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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15년만에 내약국 문열었어요
Korea, Republic o 토속인 0 601 2013-05-11 18:03:10
1호 오성애 약사
 
http://www.dailypharm.com/Users/News/NewsView.html?ID=170774
 ▲ 오성애 약사는 15년 전 탈북해 2000년 한국 땅을 밟았다.경북 경산시 하양읍에서 하양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오성애(41) 약사는 15년 전 굶주림을 피해 혈혈단신 탈북했다. 북한 김정숙교원대학에서 4년간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6년 동안 북한 어린이들을 가르쳤던 그가 탈북해 한국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약국을 연 사연은 무엇일까.
"빈 주먹으로 일어서야 했어요. 앞이 캄캄했죠."

2000년 11월, 오 약사는 한국 땅을 밟았다. 탈북한지 3년만이었다. 그는 3년 동안 중국에 있었다. 그 곳에서 지금의 남편 이상철(60) 씨를 만났다."남편이 죽을 뻔한 목숨을 몇 차례씩 구해줬어요. 2008년 2월 영남대 약대를 졸업하고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고 살고 있지만,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네요."오 약사가 말했듯, 그는 영남대 약대를 졸업했다.처음부터 한국서 약사를 하겠다는 꿈을 가졌던 건 아니다.

유아교육 전공을 살려 유치원 교사를 해볼까도 고민했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북한과 한국의 문화와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북한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됐어요. 틀에 박힌 대로만…. 하지만 한국은 다르더라고요. 아이들 일과표도 교사들이 모두 짜야하고, 부모들과도 계속 부딪혀야하고. 엄두가 안나더라고요."그러던 중 오 약사는 지역신문을 통해 간호조무사학원 광고를 접하게 된다. 한국 땅을 밟은지 2년 만에 간호조무사학원을 등록해 1년 과정을 배우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간호조무사로서 근무는 오래하지 못했다. 당시 서른살이던 오 약사가 어린 간호조무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비전을 찾을 수 없었다는게 이유다.

결국 자신의 전공을 찾기 위해 2003년 대구보건대학 물리치료학과에 진학했다. 북한에서도 공부를 잘했던 그는 보건대학에서도 시험을 치면 여러번 수석을 차지했다."교수님들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더니, 의대를 진학을 권하더라고요. 수시특별전형에 추천해주겠다고. 그래서 반년 동안 다시 공부를 했어요."지방의대를 합격했지만 진학을 포기했다. 치과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특별전형 자리가 나지 않아 약대에 도전하기로 했다.오 약사는 영남대 약대 수시특별전형에 300명의 지원자가 몰렸었다고 회상했다. 300명 중에 합격인원은 단 2명. 오 약사는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 약사는 당당히 합격, 2004년 입학했다.

2008년 2월 졸업식을 치르고 연년생으로 딸을 출산하느라 바로 약사의 길로 입문하지는 못했다. 4년 동안 아이를 키우다가 지난해 2월 경북대병원 약제팀에서 1년 정도 근무했다.경산 하양읍에 자신의 약국을 개국한 것은 두 달전 일이다."병원 약제팀 야간 근무를 섰어요. 오후 5시에 출근하면 오전 8시에 퇴근할 수 있었죠. 1시간 쉬고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동네약국에서 파트타임 근무를 섰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더라고요. 놀아줄 시간이 없었고, 아이들도 일을 가지말라고 보채기 시작했죠."

병원약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약국을 개국하게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5년 전 오 약사의 친어머니와 오빠가 탈북에 성공하면서 아이들은 친어머니가 돌봐주고 있지만 3살, 4살배기 딸들에게 자신의 손길이 필요했다.하지만 병원약사보다 자신의 약국을 운영하는 개국약사가 더 어렵다고 한다.

"병원약사는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 개국약사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직접 운영하다보니까 처방전 때문에 겪는 문제도 있고. 북한은 틀에 박힌 것을 하면 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았는데, 남한은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지고 해야하니깐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도 오 약사에게 있어 한국에 자신의 약국을 개국했다는 사실이 '뿌듯함 그 자체'다.
"한국에서 약사라는 직업이 보건의료전문인으로서 인정받기도 하고, 혈혈단신 혼자 내려왔는데 지금의 나를 일궜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럽죠."탈북 이후 15년 만에 한국 안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국에 성공한 오 약사.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받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약사로 거듭나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

"탈북자들의 이미지가 한국 내에서 그리 좋지 않더라고요. 북한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약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니까, 제가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귀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제 이름을 걸고 개국한 약국인 만큼 한국 안에서 인정 받는 '큰 약국'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목표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돈을 벌게 되면 받은 만큼 국가를 위해 일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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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ㅁㅁㅁ ip1 2013-05-15 06:07:42
    축하드립니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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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하 ip2 2013-05-15 13:12:24
    참 좋은 일이네요.
    누구나 다 소망하는 분야이지만,,, 저런 피타는 노력은 누구다 다 감히 할수 없는것 같네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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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생아 ip3 2013-05-15 13:40:33
    너도 얼른 재기 해서 일어나야지 언제까지 말레이 노숙자로 살아가련? 고작 사채빛 3천만원에 말레이로 튀었냐? 탈북자 영화 감독 정성산님 정신좀 배워라 뮤지컬 요덕스토리 제작하시다가 20억이란 빛을 졌어도 그사채빛 다갚고 재기하셨단다 그분의 정신은 체면을 버리고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한 돈벌일은 얼마던지 많다고 하셨다 초생아 주위사람들 시선피하지말고 니체면치레 할 생각말고 한국으로 당당히 들어와 밑바닥부터 시작해 당당히 사채갚고 제2의 인생 시작하기바란다 한국에서 형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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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 ip2 2013-05-15 15:07:52
    ㅋㅋㅋ 같이 놀아달라고 칭얼대는거세요? ㅋㅋㅋ
    속담에 <늙으면 애가 >된다더니..... 역시 속담 틀린데 없군요. ㅋㅋㅋㅋ
    님이 아무리 닉네임 바꾸며 숨어서 앙앙 그래도 모르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 헐뜯고 나면 더운날 냉수 마신듯이 속이 시원---- 하세요?
    님이 좋으시면 계속 그러세요,
    탈동회 노숙자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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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생아 ip3 2013-05-15 16:05:57
    너도 얼른 재기 해서 일어나야지 언제까지 말레이 노숙자로 살아가련? 고작 사채빛 3천만원에 말레이로 튀었냐? 탈북자 영화 감독 정성산님 정신좀 배워라 뮤지컬 요덕스토리 제작하시다가 20억이란 빛을 졌어도 그사채빛 다갚고 재기하셨단다 그분의 정신은 체면을 버리고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한 돈벌일은 얼마던지 많다고 하셨다 초생아 주위사람들 시선피하지말고 니체면치레 할 생각말고 한국으로 당당히 들어와 밑바닥부터 시작해 당당히 사채갚고 제2의 인생 시작하기바란다 한국에서 형님이!!!

    너가 자주한말있지? 밥은 먹고다니냐고 그 말이 돌아서 니놈한테 꽃이는구나 에그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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