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가 의미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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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 날 짜 2005년 1월 15일 토요일 '열린우리'가 의미하는 것 '열린'은 원래 '열린 사회, 열린 마음' 등에 쓰이는 말이다.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그 개념을 명확하게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저자가 젊었을 때 스스로 마르크스 운동에 뛰어들었지만, 히틀러가 국가 사회주의(나치)란 기치를 내걸고 전체주의를 강요하고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합병하고 개성과 자유를 철두철미 억압하는 것을 보고, 그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공산주의든 그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탄압했던 나치든, 전체주의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포퍼는 둘 다 배격한다. 나아가 자신까지 포함해서 그 누구든 인간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음을 '열린 사회'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사회 사상(Zeitgeist)뿐만 아니라 가장 객관적이라는 과학의 패러다임조차 거부한다. 인간은 누구나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면서 최선을 다해 진리에 다가가고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을 그는 '열림'이라고 한다. 자연히 열린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이 둘은 전체주의를 배격할 뿐만 아니라, 자정(自淨) 능력이 있으니까. 그러나 칼 포퍼의 사상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전체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전체주의의 대척점에서 방식은 오히려 전체주의를 닮아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자유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특히 아시아 그 중에서도 유례를 전혀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국가인 한국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일상어로서 '열림'이 '개혁, 진보'의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유교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 권위주의가 사회 곳곳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하는 것, 군인 출신 대통령 시절을 불문곡직 독재로 보고 그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 일제 시대 이래의 기득권자와 경제개발 시절에 정경유착에 의해 새롭게 등장한 기득권을 반대하는 것(이론적인 극단성을 띠게 되어 가진 자를 한 묶음으로 나쁜 자들로 간주하고 증오하는 것으로 변질됨) 등을 진보와 개혁이라 이름 짓고 이런 것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시대 사상'으로 받아들임을 '열림'이라 일컬어 왔다. '사회주의, 평등, 분배' 등을 '자본주의, 자유, 성장'의 상위에 두는 것을 한국 사회의 주류에게 인식시킨다. 급기야 삼권분립도 우습게 여기는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빽'으로 삼아 2차원의 신문을 곰팡내 나는 고서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3차원의 방송을 동원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무차별로 '진보와 개혁'을 강요하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안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는 '열린 마음'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농지 개혁으로 200만 전체 농가를 전세계에서 가장 평등하게 만든 것부터 시작하여, 산업화 과정에서도 정부의 복지 정책이 아니라 기업의 고용 정책을 통해서 분배에 어떤 나라보다 신경을 많이 썼다. 한솥밥이라는 미풍양속을 살려 노조의 자유화와 관계없이 과잉 고용을 정부가 은근히 강요하면 기업이 이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또한 군인 대통령 시절에도 평균 임금이 1인당 국민소득과 엇비슷한 대부분의 선진국들과는 달리 항상 평균 임금을 1인당 국민소득의 1.5배 이상으로 유지시킴으로써 '사회주의와 평등, 분배' 등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말만 안 내세웠을 뿐,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이 도입해서 국민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알게 모르게 정착시켰다. 누진세 적용,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한 의료보험, 농가소득 보전 등 정부도 해방 이후 일관성 있게 분배 정책을 실행했었다. 오히려 과도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열린 사회'라는 것이 칼 포퍼의 사상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열린 사회'는 도리어 전체주의에 가깝다. --노조, 그 중에서도 민주노총을 인정하라, 아니 높이 받들라, 왜냐하면 그들이 열린 사회의 주인공이니까. --젊은 세대, 그 중에서도 386을 인정하라, 아니 중심으로 받아들이라,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표상이니까. 개혁과 진보에 민족이란 개념이 덧붙여지면서, 급기야 '친북, 친김정일, 주체사상'을 당당히 광장에서 외치고 처음에는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게 하고, 이것이 용납되자 이제 인공기를 태극기 옆에 나란히 세우는 것을 '열림'으로 공식화하려고 한다. 이 때 북한 정권의 실정은 절대 거론하지 않는 것이 '열린 마음'이 된다. 결국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열린 사회, 열린 마음'이라는 것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주체사상'을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와 나란히 세우다가 이윽고는 '50년 써 먹던 철판을 갈 듯이' '좌익이 주류가 되는 사회로 변혁시키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여당은 이념의 원류인 민주노동당은 동지로서, 선각자로서 존중하고 어려워 하지만, 한나라당은 적으로서, 경쟁자로서 경멸하고 배척한다. 제일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곧 투항과 변절을 의미한다. (겉보기와는 달리 한나라당에도 열린우리당과 이념이 같은 소장파가 많고 열린우리당에도 한나라당의 주류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도 많지만.) 친정인 민주당도 '4대 개혁법안'을 '4대 악법'이라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고수하는 한 상종을 않는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여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보고 마음을 열라고 강요한다. 마음을 열고 들어와 무릎 꿇기를 강요한다. 그렇게 하는 마음이 '열린 마음'이요, 그런 사회가 '열린 사회'다. 한 마디로 말해서 태생적으로 그들은 '닫힌 마음'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서 애오라지 '닫힌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다양성과 자기 오류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격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정책은 일방적이다. 무엇이든 '적과 우리'로 나눈 상황에서 실제 사회에서 시행착오를 무수히 경험하면서 배운 바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구미에 맞는 책을 수십 권 수백 권 같이 읽고 학습하고 토론한 내용에 따라, '도덕적 당위성'에 맞는 정책을 부서별로 입도 안 맞추고 박력 있게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밀어 붙이다가 저항 세력을 만나면,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도리어 '마녀'를 찾아내어 화형시킨다. 그러다가 뭔가 안 풀리면 정반대의 정책을 태연하게 내놓는다. 여기서 '우리'란 말이 나온다. '우리'는 개방이 아니다. 폐쇄다. 쇄국이다. 세계화를 반대할 수밖에 없고 1차 산업과 3차 산업의 개방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것은 팔되 '남'의 것은 사면 안 된다. 왜, '우리'끼리 강대국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고 오순도순 살아야 하니까. 사실 '열린우리'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열린'은 개방이지만, '우리'는 폐쇄니까.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강아지, 우리 집, 우리 방송, 우리 신문, 우리당, 우리나라, 우리 민족--자연히 이전에 이른바 '독재' 세력과 '수구기득' 세력이 친구 삼았던 미국과 일본, 유럽, 동남아, 남미 등으로 통하던 길,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린 바닷길'은 멀리 하고 '우리 겨레'인 북한과 수천 년 '우리 이웃 나라'였던 중국으로 통하는 길, 위아래가 엄격히 지켜지는 '닫힌 뭍의 길'은 마음 속 고향 길로 꿈에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실지로 그 사회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마저 애써 외면한다. 그럼으로써 자연히 북한의 정권과 벗이 되는 것이지만, '우리겨레 한겨레'란 말로 얼렁뚱땅 덮어 버린다. --우리가 남이가! '열린우리'에서 '열린'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김일성주의에 활짝 열린 좌파'라는 말이고, '우리'는 바야흐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지구 전체를 한 울타리로 만들어 다같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려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를 죽기살기로 거부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정체불명의 연합제안'을 공통점이 있다고 가정하고 북한을 무조건 끌어안고 황송하게도 미국에 맞서 그를 후원해 주는 중국을,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노엽지 않게 항상 방글방글 웃는 낯으로 대하는 케케묵은 사대주의를 오늘에 부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열린우리당의 명실상부한 이름은 '사회노동당' 또는 '사회조선당'이다. (2005.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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