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UN대사 ‘면전시위’ 3년째 마영애씨
북UN대표부
기피인물 1호 꼽혀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북한대표부 사람들이 마영애라면 소름이 끼칠 겁니다.”
뉴욕에
있는 북한 UN 대표부의 기피인물 1호는 누구일까. 필경 탈북 예술인 마영애씨가 가장 윗자리에 있을 것이다.
마영애씨는 지난 3년
간 뉴욕에서 대북 관련 시위를 가장 많이 한 주인공이다. UN 본부 근처에 있는 북한대표부 앞에서 벌인 시위를 포함 수백 차례나 시위를 한 대북
시위의 달인(?)이다. 근래의 시위는 더 강도가 세졌다. 지난 9월18일부터 12월20일 현재까지 석 달째 동료들과 함께 ‘북한인권법’ 통과를
요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UN 본부 앞에서 하고 있기때문이다.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강타해 뉴욕이 마비됐던 며칠을 제외하곤 시위를
쉬지 않았다. 그이가 대표로 있는 탈북자인권협회와 미주탈북자선교회 공동주최로 펼치는 릴레이 시위엔 6·25참전유공자협회와 대뉴욕지구광복회,
뉴욕해군동지회, 황해도민회, 뉴저지해병전우회 회원들도 힘을 보탰다.
북한 인권 침해 비난 결의안은 지난달 27일 UN 제3
위원회에서 표결없이 채택됐고 이달 말 예정된 총회에서 최종 심의를 앞두고 있다. 마영애씨는 UN 본부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두
블럭 떨어진 북한대표부 앞으로 이동해 추가 시위를 벌인다.
시도때도 없이 벌이는 마씨의 시위에 북한대표부는 골머리를 앓는다.
평소엔 피켓을 들고 조용한 시위를 하지만 북한 대표부 사람들이 나타나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도록 고함을 친다.
마영애씨가 특히나 공포의 대상인 것은 특유의 ‘진드기 시위’를 하기 때문이다. 북한대표부의 중요 인사들이 눈에 띄면 바로 밀착해
따라가며 구호를 외친다. 보통 이들의 행선지가 UN이기 때문에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뉴욕 한복판에서 아시안 여성이 아시안 남성을 따라가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은 뉴요커들의 시선을 모으기 마련이다.
북한대표부의 신선호 대사는 지난 3년 간 이런 봉변(?)을 세 차례나
당했다. 더욱 곤욕인 것은 이런 모습이 취재진에 의해 번번히 촬영돼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된 것은 부임 초기인
2009년 10월30일. 신선호 대사는 북한대표부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자는 피켓 시위를 벌이던 마영애씨와
처음 맞닥뜨렸다.
수행원 한사람과 함께 힐끗 보며 지나간 사람이 북한 대사라는 얘기를 한 기자로부터 들은 마씨는 득달같이 “얘기
좀 하자”며 따라붙었다. 그러나 신 대사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공개처형당한 내 남편 살려내라”고 소리치고 피켓을 신 대사 면전에
들이대면서 50m 가량 따라갔다.
두 번째 조우는 2010년 5월21일 천안함 폭침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대를 이끌 때였다. 신선호
대사는 한성렬 차석대사와 길을 나섰다가 시위대에 막혀 대표부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동했으나 마영애씨가 아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따라붙는 바람에 주변의 뜨거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한성렬 차석대사와는 쫒고 쫒기는 추격전도
벌어졌다. 마영애씨는 “내가 따라붙으니까 갑자기 차도로 뛰어가더라. 차들 사이로 도망길래 나도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따라갔다”고 털어놓았다.
신선호 대사 등은 한동안 마영애씨를 피할 수 있었다. 현지 한인매체를 통해 이들의 시위계획을 파악하고 위험한(?) 날엔 아예
출입을 삼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마영애씨도 기습시위로 작전을 바꿨다.
세 번째 충돌은 지난 11월21일 연평도 포격 도발 2주기
시위 때였다. 당시 마 대표는 UN 본부 앞에서 벌어지는 북한 인권 릴레이 시위를 마치고 뒤늦게 북한대표부로 넘어갔다. 그런데 마침 신선호
대사가 혼자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영애씨는 “얼른 달려가 피켓을 면전에 들이대며 ‘북한 동포들을 굶겨죽이는 주제에 로켓
발사가 왠말이냐’ 하고 마구 소리쳤다. 신선호 대사가 아주 기분 나쁜 표정을 짓더라”고 전했다.
신선호 대사는 대꾸한 적이 없지만
그를 수행하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원과는 살벌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단다. “탈북인 몇사람과 함께 시위를 하는데 북한 말로 쌍욕을 하면서
‘죽여버리겠다’.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두 번이나 협박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한 번 죽여봐라’ 하고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했어요.”
북한대표부의 일부 인사는 마영애씨의 면전 시위가 일본 TV 등에까지 보도되면서 문책성 인사를 당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영애씨는 “하도 끈질기게 달라붙으니까 마영애 이름을 들으면 소름이 쫙 끼칠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대표부 사람들도 오는
크리스마스 주말부터는 얼마간 평화를 누릴 전망이다. 북한인권법이 UN 총회에서 통과 되는 시점에 맞춰 릴레이 시위가 종료되는 덕분이다.
마영애씨는 이번 대선이 누구보다 뜻 깊다. 재외선거에서 투표권을 처음 행사했기 때문이다. 2004년 미국에 온 마영애씨는 “노무현
정권 시절 북한을 비난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탄압을 당해 미국에 망명을 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9년에야 대한민국 여권을 다시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는 약 350명의 탈북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 일대에 가장 많이 있고 뉴욕
등 동북부에 3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평양예술단과 탈북인선교회를 이끌고 있는 마영애씨는 2010년 탈북인들과 함께 평양순대를 납품하는 회사도
차렸다.
매콤한 맛이 일품인 마영애의 평양순대는 뉴욕 플러싱 등 주요 한인 식당가에 공급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탈북인들을 도와주는 기관이나 단체가 거의 없어 어려운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다.
아직은 수입이 많지 않지만 형편이 힘든
탈북인들도 돕고 있다. 마영애씨는 “작년엔 탈북 가정 10가구에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는데 올해는 40가정에 전달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달 초에는 며느리를 얻는 경사도 있었다. 역시 탈북한 처녀로 아들이 공부하는 대학에서 인연을 맺게 되었단다.
내년에는 8년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마영애씨는 “한동안 무국적자처럼 살다가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것이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박근혜 당선인이 우리 탈북인에게 희망을 주고,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에도 기여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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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1-24 15:53:55
언제나 당당한 모습 참 좋아요.
보내 주신거 정말 감사히 잘 쓸게요..
서울에서 만날때 까지 부디 건강하세요.
제가 들어가는 날자 며칠내에 전화로 알려 드릴게요.
항상 그굳센 모습으로 살아가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