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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부모
Korea, Republic o 유관순 0 261 2013-01-22 17:54:03

[天 地 父 母]

1] [법설]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니 천지부모는 일체니라.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지금사람들은 부모의 포태의 이치만 알고 천지포태의 이치와 기운을 알지 못 하느니라!

이 구절은 해월 스승님법설의 천지부모의 첫 구절입니다. 이 법설을 토대로 한 본인의 천지자연에 대한 생각과 인생관 사후 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지부모 설을 분석학적으로 논하기보다 이를 통한 인생의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고 그 삶의 태도에 따라, 이 법설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였느냐 아니냐가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사에 있어서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종족을 번식한다는 것이 가장 큰 삶의 목적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자기의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 까지도 희생의 제물로 삼는다. 이러한 각 생명 개체의 노력만으로 종족의 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생명존재자의 음양의 이치에 의한 상호관계에 아무리 정성을 다 쏟는다 하여도, 그 생명존재자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살아있는 생명체로 자라나기 위해선 적당한 환경적 요인이 구비 되었을 때 비로소 생명으로서의 활동이 시작된다. 음양의 이치 기운에 의하여 만들어진 생명체가 생명으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적요인, 이것이 바로 천지조화의 이치이며 무위이화의 한울님의 간섭이므로 이를 인식한 상태를 천지부모의 포태를 깨달았다 할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임신을 하지 못할 경우 흔히들 천지 자연 앞에 치성을 드렸다. 이는 아직 깨우치지 못하여 천지자연의 이치기운으로 생명이 자라남을 모르던 원시의 시절에도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천지조화의 이치에 의하여 생명에 싹이 트고,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해월신사님의 천지부모의 법설이 명문화되기 이전에도 인류는 천지부모의 은혜를 알고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또한 스승님께서는 천지를 가리켜 부모라 하시었으며, 사람들이 부모의 보살펴주심과 먹여주심을 알뿐 천지의 먹여주심을 모른다고 하시며 사람이 어려서 먹는 것은 어머니의 젓이요, 자라서먹는 것은 땅의 곡식이니, 이것이 바로 천지의 젓이라 하시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은 천지로부터 얻어지는 먹 거리로 생명을 이어간다. 생물체만아니라 무생물체 까지도 가령 동굴의 石筍이라든가 바위의 풍화작용 등이 모두가 천지조화의 이치에 의하여 생성하고 소멸한다. 그러므로 천지를 가리켜 부모라 하고 천지의 젖을 먹고 자란다. 함은 유사이래의 만고불변의 은혜요, 진리이나 예전사람들은 다만 그 사실을 막연히 알뿐 명문화하지 못 하였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스승님께서 이러한 진리를 비로소 명문화 하시어 사람들에게 가르치시어 자연을 오로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의 수단으로만 인식하던 서구의 자연 정복사상에서 자연을 부모처럼 섬기고,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천지부모의 포태 속에 한 동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정신사적인 풍토를 마련하셨으니, 이는 수운스승님의 오심즉여심의 한울님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하나임을 선언하신 인간존재의 존귀함을 인식한데 이은, 천지와 더불어 모든 생명체의 존귀함을 선언하신 위대한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스승님의 정신을 이어온 천도교인의 자녀였던 연유에서인지 본인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자연관과 인간관을 가지고 살아 왔다. 이제부터 본인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한다. 먼저 사 후 관을 통하여 본인이 갖고 있는 천지부모님께 대한 경외의 마음을 피력한다.

역사이래로 이 땅에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살다가 죽어갔다. 사람은 죽으면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하고 짐승은 죽으면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가 무덤도 쓰지 않고 죽어 세월이 흘러가 한 줌 흙으로 변하며 이제 것 자신을 먹여주고 길러준 천지 자연 땅에 거름이 되거나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어 자신의 몸으로서 마지막 보시를 하고 간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서 까지도 많은 땅을 차지하고 돌로 각가지 장식물을 세워서 그 땅을 다른 용도로 사용 할 수 없게 만들어 남은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잠식하고 돌을 까가 자연을 파괴하여 후세들의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킨다. 만약에 유사 이래 이 땅에서 죽어간 많은 인간들의 무덤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면, 아마 지금 이 세상은 산 사람이 살 터전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선조들은 막강한 권력자의 무덤이 아니고는 지금보다 자연친화적 장례법으로 옛날의 무덤이 남아있지 않아 현대의 인류가 살아가는데 별 불편이 없다.

우리는 우리만이 살다가 끝날 세상이 아니기에 죽어서 무덤을 쓰는 것도 자연친화적으로 하는 것이 스승님의 천지부모의 법설을 잘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든 산 공부의 결과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천지부모의 은혜로 한 세상을 살다가는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생명의 존재자가 죽었다. 만약에 그를 매장했다면 시신은 오랜 세월 무덤을 타고 들어오는 빗물에 그의 시신이 녹을 것이고, 그물은 다시 땅으로 샘솟아 냇물이 되어 강물이 되고 또 흘러가 바닷물도 될 것이니, 그 속에 물로서 변형된 생명존재자의 그 어떤 원소가 살아있으리니, 그 존재자는 시내 물로 강물로 바닷물로 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요, 그 물을 먹고 자란 식물 속에 동물 속에 그 생명존재자의 그 어떤 성분도 함께 하리니, 그는 또 그들 속에 함께할 것이라. 그러므로 비록 사람으로서의 그 존재자의 삶은 끝났다 할지라도 그는 변형된 여러 가지 생명으로 이 땅과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이니,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천지부모님 품에 먹고 자라고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죽은 후라도 이 세상은 또 다른 나로서 영원히 살아가야할 곳이며, 이 세상 생명모두가 나와 함께 생명을 나눈 존재인 동시에, 천지부모는 바로 나 자신의 또 다른 한 생명일 수 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또 다른 생명체이기도 한, 이 우주를 즉 천지부모님이 영원히 아름답고 깨끗하게 생명을 키워주실 수 있도록 자연환경을 더럽히지 말고 파괴하지 말고 잘 보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하는 것임을 확실히 깨닫고 그에 걸 맞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육신은 이렇게 변이된 모습으로 여러 생명 속에 함께 살지만, 육신의 주체였던 정신 마음 성품 그것은 어디로 갈 것인가? 육체의 소멸과 더불어 소멸될 것인가?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육체의 소멸로 그 작용 할 곳을 잃은 성품은 일단 “氣” 로 변이된다고 생각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고 작용하는“氣”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누구에게선 “온기”가 또 누구에게선 “냉기” 또는 음침한 “氣기” 여러 가지“氣”가 각각 느껴진다고, 이는 사람에게서만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기”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기” 라는 것도 사람이나 식물이나 동물이 다 끼리끼리 “종”을 이루어 군락을 이루고 살아가듯이“기”역시 음침한“기”는 음침한“기”끼리 한데모이고 밝은“기”는 밝은“기‘ 끼리 한데 모인다고 생각한다. 존재자의 육신을 떠난 성품의 ”기“도 우주의 큰 ”기“에 융합 일치 될 때 좋은 성품의 ”기“는 좋은 성품의”기“ 끼리 나쁜 성품의 ”기“는 나쁜 성품의”기“ 끼리 모여 진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우주의 무궁한 기운 속에 합쳐져 있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각각의 전생의 인연의 과를 따라 다시 생명체의 몸에 새로운 성품으로 품부되어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사님께서도 성령출세설을 통하여 가르침을 주셨으니, 신사께서 사람이 곧 한울인 심법을 받으시고 향아 설위의 제법을 정하시니, 이것은 우주의 정신이 곧 억조의 정신인 것을 표명하심과 아울러, 다시 억조의 정신이 곧 내 한 개체의 정신인 것을 밝게 정하신 것 이니라. 이를 한층 뜻을 좁히어 말하면 전대 억조의 정령은 후대 억조의 정령이 된다는 점에서, 조상의 정령은 자손의 정령과 같이 융합하여 표현되고, 선사의 정령은 후학의 정령과 같이 융합하여 영원히 세상에 나타나서 활동함이 있는 것이니라. 하시며 결국 령의 새로운 작용 즉 새 몸을 통하여 성품으로 거듭남을 일깨워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100년을 살지 못하고 가는 비록 짧은 인생살이지만 착하고 아름답게 천지무모님의 은혜와 만물이 너와 내가 아닌 한 몸 한 성품임을 확실히 터득하여 살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

나의 짧은 생애는 비록 끝났다 할지라도 변이된 다른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가야할, 이 우주 천지부모님의 품이기에 현상적으로 깨끗이 보존해야 하며 내 육신을 떠난 성품이 다음 내 후세를 통하여 다시 살아가야할 세상이기에 아름다운 성품과 올바른 정신으로 살다가야 그 영향을 받은 후세들이 이루어갈 이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이 바로 혈연적으로는 가문의 성품을 아름답게 이끌어갈 것이요. 이러한 한 개개인 가문의 혈연적 정신들이 모여서 사회적 정신을 형성 할 것이니, 오늘 나의 삶이 바로 내일의 내 후손의 삶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법설]그러므로 천지부모를 길이 모셔 잊지 앉는 것은 깊은 물가에 이르듯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여 지성을 다하고 공경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자식 된 도리 이니라. 하신말씀을 풀어서 말한다면, 이는 바로 이 세상에 생명의 존재자로서 모든 존재자의 그 어떤 ‘기’와 그 기로부터 생성된 물질계 자연현상으로부터의 무위이화의 작용에 의하여 먹고 입고 호흡하며 생명을 유지해온 생명존재자가, 그 모든 작용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그 작용을 하는 천지부모의 고마움을 모르고, 무위이화의 현상의 토대가 되고 표현하는 하늘과 땅, 즉 우주상의 모든 물질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파괴하고 더럽히고 낭비한다면 그것이 곧 천지부모에 대한 불효라 말 할 수 있다.

“待人接物”에서 말씀하시기를 만물이 시천주 아님이 없으니 능히 이 이치를 알면 살생은 금치 아니해도 자연히 금 해지리라. 제비의 알을 깨치지 아니한 뒤에라야 봉황이 와서 거동하고, 초목의 싹을 꺾지 아니한 뒤에라야 산림이 무성하리라. 손수 꽃가지를 꺾으면 그 열매를 따지 못 할 것이오, 폐물을 버리면 부자가 될 수 없느니라.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각 그 목숨이 있으니, 물건을 공경하면 덕이 만방에 미치리라.

이 말씀은 오늘날의 자연파괴 현상에 대한 예시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으니, 오늘의 과학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극단의 이기주의는 천지부모님이신 자연에 너무도 해악을 많이 끼쳐 이제 그 해악의 피해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으니 이를 가리켜

[법설] 그 아들과 딸 된 자가 부모를 공경치 아니하면 부모가 크게 노하여 가장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벌을 내리나니, 경계하고 삼가라. 내가 부모섬기는 이치를 어찌 다른 사람의 말을 기다려 억지로 할 것인가? 라고 하셨다. 이를 오늘의 현상과 대비해본다면 우리는 개발 이라는 이름으로 산을 깍 고 빌딩을 짓기 위해 수 십 길 지하를 파고 도로를 포장하니 물을 저장할 수목의 삼림도 점점 줄어들고 지하수도 줄어들며 마을의 뒷골목까지 편리함을 추구하는 포장도로는 빗물을 그대로 흘려보냄으로서 지하수의 고갈과 지열의 반사로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며 달리는 자동차 각종의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는 모든 기계문명은 편리함을 주는 대신에 인류의 삶을 멸망을 향하여 치닫게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나타나 참혹한 피해를 불러온다.

오늘날 물질문명의 발달은 마치도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탄 사냥꾼의 형상이다. 내리자니 물려죽을 것이요. 달리자니 그 또한 불안한 종말이 예견되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그것은 바로 수많은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한 온실 가스의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의 생산을 중지한다면 공기는 정화될지 모르지만 그 업종에 관련된 모든 직종의 종사원들이 대량실업을 가지고 올 것이며 모든 유통망이 마비되니 그 또한 크나큰 사회문제가 될 수박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에 대한 우리 천도인의 생활태도를 어찌 해야 스승님의 천지부모님께 효도 하라는 말씀을 조금이라도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들이 입으로는 경전을 달달 외우고 경전을 뜻풀이하여 설교는 잘하면서도 정말 우리가 경전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가?

우리가 경전의 가르침의 반만이라도 시행하고 산다면 이미 세상은 지상천국이 되었을 것이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천도교인들을 존경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본인이 제의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 하나씩만 이라도 실행하고 살자고 항상 강조 하며 본인만이라도 실행하고 살려고 노력한다. 사소한일이지만 될 수 있는 한 일회용 물품의 사용을 억제하며 산 다는 것,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남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나 하나 환경을 덜 더럽힌다고 무엇이 얼마나 개선되겠느냐고?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나 하나만이라도 환경을 덜 더럽히도록 하고 살겠다는 의지로 실행하고 산다면 그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나친 종이의 낭비가 지구의 허파라는 아프리카 밀림을 황폐화시키고, 강대국의 수요 충족을 위한 무분별한 유전개발은 지금 아프리카의 천연의 낙원을 파괴해 그들의 삶을 황폐화 시키고 있다. 본인은 어떤 장소에서건 많은 종이컵 들이 한번 쓰고 수많이 버려질 때마다, 따뜻하게 난방을 올릴 때마다 강대국의 자원 침략으로 생활의 터전이 황폐화되어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원주민의 비참한 모습이 눈앞에 아롱대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우리들이 종이컵하나 비닐봉지 하나라도 덜 쓰고 덜 버리는 것이 바로 천지부모님을 길이 모셔 잊지 아니하는 것이며 효도를 하는 것이며 物吾 同胞 人吾 同胞)의 천지포태의 한 형제임을 잊지 않는 마음가짐이요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한사람이 일생동안 쓰는 종이의 양이 100년 된 나무 500그루가 생명을 잃고 얻어지는 양이라고 한다. 지식인일수록 결국 지구의 황폐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산다고 볼 수 있다. 100그루의 나무를 심어 그것이 100년을 자라는 동안 과연 몇 %나 살아남을 수 있을 가? 그러나 500그루의 나무를 써버리는 것은 한사람이 불과 6-70년 동안에 다 써버린다는 말이다. 아직 아프리카에 원시림이 많으니 우리들의 일생동안에는 그런대로 살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후손들 또 다른 존재로서 살아갈 먼 훗날을 생각 한다면 어떻게 종이 한 장 종이컵 한 개를 마구 써 버릴 수 있겠는가?

수만리 밖 아프리카 밀림의 황폐화는 물론 직접적인 그곳 주민의 피해가 가장 크지만 그것은 결국 지구온난화. 오존층의 파괴 기상 이변 등을 일으켜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또한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 간, 종교 간의 전쟁, 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 등은 많은 폭발물과 유전의 폭파로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천지부모의 은혜를 배반함이요, 우리를 먹여주시고 길러주시는 어머니의 살갗에 칼질을 해대고 불을 지르는 패륜의 행위라 할 것이다.

또한 전쟁을 통하여 죽어가는 많은 생명체들 이모두가 천지자연의 품속에서자란 포태의 형제를 서로 죽이는 패륜의 행위라 할 수 있다. 본인은 이러한 현상을 보며 초등학교 때 배운 금고기의 동화가 생각난다. 가난하지만 착한 어부가 금고기를 잡았다 살려주고 할머니의 욕심에 의하여 많은 재물을 얻고 부자가 되었으나 도를 넘는 할머니의 욕심은 금고기의 노여움을 받아 모든 것을 잃고 애초의 가난으로 다시 돌아 왔다는 이야기, 이것은 오늘날 무위이화의 자연현상에 도전하는 첨단과학을 통한 보다 편리한 보다 빠른 물질문명의욕구가 불러올 지구파멸의 앞날을 예시한 이야기로 자꾸만 연상된다.

자연현상의 천지부모를 길이 모셔 잊지 아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천지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 지키고 보호해야 될 중요 한 것이 또 있으니, 이는 바로 우리자신의 몸이다.

이 몸은 나의 것이나 혈연 상으로는 나의부모님의 피와 살을 나누어 받은 부모님에게 속한 것이며, 천지부모의 무위이화의 은덕으로 부모의 포태에 무사히 안착하였다 세상에 나와 천지부모의 조화에 의하여 살고 있으니 또한 천지부모님의 몸이요. 또한 내 배우자와 내 혈연의 가족과 밀접한 관계로 맺어져있으니 내 몸은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러한 내 몸을 제대로 건수하지 못하여 병들거나 사고 등으로 요절한다면, 이 또한 부모님과 천지부모의 낳아주시고 실어주시고 덥혀 주시며 먹여주시는 은혜를 배반했다 할 수 있으며, 가까운 내 가족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고 사회를 병들게 하니 이 또한 천지부모에 대한 불효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내 몸의 질병으로 또는 오염으로 천지부모의 사랑하는 자식이요 만물의영장인 우주의 열매요 꽃인 우리들의 2세를 기형아로 만들어 세상에 나오게 하니, 기형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불행은 물론 이려니와 세상을 병들게 하는 것이며, 이러한 질병이 만연한 사회는 의료비 부담의 증가를 일으켜 자신의 몸을 제대로 조절해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금전적 피해를 주는 것이니 이 또한 천지부모의 뜻에 반하는 불효이며 동포형제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자연만물은 모두가 다 쓰임이 있기에 존재하며 존재하는 한 그 쓰임의 목적대로 온전히 쓰여 지는 것이, 그 존재자의 존재가치를 다 발휘하는 것이며 각 존재자에게 주어진 쓰임의 가치가 온전히 발휘될 때 천지부모는 기뻐 할 것이다.

곡식이 온전히 익어야 곡식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여 생명의 먹 거리로 쓰여 졌을 때 곡식으로서의 사명을 다 했듯, 우리 인간도 세상에 나왔으면 건강한 몸으로 천수를 다 할 때만이 인간으로서의 세상에 나온 근본적 사명을 다 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이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몸이라 하여 건강에 해로운 청량음료나 독극물에 가까운 각종기호식품 담배 술등을 지나치게 먹고 마시며 규칙적 생활을 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나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과 천지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주변사람을 힘들게 함으로써 내주변의 한울님을 괴롭히는 일이니 이 역시 천지부모님에 대한 불효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적 사실에 대한 파괴의 불효보다 더 무서운 불효가 있으니 이는 우리의 마음이랄까? 성품이랄까? 이를 잘 조정하지 못하여 성내고 남을 미워하며 욕심을 부리고 악행을 저지른다면, 결국 그러한 존재자의 성품은 그 존재자가 죽은 후에도 소멸하지 않고 우주의 큰 기운에 융합되었다가 인과에 따라 다시 새로운 생명 속에 깃들어, 다시금 이 세상존재자로서 활동 하게 될 때, 새로운 존재자로서 탄생한 육체적 실체의 기억 속에는 기억되지 않지만 연어가 부화된 곳을 찾아오듯, 벌이 꿀을 좋아하는 것이 벌 속에 이미 꿀의 성분이 있기에 꿀을 좋아하는 것처럼 악한 “기”의 인과에 의하여 태어난 사람에게는 아무리 후천적 성장여건이 양호하다 하여도 존재자의 그 어느 곳에 내재한 악한“기”의 영향에 의하여 사람이 모질고 독할 수 도 있으니, 이런 사람은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 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이것이 바로 천지부모에 불효하면 자손이 영락할 것이라는 이치에 합당한 결과라 할 것이다.

[법설] 내가 부모 섬기는 이치를 어찌 다른 사람의 말을 기다려 억지로 할 것인가. 도무지 이것은 큰 운이 밝아지지 못한 까닭이요 부지런히 힘써서 착한데 이르지 못한 탓이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로다.

라고 하시었으니 우리가 어찌 천지부모를 ,즉 자연환경을 잘 보존토록 노력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爲爲心으로 대하며 이세상의 모든 만물을 진정 천포형제로서 대함을 어찌 남의 말을 듣고 억지로 할 것인가. 우리가 천지자연을 공경하여 깨끗이 보존함도 결국 나를 위함이요. 성품을 아름답게 다스려 내 마음을 편안히 하고 내 형제와 이웃과 동포와 세계인을 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함도 결국 나 자신을 위함이니 이를 어찌 누가 시켜서 할 것인가?

모든 것이 내가 죽은 후라도 변이된 그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과 영원히 함께할 나의 또 다른 내가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고자 함이요. 내죽은 육신의 집을 떠난 내 성품이 언제인가 다시 인과의 연 따라 다시 살아갈 세상에 아름다운 개인, 아름다운 가계, 아름다운 사회적 정신으로 충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이치를 안다면 어찌 싸움을 할 것이며 천지자연을 더럽히는 행위로써 천지부모의 노여움을 살 것인가?

이러한 이치를 배우고 익히는 우리 천도교인들이 먼저 솔선수범 하여 모범을 보인다면 아마 이 세상엔 지상천국이 이룩될 것이라 확신한다.

모든 사람들이 人我(인아)의 나를 버린 天我의 나로 거듭 나 진다면 그리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 산다면 그것이 천국이요, 그것이 바로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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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하오마 ip1 2013-01-22 18:28:37
    참으로 좋으신 말씀이시네요..
    널리--널리 ...
    많이-- 많이...
    오래--오래 전파 하세요.

    근데 아무리 동성명이라 하여도,,, 유관순 이라는 이름만은 좀 삼가해 주세요.
    혹-- 님에게 해가 되지 않을가 심히 염려스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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