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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兵士를 도적으로 만드는 선군정치(先軍政治)의 실태 (金 民 聲)
金 民 聲 글독자 11 488 2005-01-13 12:24:30
이 글은 현명한 소수의 홈페이지 http://www.wisemid.org
의 오늘의 주제토론 편에 있는 것인데 日本의 SAPIO에 金 民 聲(조선민주혁명동맹 )대변인이
“굶주린 兵士를 도적으로 만드는 선군정치(先軍政治)의 실태”라는 글을 게재했는데 이 글을 韓國市民思想敎育硏究所(소장 韓 昇 助 고려대 명예 교수)의 高 文 昇 副所長이 번역 요약하고 한 승 조 고려대 명예 교수가 校閱한 것임.

굶주린 兵士를 도적으로 만드는 선군정치(先軍政治)의 실태

金 民 聲 (조선민주혁명동맹 대변인)
번역 高 文 昇 (韓國市民思想敎育硏究所 副所長)

일찍이 북조선 장교(將校)로 군 복무했던 동지가 체험했던 오늘의 인민군(人民軍) 병사의 생활실태를 전하고 싶다. 2년 정도 前 어느 날 우리의 동지들이 사격훈련을 끝내고 부대 병사(兵舍)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衛兵長(위병장 )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참모장(參謀長)이 매우 급하게 부르고 있어요. 무엇인가 사고가 발생한 모양이에요. 사고(事故)가!”
크게 당황해서 병사(兵舍)까지 달려가니 참모장이 이미 지프(Jeep)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대장이 뒤에 준비해둔 자동차에 올라타니 두 대의 지프(Jeep)가 급발진(急發進)했다. 북조선의 군대에서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너무 자주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제는 사고라고 하더라도 각별히 서두를 것도 없이 담담(淡淡)하게 사태를 보는 것이 보통이다.
이날 참모장과 소대장을 태운 지프(Jeep)가 정지했던 곳은 어느 농촌의 진료소(診療所)였다. 마을(村)의 당(黨) 비서(秘書)와 관리위원장이 硬直(경직)된 표정으로 밖에 서 있었다.
참모장과 소대장이 그들 뒤를 따라서 진료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소년 병사가 침대에 길게 누어있었다.
길을 가던 병사가 돌연(突然) 넘어져서 주민이 진료소로 끌고 들어왔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 소년 병사는 이미 사망하고 있었다. 참모장은 큰 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고의 설명을 요구하였고 동시에 소대장에게는 소년 병사의 신분을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소대장은 신분이 확인될 수 있는 소지품을 뒤지려고 죽은 병사의 몸을 만져 보았을 때 마치 나뭇가지(小枝)를 만지고 있는 것처럼 몸무게도 전혀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당 비서(黨 秘書)가 참모장을 밖으로 불러내어 사건의 전말(顚末)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장소에 모여 있었던 주변의 주민(住民들)은 모두가 공포로 몸이 굳어져 있었다. 마을의 보위원(保衛員)은 아주 새 까맣게 햇볕에 탄 40대의 농민을 거칠게 강제로 끌어서 소대장이 타고 온 지프에 태워서 어디론가 대려갔다.
부대로 돌아와서 사망한 병사의 신분을 확인한 결과 이름은 朴 모이고 군에 입대하여 1년이 안 되는 18세의 新兵(신병)이었다.
그의 집은 평안북도 정주(定州)이고 소속은 순안비행장(順安飛行場)에 동원 되고 있었던 평양 고사포병사령부(高射砲兵司令部). 너무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어서 농가에 들어가 옥수수와 찬밥을 훔쳐 먹다가 그 집 주인에게 발각되어 주인이 몽둥이를 휘둘렀는데 운(運) 나쁘게 뒷머리(後頭部)에 맞았고 그래서 잘못 맞아 卽死(즉사)하고 만 것이었다.
맞은 것 때문에 운(運) 나쁘게 즉사(卽死)였다고 한다.
사망한 병사의 모친은 高敎 교사이며 부친은 양정사무소(糧政事務所)의 간부라고 했다. 그러므로 소년 병사는 꽤 유복(裕福)한 가정의 장남이었다. 장의(葬儀)에서는 먼 데서부터 보더라도 이 보다도 더 슬픈 일은 있겠느냐 할 정도로 양친(兩親)의 침통(沈痛)한 모습이 보였다. 양친에게는 작업 중에 사고로 사망했다고 전달되었다고 한다.
선의 일반 사람들은 군대(軍隊)를 배후에서 “마적단(馬賊團)” “도둑집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병사의 입장에서 말하면 먹는 일이 해결 안되고 있다.
군대에는 생산 시설이 전혀 없기 까닭에 위로부터 식량이나 물자의 공급이 없으면 인민들로부터 빼앗아 먹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배 고품에 견딜 수 없는 병사들은 도둑놈으로 몰락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
그것이 예사로운 것처럼 되어 지금은 군대입대(軍隊入隊)는 도둑입문(盜人入門)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 되어버렸다.
북조선에서는 이르면 15세 통상 17세-18세에 군대에 입대한다. 김정일의 친위대(親衛隊)나 민경대(民警隊 ), 그 외에 특수부대(特殊部隊)에서 선발된 소년은 15세 일반 병으로 소집된 소년은 17-18세부터 군복(軍服)을 입는다.
從來(종래) 인민군으로 입대하는 것은 지원제(志願制 )였다. 그러나 군(軍) 복무는 노동당 입당의 지름길(近道)이며 무엇보다도 군대로 가게 되면 먹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작년부터 의무 병역제로 바뀌고 남자는 무조건 10년간의 군복무가 의무화 되었다.
식량난(食糧難)이 심각해지는데 徵兵(징병)이 시작되었다. 성장기(成長期) 한 참 먹을 나이 10대 후반에 들어선 순수한 소년들이 군대에 입대하여 최초로 배우는 것이 도둑질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10년을 그런 군대 생활을 보내게 되면 제대할 무렵에는 도둑질하는 버릇(癖)이 완전히 몸에 붙게 된다. 이런 인간들이 사회에 나오게 되면 일반인의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군대시대의 급료(給料)는 제대 후 곧 바닥이 날 것임으로 다시 도둑질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먹을 것을 몰래 훔치는 것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4-5人 으로 무리(徒黨)를 만들어 민가(民家)를 습격하여 총(銃)을 들이대며 협박하여 주민이 간신히 모아 둔 생활 물자를 빼앗는 것은 물론 심지어 부녀자(婦女子)에게 난폭(亂暴)한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폭거(暴擧)에도 일반 주민은 반항이 허용되지 않는다. 군인(軍人)에게 맞서 싸우는 것은 김정일이 주장하는 선군정치(先軍政治)에 거역하는 것이 되어서 형벌(刑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소년의 절도사건에서도 처벌은 민가에 침입하여 옥수수와 밥을 춤쳐 먹었던 병사가 아니라 그 병사를 구타한 농민 쪽이 처벌받는 것이다. 그 농민은 병사를 살해한 죄(罪)로 교화소(敎化所-刑務所)에 보내어졌다고 한다.
이와 같이 군인들이 겁도 없이 난폭한 짓을 마구하고 다닐 수가 있는 것이 김정일의 先軍(선군)정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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