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의 안목에 속은 기업인들의 자업자득, 반역의 군자금 창구 개성공단은 당연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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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김대중 노무현의 안목에 속은 기업인들의 자업자득, 반역의 군자금 창구 개성공단은 당연히 폐쇄해야 한다.
[잠언7:8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본문에서 말하는 음녀는 악마의 ‘자기만사랑’을 바유로 담아낼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서로사랑’이라는 본성을 부여하신 것이다. 상부상조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하여 모든 인간은 이런 바탕에서 서로 간에 법률적인 합의를 하고 상부상조를 현실화하여 서로 간에 서로의 이익을 만들어간다. 그 때문에 인간의 모든 교제와 상거래는 그런 상부상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인간 세상에는 악마가 들어왔고 악마는 인간에게 ‘자기만사랑’을 주입하였다.
인간 속에 주입된 ‘자기만사랑’은 인간의 욕심으로 작용하고 그것에서 나오는 욕망을 인간의 힘으로 억제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서로사랑’이라는 인간의 正道(정도)를 따라 그 본분을 지키려면 각기 속의 ‘자기만사랑’을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 통제가 스스로에게 사실 상 어려운 세상이다. 그 때문에 많은 법을 만들어 강제하고 있다. 악마는 그런 강제로도 통제할 수 없는 힘을 주는데, 그것을 저마다 받겠다고 그 길로 질주한다. ‘Passing through the street’ 의 의미로 인간의 공간이동의 의미는 어떤 이유 핑계 및 변명을 가진다.
악마의 힘을 가지면 인간 그 누구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만이 결박하고 축출하고 지옥 불에 영구격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속에 주입한 ‘자기만사랑’이 모든 핑계와 명분을 내세워 ‘Passing through the street’ 악마의 거처가 되는 짓을 自招(자초)하는 것이다. 핑계와 변명을 명분 삼아 악마의 거처가 되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저주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할 수가 없다. 이는 악마의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를 소년이 음녀와 합해진 것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비유한다.
국민이 ‘서로사랑’을 선택하고 그 때문에 그것을 이루게 하는 唯一無二(유일무이)의 선택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구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들과 더불어 사는 ‘서로사랑’이고 욕심인 '자기만사랑'을 이기는 권능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창조와 생산능력을 얻어 풍요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반대의 길로 가는 것이다. ‘자기만사랑’ 과 일체성은 음녀와 합해지는 것처럼 악마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악마와 합하는 것으로 해서 김일성의 체제가 악마의 몸이 된 것이다. 악마의 힘을 누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힘을 누리면 ‘자기만사랑’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악마의 힘을 얻어 인간들을 파괴하고 있다. 그것들이 도리어 핵무장을 하고 세상을 요동치게 한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 그것들의 악마의 힘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를 요구치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의 힘으로만이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무시하니 악마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준동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들에게 늘 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자고 인간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요한계시록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함에도 그 소리를 거절하고 인간의 힘으로 상부상조를 만들고자 한다. 인본주의가 그런 주장을 떠받들어 준다. 인본주의의 힘으로는 결코 악마를 이길 수 없는데,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악마의 세상을 이기려고 한다. 불가능하다.
악마의 힘을 인간이 이길 수 없다. 국민의 합으로도 이길 수 없다. 이미 인간은 그 속에 ‘자기만사랑’이 주입되어 있다. 그것이 욕심으로 작동하고 있고 그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들은 언제나 방어기제를 구사한다. 그것을 구사하는 인간은 마침내 악마의 몸이 된다. 악마는 인간의 모든 법치를 파괴한다. 때문에 이것들과는 정상적인 거래를 할 수 없다.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이 민족의 동질성으로 가능하다고 강변하는 오만이 득세하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전혀 불가능하다는 학습효과를 한 셈이다.
대게 사람은 자기행동의 명분과 실리를 구사하는데 익숙하다. 그 나름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그것으로 인지상정 삼아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우리가 늘 지적하는 바와 같이 ‘자기만사랑’은 그 존재의 법이고 그 존재의 어떠한 행동이든지 사랑하고 변호하고 무죄 의롭다고 강변한다. 모든 것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명분으로 삼는다. 북괴의 ‘자기만사랑’은 언제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 악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자기만사랑’으로 인간을 유혹한다.
악마의 거처가 된 그것들과 무슨 미래를 논한다고 개성공단을 만들어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려 했단 말인가? 그 만큼 북괴의 본질의 그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의 안목에 속은 기업인들은 그곳에 투자를 하고 그것으로 군자금 창구로 삼게 한다. 참으로 해괴한 곳인데 그것에 같이 덩달아 춤을 춘다. 악마의 '자기만사랑' 경제주체와 '서로사랑' 경제주체는 결코 동업할 수 없어야 한다. 동업해서도 아니 된다. 하지만 악마의 ‘자기만사랑’은 언제나 자기들만이 의롭다고 강변한다. 그 강변은 곧 결국 개성공단폐쇄라는 자충수를 둔다.
‘Passing through'는 abar {aw-bar'}라 발음한다. 그 안에는 to pass over or by or through, alienate, bring, carry, do away, take, take away, transgress 등을 담고 있는데, 그것들과 동업은 결국 탈취당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자업자득이 아닌가? 어떻게 그들과 동업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왜 직원들을 인질로 삼아 그곳에 버텨 있게 하는가? 악마의 '자기만사랑'의 패악이 얼마나 흉악하고 흉포한지 아직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어서 속히 잔류직원들을 전원 다 귀환케 해야 한다. 사실상 인질로 잡는 자들이 누군가?
그것들과 한통속인 자들이 아닌가 한다. 악마의 '자기만사랑'은 하나님께 패역 하는 이유로 삼고 국가에 반역하는 이유로 삼고 이웃을 파괴하는 이유로 삼는다.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오늘 날 개성공단입주 사장들에게 큰 책망을 한다. 왜 그리 무모한 투자를 하였는가? 또 그것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핵폭탄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있는가? 등등의 무성한 비판이 그것이다. 참으로 자업자득을 당한 것이고 그들을 그 지경으로 인도한 것이 김대중 노무현이고 이명박은 마냥 방치한 것이다.
악마의 ‘자기만사랑’의 핵무장化(화)는 여러 명분을 만들고 그것으로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자기만사랑’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그들은 돈을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는데, ‘자기만사랑’은 창조생산력이 없다. 그 때문에 악마적인 방법으로 탈취 사취 갈취 강취 약취를 해야 한다. 그 때문에 핵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들이 이제 전쟁소동이라는 심리전을 구사하는 짓들은 대한민국을 공갈 협박하여 조공을 받겠다는 것이다. ‘서로사랑’이라는 원칙을 파괴하는 짓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음흉한 惡意(악의)다.
상부상조로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그 본성이다. 그 본성을 파괴하는 짓을 하는 것이 ‘자기만사랑’이다. 상부상조에는 더불어 거래를 하는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자기만사랑’에서 나오는 이유로 명분을 삼아 탈취하고 사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이루는 남북의 합의를 일방적인 이유들로 깨고 그곳에 투자한 대한민국의 재산을 탈취하려는 수법인데, 이런 자들과 기업을 구상하고 그동안 그 어리석은 투자를 했다는 것은 투자처를 보는 안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목을 받아 누려야 한다. ‘to pass over or by or through’ 그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잘못된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높은 안목을 가지고 가는 길의 맞은편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기다리는지를 등의 안목, 맞은편으로부터 무엇이 ‘bring’ ‘carry’ ‘do away’ ‘take’ ‘take away’등의 안목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는 계속되어야 한다. 잘못된 투자는 국가를 망치기 때문이다.
국가경영에 안목이 나쁘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창세기13장 9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잘못된 안목이 얼마나 큰 후회를 불러오는지를 알게 한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눈에 보기에는 좋은 땅이었으나, 그곳에 사는 거주민의 惡性(악성)을 구분치 못했다. 사람이 무슨 사업을 투자하더라도 그 투자 대상의 곳의 인간성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어야 하는데, 롯은 그런 안목을 갖지 못한 연고로 우선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을 선택한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다. 결국 불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되는데 롯은 겨우 두 딸만 건졌다.
북괴 속에 있는 악마를 감지하는 안목이 없으니 개성공단에 투자했을 것이다. 정치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업인들이 타당성 조사도 안하고 무조건 투자했다는 것은 실패를 각오했다는 말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만사랑’으로 살면서도 그런 저럼 명분을 내걸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변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도 국가도 하나님이 정하신 正道(정도)가 있다. 그 정도를 벗어나는 길로 간다는 것은 인간에게 합당치가 않다. 정도를 벗어나는 인간들이 가득한 국가는 악마의 덫에 걸린다.
악마의 ‘자기만사랑’이 득세하는 장소가 되어 오늘 날의 북괴처럼 된다. 전대미문 미증유의 참혹한 인권유린과 생명경시 풍조가 그곳의 모든 부요를 쓸어 담는 빗자루가 되어 수령의 주머니만 채우게 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길을 마다치 않고 가서 악마의 힘으로 사취 탈취 약취 갈취 강취 등을 정당화 한다. 그런 것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서로사랑’과 ‘자기만사랑‘의 對蹠(대척)에서 인간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인간의 본성은 ‘서로사랑’하는 것 상부상조를 원하나 인간의 욕심인 ’자기만사랑‘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늘 그것에 이끌려간다. 인간은 ’자기만사랑‘의 행동화에 강요된다. 인간의 정도를 버리고 욕심의 곳으로 가는 과정을 지나간다. 수많은 이유를 달아서 정도의 요구를 묵살하는 과정을 통과한다. 정도를 버리는 길로 지나가고 ’자기만사랑‘의 영역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늘 그곳으로 가는 자들은 그 길로 가는 것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그런 통과는 언제나 법치파괴에 있다. 불법무법은 거기서 번성한다.
인간의 본성을 따라 만든 법치를 망가지게 한다. 욕심의 소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아서 ‘서로사랑’하고 살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 명령을 거역하고 ’alienate‘ 멀리하고 소원하게 하고, 조직적으로 상부상조를 파괴하도록 이간하고 양도하고 서로사랑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기만사랑‘을 정당화 한다. 그것이 무엇을 가져오는가? 무엇을 초래하는가? 무엇을 데려오는가? 무엇을 일으키는가? 무엇으로 오게 하는가?
그것에 안목이 밝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악마와 악마의 파멸만 가져올 뿐이다. 대한민국을 망하게 할 뿐이다. ‘자기만사랑’을 집착하는 그것이 과연 대한민국에 무엇을 나르고 전하고 또 무엇을 휴대하게 하고 지니게 하고 지탱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에 안목이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다만 악마의 손길이고 그것으로 인해 멸망뿐이기 때문이다. ‘서로사랑’에서 떨어져 저리로 사라져 끊임없이 떠나 상부상조를 포기하는 길로만 가는 나라와 국민성에서 도대체 무엇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악마만 나온다.
그런 안목이 없다면 악마만 가득하게 하고 상부상조를 유린하는 것이다. 그것에서 도대체 그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처절한 빈곤만 얻게 한다. ‘서로사랑’을 포기하면 다만 ‘자기만사랑’으로 살게 되는데 그로 무엇을 잡고 움켜잡고 점령하고 획득하고 사게 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다만 법치파괴의 transgress의 의미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담을 넘어 가는 것이고 벗어나는 것이고 어기고 위반하고 범하는 것이다. 때문에 국민은 이제라도 하나님의 안목을 얻어야 한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안목을 주신다. ‘서로사랑’ 하는 차원의 문화에서도 국제경쟁력을 가진 높은 안목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안목을 주시는 것이다. 한민족은 이 한반도에서 살아야 하고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인해 대한민국 만세로 가야 한다. 영원히 대한민국 만세로 가는 안목을 얻어 누려야 한다.
북괴로 인해 ‘자기만사랑’이 얼마나 악마적인 것과 그것이 악마의 처소임을 알게 되는데 있다. 일본의 지금 하는 짓은 망하는 안목 ‘자기만사랑’의 선택이다. 곧 망하게 될 것이다. 추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중국도 그러하다. 대한민국 만세는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는 하나님式(식)의 상부상조로 가야 나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라고 하신다. 상부상조의 지혜를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눈빛을 통해 그 안목으로 국가경영 국제경영 대북문제를 다루는 대통령이 되시기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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