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계속성의 길에 온갖 장애를 설치하고 국가의 순항을 전복케 하려는 종북을 품은 민통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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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국가계속성의 길에 온갖 장애를 설치하고 국가의 순항을 전복케 하려는 종북을 품은 민통당은 해산되어야 한다.
[잠언5:6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인간의 사랑 혈육 속에 있는 사랑 일명 ‘육체의 사랑’에 사로잡히면 그는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진정한 이유를 忘却(망각)하게 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심은 혈육의 사랑만을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세계를 살펴보면 인간은 이 짧고 짧은 세상에서 혈육의 사랑에 영원을 건다. 또는 영원을 갈망한다. 그토록 가슴 절절한 사랑에 젖어 그 사랑을 펼쳐서 영원히 살기를 갈망한다. 또 그것을 人之常情(인지상정)처럼 여긴다. 인간이기에 모두 다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악마의 출구가 된다. 악마가 그 사랑으로 인간을 파멸로 몬다. 그 사랑은 악마의 출구다. 악마는 사람끼리 서로 물고 먹게 하여 망하게 한다.
악마의 족적을 살펴보라. 무수한 사람을 학살한 자들도 누군가를 사랑한다. 무엇인가를 사랑하기 위해 달려간다. 달음질한다. 그것은 갈망이고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사랑의 욕구다. 그 욕구 그 갈망은 왜 인간 속에 그리도 가슴 아리게 자리 잡고 있는가? 그것은 원래 하나님을 채우도록 되어 있는 것인데,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여 비유컨대 바람피우는 음녀가 되게 한 것이다. 음녀가 된 사랑(love)을 뇌쇄미인이라고 비유하였다. 음녀인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게 한다. 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피조물을 더욱 사랑하는 집착을 보이게 된다. 결국 큰 죄를 짓게 된다.
죄 된 삶을 사는 것이다. 사실 사랑(love)이 그 사람을 통제한다. 악마가 음녀 되게 한 사랑은 그 사람을 사로잡아 무법 불법의 사람으로 살게 한다. 이웃과 인류와 국가를 죽이는 짓을 서슴없이 주저 없이 하게 한다. 때문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 사랑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결국 망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에 반항한다. 거역한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9절부터 25절까지에 인간의 반항을 적시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모든 인간은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알도록 보이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은 그 만드신 인간에게 핑계 댈 수 없는 증거를 알려주신다고 한다. 하나님은 빛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빛으로 세상에 인간이 왜 만들어졌고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다. 결코 핑계 댈 수 없게 하신다.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 요구하심을 거부한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나려는 반역이다.
하여 지상에서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식으로 살고자 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길을 버리고 오히려 피조물에게 쏟는 짓을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통제를 얻지 못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몰려가게 된다고 한다. 그것이 곧 인류의 비극의 이유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잃어버린 것이.
인간은 하나님의 통제 그 사랑의 통제,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거부한 것 그것을 잃어버린 것 그 자체가 결국 존재이유를 창조목적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인간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저버리고 자기들의 사랑을 위해 하나님을 모독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다 쇠잔 쇠락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거부한 결과는 망함이다.
사람이 결국은 그가 사랑하는 사랑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는 것의 의미로 인생을 산다. 그 때문에 인간의 생명의 의미는 그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장수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갈망으로 타락한다. 건강 장수 100세의 의미는 결국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 넣은 것에 있다 하겠다. 김일성만수무강 연구소에서 김일성을 위해 신체의 각 장기를 무조건 바치기로 서약한 자들이 늘 대기 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오래 살기 위해 타인의 피를 정기적으로 공급받았다고 한다. 그런 짓을 당한 사람은 젊은 나이에도 늙은 몸이 되어 치명적인 노화를 겪는다고 한다. 참으로 흉악한 짓을 자행한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영생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준다는 이 어마어마한 발상의 의미는 바로 그 사랑이 얼마나 그 자신들에게 환상을 주는가에 있다. 그것은 결국 얼마나 악마적인 사랑인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 자신을 송두리 채로 내주게 하는 사랑의 의미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거역함에 있다 하겠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구를 조성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의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사랑의 통제로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을 만든 목적이라고 하신다. 그것이 곧 인간 존재의 이유 생명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모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통제를 받기를 거부한다. 오로지 자기 삶이라고 생각하고 그 삶 동안에 자기가 사랑하고 싶은 것에 인생을 다 쏟아 붓는데, 대부분 피붙이 사랑을 또는 연인과의 사랑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나님은 영생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만이 영생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라를 섬기지 못하면 나라는 만세를 할 수가 없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제를 받는 곳이다. 그 사랑으로 통제를 받는 나라가 되지 못하면 선진국은 커녕 불량국가가 된다. 온갖 사회악이 창궐한다. 그것이 곧 각기 사랑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출구가 아니고 악마의 출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각기의 이익만을 위해 불법 무법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그 이기심을 다 충족케 할 수는 없다. 국가는 그런 이기심을 법적으로 억제케 해야 한다. 하지만 도리어 표심을 위해 그 이기심을 부추기고 그 표를 받아낸다. 참으로 민주주의를 더럽힌다. 각기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이용하려고 한다. 이용하고 있다. 이것이 곧 이 나라의 만세의 길을 망하게 한다. 나라가 잘 되게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받아 서로가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살리는 길로 가야 한다. 그 때만이 나라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확보하게 된다.
그것이 없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망하게 된다. 자신을 희생하여 국가를 세워나가게 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통제를 받는 자들이 많은 것이 곧 국가 계속성의 평탄한 길이다. 든든한 길이다. 사람의 평탄한 길은 하나님의 통제에 있다.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한다.' 'Lest thou shouldest ponder'라는 palac {paw-las'}라 발음하고 'to weigh, make level, balance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이 무게를 달아주거나 수평을 또는 적정한 기준을 잡아주거나 균형 잡게 하는 통제가 없다는 의미이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쏠림을 가지면 그것은 곧 멸망이기 때문이다.
[시편 136:6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물 위에 펴신 땅에서 사람의 몸이 나온다. 하나님은 사람은 흙으로 만드셨다. 때문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인간은 모든 것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마치도 배가 바다 위에서 한 쪽으로 쏠리면 결코 평탄한 항해를 할 수가 없다. 조그만 파도에도 결국은 전복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이 통제하여 균형을 수평을 무게의 균형추를 잡아주는 것이라면 언제나 수평을 유지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무게의 중심이 되고 균형의 추가 되고 수평의 기준이 되어 평탄한 길을 유지케 하신다. 그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보존하는 길이다.
든든치 못하여도 'are moveable'은 nuwa` {noo'-ah}로 읽는데 그 안에는 to quiver, totter, shake, reel, stagger, wander, move, sift, make move, wave, waver, tremble, 등을 담고 있다. 악마로부터 오는 인생에 수많은 흔들림 'shake' 그 지진과 같은 경천동지들이 일어나는 때마다 그것에 중심을 잡아 주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에서 온다. 그 통제를 받는 자들만이 흔들기가 넘쳐나는 세상을 이긴다. 그런 'to quiver'의 흔들림에서 벗어난다. 사노라면 자기중심 잡기가 힘든 것이 있게 된다. 'totter' 특히 악마의 술에 취하거나 또는 몸이 아파서 비틀거리는 현상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고린도후서4:8-9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인생의 비틀거림 'reel' 또는 갈지자걸음 'stagger'의 현상이 단 술 취함뿐이겠는가? 커다란 충격을 받아도 인간은 전정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운동이나 신체 균형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머리의 위치와 운동이 속귀의 반고리관을 자극한 결과로 생기는데 그것이 작동치 않는다면 불능이라면 그 공포는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그런 때에라도 하나님은 그를 지켜주신다.
인생의 'wander'의 의미가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도모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각기의 사랑을 위해 움직여 가는 것에는 서로 물고 먹는 저항과 충돌의 아픔은 발생한다. 'move' 'make move'의 의미 상호 인력과 쏠림과 중력과 운동의 법칙에서 강하게 균형을 잡아 주는 힘이 없다면 결국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런 세상을 이끄는 대통령은 법치구현으로 국민으로 애국심의 길로 가게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불능의 상태로 몰려가고 있다. 사법부에 반역의 붉은 무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대통령은 그것을 이기고 국민을 그 무법불법에서 구출해야 한다. 대통령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깊이 사모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국가를 구출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한다. 그 때만이 순항하는 평탄한 생명의 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을 따라 사는 자들은 대한민국에 반역하는 것으로 산다. 그들이 대통령으로 많은 실패와 실수를 하게 하려고 'sift'한다면 또는 만일 누군가가 대통령의 실수를 걸러내려고 체로 까부르면 어쩌겠는가? 누구든지 상상이상으로 'sift'의 대란을 겪으면 사람은 당황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고 만다면 적에게 결국 공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심리 'sift'플레이도 요동치 않게 하는 힘을 얻어야 할 것이다.
파도에 흔들리듯이 ‘wave’ 땅이 물결치듯이 흔들려도 ‘waver’의 고통이 와도 ‘shake’ ‘waver’ ‘wobble’처럼 큰일 겪으면 ‘tremble’을 겪게 된다. 몸을 떤다. 몸이 가볍게 흔들리다 또는 공포에 떨리고 걱정 두려움으로 가슴이 떨리며 그러한 戰慄(전율)에 잡힌다. 그것이 곧 육체의 사랑으로 사는 자들이 당하는 고통들이다. 이런 모든 것을 다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정말 많은 것들이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그렇게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그렇게 사람을 망하게 한다. 그것은 곧 육체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것으로 서로를 격정에 분노에 떨게 한다. 참으로 혼란한 길을 만든다. 그것이 곧 악마의 출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類의 사랑들은 아우성치는 세상의 아픔을 만든다. 이런 때에 균형을 잡아 주는 무게가 있다면 이런 때 흔들리지 않게 수평을 잡아주는 힘이 있다면 이럴 때에 균형의 오묘 도리어 황금률의 균형을 잡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참으로 세상을 이기는 힘이 넉넉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떨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고집스런 사랑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이사야 51:17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일어설찌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그런 고집스러운 사랑으로 인해 망하게 되고 그 고통 중에 깨닫고 회개하여 그 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로 들어가면 적들의 수많은 공격에서도 다시는 비틀걸음을 치지 않는다. 하나님이 굳게 붙드시기 때문이다. [이사야 51:22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때문에 악마의 출구를 막아야 한다. 그것을 막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일탈된 사랑들로 인해 법치구현이 어렵게 된다.
[이사야 28:7-8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재판할 때 실수를 한다는 말의 의미가 사회 법 질서의 붕괴를 의마한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실수하니 사회 법 질서가 무너져 내린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다 망하게 된다. 망국의 결과를 가져온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성경을 풀어야 하는데, 기준이 없으니 실수한다. 왜곡 및 곡해하여 세상을 유혹한다.
하나님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에 있다. 하지만 혈육의 사랑의 기준을 참기준을 삼아 그를 높이는 선지자들이 인본주의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푼다. 그것은 대단한 실수이다. 그 때문에 생명의 평탄한 길을 알지 못하고 그 길이 든든치 못함을 알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천국과 같은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나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곧 전쟁터로 나가는 것과 같은 각오를 하지 않고는 출입 할 수 없는 무법지대가 될 것이다. 범죄와 반역이 창궐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로 대한민국을 구출할 대통령이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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