 있어 생활에 전혀 불편이 없도록 되어 있다.작전부에서는 초대소 형식보다는 공작 특성상 연락소를 보유하고 있다. ‘대남연락소’라고 불리는 이곳들은 북한 전역에 산재하여 있는데 주로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의 남포, 해주, 함흥, 원산 등 해안가와 개성시를 포함하여 수십여개의 연락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각 연락소들은 하나의 독립기관과 같이 조직되어 있다. 이곳은 소장, 당비서를 포함하여 행정조직과 당조직이 존재하는 하나의 독립 대남공작 기관이지만 상부조직인 작전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해안가의 연락소들은 남한 침투에 필요한 잠수함, 반잠수정, 쾌속정들을 여러 척 보유하고 있고 전투원(공작원) 20~30여명이 항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공작원들의 남한 침투와 복귀, 한국에서 포섭된 성원들에 대한 방북과 한국 복귀를 보장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 대남공작기관들은 광범한 인적?물적자원을 가지고 수십년간 대남공작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이 글에서 필자가 밝힌 내용은 북한군 정찰총국의 전모를 다룬 것이 아닌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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