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마피아가 시장을 장악 물가를 쥐락펴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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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빨갱이 마피아가 시장을 장악 물가를 쥐락펴락한다. 이들을 척결하지 못하면 창조경제는 물 건너 간다.
[잠언11:26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대한민국의 시장의 가격결정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買占賣惜(매점매석)의 행위는 범죄인데, 獨寡占(독과점)과 더불어 談合(담합)의 의미는 소규모 카르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시장의 가격을 좌지우지 하는 거대한 커넥션(connection) 의 카르텔(Kartell)도 있다. 현대적인 巨商(거상)은 貿易商(무역상)이라고 하는데 국제적으로 수출하고 수입하여 이윤을 내는 기업의 의미일 것이다. 소비자를 상대하는 도소매상인들의 카르텔의 의미가 소규모일 때도 범죄적인 시장교란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전국적인 연합의 카르텔은 두 말 할 것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이 나라의 가격의 결정권을 장악한다는 말이다.
만일 이들이 빨갱이 이념이나 국가반역의 목표를 가진 특정한 지역에 의한 카르텔이라고 한다면 그 시너지는 엄청난 것이라 하겠다. 그들의 손길에서 각 상품의 가격 결정이 좌지우지 된다면 이는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강조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이웃사랑은 시장에서도 황금비율의 가격을 찾아내게 한다. 파는 자와 사는 자의 상생의 이익이 되는 그 황금비율이 가격결정권을 장악해야 하는데, 인간의 악마적인 탐욕이 가격결정권을 장악하고 있다면 이는 재앙이라 하겠다. 사실 이 나라는 악마적인 커넥션의 카르텔이 시장 가격 결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악마의 종자들 특히 북괴의 지령을 받는 남한빨갱이 세력의 등에 올라탄 마피아(빨피아)는 시장자율성이라는 미명하에 가격결정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국제적인 가격유동에 따라 정부의 개입이 필요할 땐 받아들이고 자기들이 불리하면 언제든지 물리쳐버리는 힘을 가진 거대 커넥션(connection) 카르텔(Kartell)이다. 정부의 시장 간섭을 거부하려고 만든 이 세력은 이들만의 천하를 꿈꾸고 있다. 한국의 상권을 장악하려는 목표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만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치는 이러한 카르텔을 방치하고 대한민국 경제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에 불과하다. 때문에 척결대상이다.
그것들은 헌법적인 이웃사랑을 완성하는데 거대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카르텔의 존재여부를 규명해야 한다. 만일 특정 집단이나 지역이 하나로 뭉치기를 잘 한다면 이는 그들만의 독특한 상권이 형성이 된다. 만일 그들이 그 세를 넓혀 마피아와 하나가 된다면 elevator의 의미로 지상과 지하로 넘나드는 조직이 된다. 물론 대한민국 3부에 걸친 복마전도 여기 포함된다. 모든 지하경제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勢(세)는 모든 상권을 장악하는 전투를 행하게 된다. 그들만의 지역 집단이기주의가 장악하는 상권을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전투에서 이기면 그들이 곧 가격결정권을 갖게 되는데, 그러한 거대 담합은 어느 특정 제품에 한하지 않는다.
그들을 거역하는 상인은 누구든지 설자리를 잃게 된다. 그들과 친하지 않으면 그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친하다는 말은 그들의 만든 이념적인 frame과 그들의 목표 hope와 그들이 만든 담합의 form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반항을 하면 결국 보복을 당하게 된다. 그런 일은 비록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직장에서도 일어나고 모든 경제행위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담합의 힘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면 숨죽이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된다. 어떤 상인이 그 가격을 합리적으로 인하하려고 해도 그것을 못하게 만드는 카르텔의 의미다. 우리 시장은 이런 비정상이 정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있다.
그 카르텔은 무신론을 바탕하고 있고 공산주의자들은 언제든지 사람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 그 때문에 그들의 속에는 이웃사랑의 더불어 사는 상생의 의미는 없어진지 오래고 어쩌든지 탐욕의 극대화의 길만을 모색하려고 한다. 사람을 잡아먹을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유물론이다. 이런 극악한 사상類(류)로 세상을 유혹하는 악마는 세계 도처에 있고 그것들의 종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그런 카르텔을 만들어 가격결정권을 장악하고 있고 또 장악하려고 한다. 악마의 탐욕이 세계시장의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에서 인류의 비극이고 재앙이라고 한다. 이런 재앙에 빠진 인간은 이에 무감각한 무능을 보이고 있다.
성경은 악마의 탐욕으로 시장가격결정을 하는 카르텔을 ‘손에 저울을 든 검은 말을 탄자’라고 한다. [요한계시록6:5-6세 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 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 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이는 재앙이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향해 나가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이웃사랑이 가격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고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소금이고 빛이어야 한다.
가격결정권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이웃사랑이 장악해야 하는데, 악마의 종자들이 장악하고 그것으로 인류의 고혈을 빨아 먹는다. 전 인류의 각국의 경제사정은 이제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도 각 국의 경제사정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어디든지 그들만의 카르텔이 있고 그것으로 부요를 축적한다. 인류의 고혈을 빨아먹게 하는 존재가 곧 악마이고 그 도구가 곧 악마의 종자된 인간마귀들이다. 그들이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일만 악의 뿌리를 가진 자들이 되었다. 일 만 악의 뿌리란 그 일 만개의 악이 다 불의한 돈과 직간접으로 연결된다는 말이다.
[디모데전서6:6-10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들은 이 짧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이웃사랑을 버리고 불의한 돈으로 부자가 되어 살기를 더 좋아하는 자들이다.
각 나라의 카르텔이 그런 저런 독창성을 가지나 그 배후에는 인간의 피에 굶주린 악마가 있다. 그것들이 즐겨 쓰는 방법 중에 하나가 買占賣惜(매점매석)이다. 특히 다국적기업이라고 하는 국경을 초월한 global 기업들이 있다. 이런 단체들은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하여 인류의 고혈을 빤다. 이런 국제집단이 일차적으로 매점매석 또는 담합하여 가격을 정한다. 각 나라의 수입을 주관하는 카르텔이 가격을 정한다. 여러 차례 도매를 거치면서 각기 가격을 결정하고 그것이 최종 소매 업체로 와서 소비자의 가격이 된다. 악마의 탐욕이 가격을 결정하니 결국 그 시장을 거부할 수 없는 소비자는 그것에 당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당국을 복마전으로 만들어 위세를 떨치는 빨피아의 매점매석으로 우리 국민의 돈을 착취한다. 그 뒤를 따라 수많은 도매의 과정을 거쳐 실제 소비자의 膏血(고혈)을 빨게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물가상승연동제가 자연스럽게 된다. 내려가지는 않고 올라가는 것에는 언제나 탄력이 붙는다. 만일 악마적인 商魂(상혼)이 거기에 없다면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시장의 가격결정권을 장악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기준 하는 이웃사랑의 調和(조화)를 이루는 가격을 찾아내는 황금비율을 도출하는 잣대를 추구하였을 것이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그 잣대가 가격결정권을 장악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하심이다.
그 잣대가 국제시장과 국내시장의 흐름에서 언제나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 것이다. 상인과 소비자를 동시에 만족케 하는 황금비율의 調和(조화)는 물가당국이 꼭 가져야 할 능력이다. 하지만 그 잣대를 악마의 탐욕이 掌握(장악)하고 있고 그것으로 복마전이 낀 물가당국을 비웃고 있다. 이들의 카르텔은 반역 산업과 그 시장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시장의 흐름을 遊泳(유영)하는 자들의 기회주의적인 同參(동참)과 자신들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게 한다. 이런 엄호 비호 속에서 그 카르텔은 무시 못 할 세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반역 산업을 품고 있고 거대한 반역시장을 담고 있다.
이 반역 산업과 반역시장을 행정적으로 받쳐주는 복마 전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받들어주는 정치인들이 있고 그들이 그 카르텔의 주구들이 되어 국가경제의 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다. 이들의 카르텔은 저주의 대상이고 날마다 국민의 저주를 받고 있다. 인민을 잡아먹을 대상으로 여기는 북괴의 지령을 따르는 이들은 국민을 뜯어먹을 대상으로 여긴다. 교묘하게 정체를 숨겨 그들의 실체성은 보이지 않게 한다. 그들은 물가를 올리고 욕은 정부가 당하게 된다. 그들이 지금 자기들의 사세의 안전을 위해 발전을 위해 촛불로 폭란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이를 저주하는 국민은 이것을 응징 척결해야 한다.
가진 자의 편법적인 횡포는 언제나 가능하다. 그것을 세습하고 그것으로 국민과 이웃을 언제나 사육대상으로 대한다. 북괴는 인민을 잡아먹을 대상으로 대하고 남한 빨피아는 국민을 뜯어먹을 대상으로 대한다. 문제는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경제성장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괴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결국 국가 전반에 경제가 침체하고 그 발전이 답보가 되고 하여 내수가 망하게 되는데, 하여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경기진작을 위한 그 나름의 황금비율을 추구한다. 그것이 이 나라의 가격이 된다니 기가 막히지 않는가? 그 때문에 우리는 강조한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잣대로 돌아와야 한다.
이 나라의 현재 모든 가격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른 잣대에서 나오는 황금비율의 국민적인 공감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만의 경기진작에서 나오는 것이다. 빨피아의 경기진작을 위해 내놓은 그들만의 황금비율에 따라 시장이 운영이 되고 있다. 정부의 간섭? 물가당국의 개입의 의미는 이들과의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한다는 것에서 늘 정부가 밀리고 있다. 하여 언제나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산출되는 그 나름을 황금비율로 삼고자 한다. 이는 정치적인 경기진작에서 나온 가격이라 하겠다. 명색은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거대 카르텔의 경기진작에서 나온 것과 대동소이할 뿐이다. 이는 국민의 눈을 가림이다. 국민은 저들의 사육대상이 아니다.
그 때문에 이 나라의 시장에서 나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잣대로 달아낸 황금비율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 비율이 장악된 시장이라면 경기진작도 물가관리도 다 하나님의 황금비율이 할 것이다. 이런 곳은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고 하나님의 잣대에서 나오는 황금비율의 모든 것을 다 받아 누리는 나라가 된다. 오늘 본문의 의미는 악마의 탐욕으로 매점매석하는 자는 국민의 저주를 받게 되고 그에 관계없이 곡식을 파는 자들은 그 머리에 복이 임한다고 하신다. 특히 인류 역사 속에 대기근시에 곡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들이 많았다. 곡식을 풀어 정당한 시세로 팔아 기근에서 탈출시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가격결정을 하나님의 이웃사랑의 잣대에서 나오는 황금비율로 한다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고 상인에게 이익이 되는 각기 이익의 의미를 충족케 한다. 물론 거기에는 각자의 지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것은 거룩한 도시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의 대 각성으로 악마의 탐욕을 이기는 사회만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열어야 비로소 물가로 동요되는 사회불안을 이기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세상을 열어야지 뜯어먹고 잡아먹는 세상을 열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창조경제는 하나님의 잣대에서 나온다.
내수경기의 확산 확대와 시장의 진작과 수출의 다변화의 의미도 하나님의 기준 하는 황금비율에 따라서 한다면 반드시 창조경제를 이루게 한다. 그 비율은 결코 부조화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곳의 시장의 저항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의 욕심을 부채질하고 악마와 결탁하는 자들은 욕심을 무한대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악마의 마인드에 따라 세상은 식인종의 세상으로 부패해가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카르텔과 시너지는 국민의 저주를 부르는 짓을 한다. 사람을 뜯어먹는 대상으로 여기는 세상은 서로를 물고 먹기 때문에 재앙에 빠진다. 경제가 혼란하면 사회가 혼란해진다.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 때문에 대통령과 물가당국은 하나님의 잣대를 가지고 그 황금비율로 가격결정권을 장악해야 한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한다. 그 때만이 그 잣대를 가지고 황금비율을 찾아내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물가가 잡혀야 적은 임금으로도 넉넉히 살수 가 있다. 물가가 높으면 국민은 경제의 노예가 된다.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국민에게 복을 받게 되는 물가와 수요에 따른 공급이 언제나 하나님의 잣대에서 나오는 황금비율에 의존해야 한다. 이런 세상은 악마의 출구를 막는데 있고 영적안보능력에 좌우된다. 영적안보가 경제안보를 튼튼히 한다는 우리의 주장에 귀담아 들어야 한다.
언제나 악마와 그 종자들이 시장에 침투하여 가격을 교란하는 그것을 이길 수 있어야 하는데, 인간은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요한일서5:4-5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하나님의 힘으로 그것을 이길 수 있다고 하신다. 그 힘을 국민에게 복된 장맛비처럼 부어주시면 악마의 잣대와 그 비율을 거부할 수 있게 한다. 소비자보호운동의 의미는 언제나 황금비율에 대하여 무지한 탓에 그 투쟁에서 밀리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국제와 국내로 이어지는 모든 유통구조를 통찰해낸다면 적정한 황금비율을 찾아낼 수 있다.
가격을 잡는 지혜의 빛 그 황금비율을 알아내는 잣대를 알게 된다. 그 때 비로소 정당한 가격을 소비자의 권리로 요구할 수 있다. 악마의 탐욕이 시장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투쟁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를 교회들이 해야 하는데, 악마의 탐욕에 빠진 교인들을 데리고 목회하고 있고 아울러 그것을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본주의에 빠져 면죄부만 남발하고 있다. 회개하지 못하는 교회는 용서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고 다만 고백만 하면 그것으로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것으로 교인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누가복음 5: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회개 없이 창조경제는 오지 않는다.
회개한 자들은 악마의 탐욕 된 경제행위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잣대에 따른 황금비율에 입각한 가격을 따라 장사를 한다. 악마의 탐욕은 더 많이 가지려는 범죄인데,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기준 안에서 지족한다. 하나님은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셔서 잣대를 가지고 모든 거래의 기준을 산출 도출하게 하시고 그것으로 세상을 요구하게 한다. 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은 일곱 촛대와 일곱별을 세상에 두신 것인데, 오늘 날 교계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그러하신 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그 때문에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도치된 세상을 산다. 재앙을 평안이라 여기라고 억지 쓰나 국민의 입에선 저주가 나온다.
국민의 저주는 곧 하나님의 저주다. 그 카르텔에 관계된 모두의 미래를 망하게 된다. 후손도 망하게 된다. 머리에 복이 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게 하는 잣대를 공유하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황금비율의 그 현묘 미묘 정묘 교묘 신묘 오묘 기묘 절묘의 경지로 들어가서 독창적인 부를 창출 생산하게 됨을 의미한다. 국민 곧 소비자의 저주를 받는 기업은 결국 망하게 된다. 망해야 한다. 그것들은 국민의 경제적인 재앙으로 작용하는 악마의 도구들이다. 이들을 물리치는 경제를 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악마의 모든 탐욕의 상혼에서 국가경제의 재앙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악마의 모든 탐욕의 상혼을 물리쳐야 한다.
그 상혼에 빠지는 인간의 약함에서 국민을 구출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빨갱이 마피아가 물가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면 이를 모르는 지도자들이 도리어 소비자에게서 저주를 받게 된다. 하여 반역경제가 반역정부를 만들게 된다. 결국 나라가 망한다. 그 때문에 이들을 척결해야 한다. 소리 소문 없이 이들을 척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을 모르니 속수무책이라 하겠다. 그 방법은 언제나 하나님의 지혜 속에 있는데 겸손히 이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카르텔과 공생하려고 한다. 이런 경제 환경에서는 결코 창조경제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들과 동거하는 것은 결코 대한민국의 미래를 먹여 살릴 수가 없다. 이들을 과감하게 척결해야 창조경제가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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