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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지키는 북한 군인들 미국 팝송 흥얼거리더라"
Korea, Republic o 토속인 0 390 2013-05-11 16:29:11

"판문점 지키는 북한 군인들 미국 팝송 흥얼거리더라"



북한 잠입취재 8일… BBC 스위니 기자가 본 실상

북한 잠입취재 중 판문점에서 북한군 장교와 기념 촬영한 존 스위니 BBC방송 기자. 이 장교는 스위니에게 “전쟁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BBC 화면 캡처]

BBC방송의 존 스위니(55) 기자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지간한 독재국가는 다 가본 그였지만 북한은 더 특별했던 모양이다. BBC방송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그는 지난 3월 23~30일 7박8일 동안 런던정경대(LSE) 박사과정 학생으로 신분을 속이고 북한에 다녀왔다. 학생 관광단에 포함돼 북한 곳곳을 둘러봤다. 그가 만든 30분짜리 북한 고발 프로그램은 지난달 15일 BBC 채널1을 통해 방송됐다. 영국에서만 540만 명이 시청했다. 스위니는 동행한 10명의 학생을 위험에 빠트릴 뻔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위장 잠입이 들통났을 경우 모두 억류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LSE 학생 논란 때문에 인터뷰를 주저하는 스위니에게 “LSE 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7일 진행된 인터뷰 도중 그 부분도 캐물었다. 위장 취재 전문인 스위니는 “기자인 당신이 당연히 그 부분도 물어볼 것으로 짐작했다”며 웃었다.

존 스위니 기자의 잠입취재로 만든 BBC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파노라마'에는 외국인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주민들의 궁핍한 일상이 생생히 담겼다. 그가 묵은 평양호텔 뒷마당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사진 BBC방송 화면 캡처] - 북한 '여행'은 어땠나.

 “지난 20여 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약 90개국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24개국은 독재국이었고, 그중 10개 나라에는 몰래 잠입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내가 가본 곳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strangest), 괴상하고(weirdest), 딱하고(saddest), 미친(craziest) 나라였다. 차우셰스쿠 통치 때의 루마니아, 후세인의 이라크, 카다피 치하의 리비아, 무가베 정권의 짐바브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최악의 나라였다.”

 - 독재정권 시절의 루마니아나 리비아에 비해 뭐가 다른가.

 “우선 국민에 대한 통제가 다르다. 당시 루마니아나 리비아에는 허술한 구석이 많았다. 국민들과 외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정보의 통제를 한번 보라. 북한에서는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지 않나. 리비아나 짐바브웨 등에서는 인터넷이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았다. 국민에 대한 세뇌의 수준이 다르다.”

도로변에는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 BBC방송 화면 캡처] - 북한을 해석하는 방식에 '내재적 접근'이라는 게 있다. 세뇌가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신념 체계'를 형성한다고 보는 방법이다. 그렇게 볼 수는 없을까.

 “인터넷과 외신들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정권이 원하는 신념 체계를 강요하는 게 세뇌가 아니면 무엇인가. 북한에 가기 전 '주체사상'에 대한 책도 구해 읽어봤다. 한마디로 쓰레기였다.”

 - 북한에 대해 무척 화가 난 것 같다. 무엇이 이토록 분노케 했나.

 “그들은 거짓으로 일관했다. 사소한 것도 속였다. 음료수 공장이라고 데려간 곳에는 음료수 병이 없었다. 어린이 야영장이라고 보여준 곳에는 어린이가 없었고, 병원에는 환자가 없었다. 환자들이 오전에 왔다가 다 귀가했다고 했다. 우리를 바보 취급했다. 평양 외곽 지역에만 나가도 얼굴이 비쩍 마른 사람들이 흔하게 있었다. 비교적 잘사는 지역도 그 정도였다. 그런데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체를 유리관 안에 놓고 국민들이 와서 절을 하도록 했다. 나도 두 시체와 두 사람의 동상에 무려 여섯 번이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어려워 보였나.

군인들은 장비도 없이 삽에만 의지해 일하고 있었다. [사진 BBC방송 화면 캡처] “3월 말인데도 꽤 추웠다. 그런데 차가운 시냇물에 손과 발을 담그고 빨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묵은 호텔도 수시로 정전됐다. 평양이 이 정도인데 다른 지역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나.”

 - 마침 그때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 위협을 막 시작한 때였다. 북한 내부 분위기는 어떠했나.

 “북한 입국 직전에 핵전쟁 위협이 시작됐다. 좀 더 긴장하기도 했고, 기자로서 행운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북한 내부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판문점에서 만난 북한군 장교에게 전쟁 얘기를 꺼냈더니 어깨를 두드리며 '걱정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이 먼저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쟁이 임박했다면 그가 가장 긴장하고 있어야 할 인물 아닌가. 판문점의 군인은 미국 팝송을 흥얼거렸고,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호텔 노래방에서 미국 노래 '마이 웨이'를 열창했다. 전쟁 위협은 거짓 협박임이 분명했다.”

 - 거짓 협박이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나.

 “내가 가본 독재국가들은 한결같이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외부의 위협을 내세웠다. 국민들의 어려운 생활에 대한 구실과 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쟁의 공포를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새로 권력을 세습한 청년 김정은에게 권력 내부와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전쟁 위협만큼 효과적인 게 없을 것이다.”

 - 북한에 가게 된 과정은.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 북한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1월 런던정경대(LSE)에 다니고 있는 아내('토미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아니다. 일본 문화를 동경한 부모가 일본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가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북한 관광을 계획했다. 그 틈에 끼기로 맘먹었다.”

아이와 함께 손수레를 끌고 가는 주민 뒤로는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이란 구호가 걸려 있었다. [사진 BBC방송 화면 캡처] - 당신은 LSE 박사과정 학생인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북한에서 신분이 탄로 났다면 함께 간 10명의 학생들 모두가 위험에 처했을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논란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두 차례 사전에 얘기했다는 것 이상의 얘기를 하기는 힘들다. 학생들은 모두 성인이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볼 때 신분을 속이고 북한에 간 것은 언론의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행위다.”

 - 북한에서 신분이 드러날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나.

 “중국 베이징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북한 관광 신청을 할 때 나는 입국 허가가 안 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진짜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실명으로 등록이 됐다. 북한 당국이 내 이름을 인터넷에서 한 번만 검색해 봤어도 내가 누군지를 알아챘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내가 등장하는 조회수 수백만 건의 동영상도 있다. 혹시 북한 입국 뒤에 신분이 들통난다 해도 추방 이상의 일은 당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했다. 북한은 아직까지 한국계가 아닌 외국인 기자를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았다는 것을 사전에 확인했다.”

 - 촬영은 어떻게 했나.

 “캠코더가 아닌 동영상 촬영 기능이 있는 일반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했다. 북한의 안내원이나 감시자들은 그냥 사진을 찍는 것으로 생각했다. 요즘은 장비가 좋아져 '몰래 취재'가 훨씬 쉬워졌다.”

평양시내 전경을 뒤로하고 호텔에서 자신을 찍은 스위니 기자. [사진 BBC방송 화면 캡처] - 당신은 위험한 나라들만 골라서 다닌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내가 정의하는 언론은 '권력과 자본이 원치 않는 이야기의 보도'다. 왕실의 뒷얘기를 다루는 기자가 한쪽에 있으면, 다른 쪽에는 돈과 권세가 저지르는 비리를 파헤치는 기자가 있어야 한다. 나쁜 권력자, 나쁜 나라를 추적하는 일을 나의 소임으로 여기고 있다.”

 - 북한 방문 직후 한국에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난생처음 한국에 가봤다. 탈북자 인터뷰가 필요해 다녀왔다. 서울에서 세 명의 탈북자를 만났다. 탈북 과정에서 사고로 팔다리가 잘린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 한국을 본 소감은.

 “남산타워에 올라가봤다. 휘황찬란한 야경이 일품이었다. 순간 매일 수차례씩 정전돼 모든 것이 어둠에 갇히는 북한이 떠올랐다. '어떻게 지척의 거리에 있는 한 민족의 두 나라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 북한에 다시 가고 싶은가.

 “신분이 드러났기 때문에 당분간 다시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꼭 한번 가 볼 생각이다. 한 탈북자가 북한의 한 병원 담벼락에 정권에 대한 비판글을 새겨 놓았다고 했다. 그곳에 꼭 가보고 싶다. 북한 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북한에서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봤다. 가입자가 100만 명이라고 한다. 외부와는 차단이 됐어도 주민들끼리의 정보 소통은 빨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뇌에서 벗어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 북한과 관련한 활동 계획은.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본 북한의 실상, 탈북자들의 증언, 북한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해석을 엮어 일반인들이 북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낼 계획이다. 영국에서는 북한이 당장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믿는 젊은이도 많다. 곧 한국에 가서 탈북자들을 추가로 만날 것이고, 영국에 있는 탈북자들도 접촉하고 있다. 지구 최악의 나라에서 세뇌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상을 폭로하는 것이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존 스위니(John Sweeney·55)=영국 BBC방송의 시사 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 소속 기자. 영국에서 잘 알려진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시사 주간지 옵서버에서 12년 근무한 뒤 2001년 BBC로 자리를 옮겼다. 옵서버 소속일 때 루마니아·알제리·이라크·보스니아 등 취재가 어려운 국가들을 찾아 잘 알려지지 않은 인권 유린 사례 등을 보도하며 이름을 날렸다. BBC로 옮긴 이후 짐바브웨 무가베 정권의 집단 학살,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의 진실 등을 파헤치며 탐사 보도를 이어갔다. 2000년 코소보 학살 취재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TV 프로그램 상인 에미상을 받았다. 이듬해 러시아 체첸공화국 내 인권 침해 보도로 국제앰네스티상을 받았다. 그는 이번에 북한의 지하철, 혁명 유적지, 공장, 비무장지대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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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 ip1 2013-05-11 22:25:30
    잴래비는 이창에서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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