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랑거리는 |
---|
당신의 자랑거리는 말씀 고후1;12-14 찬송 37장 347,350 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 로서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 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절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 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절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이 솜 우화에서 사슴의 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은 늘 자기 뿔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자에게 쫓기다가 그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그만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처럼 나의 장점 중에서 평소에는 그처럼 아름다워 보이고 자랑거리가 되어도 정작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우화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랑거리란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12절에서 앞부분에서 한번 나오고 14절 후반에서 두 번 나오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랑거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또 누구나 자랑거리는 있어야 하며 그런 마음가짐을 우리는 긍지라고 해요.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다면 살아가는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랑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또는 자기와 관계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어 뽐내거나, 또는 그렇게 뽐낼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자랑을 잘 못하면 화를 입습니다. 때문에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랑이 지나치면 그 끝에 무슨 말썽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자랑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순박하고 겸손한 자세와 진실한 마음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우선 순박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랑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랑은 삼가 하는 것이 좋지만 자랑을 하려거든 때 묻지 않은 순박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자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실제보다 부풀려서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지식도 부풀리고, 재산도 부풀립니다. 티코를 탈만한 형편인데 큰 차를 타고, 테니스를 칠 형편임에도 골프를 친다고 야단을 떱니다. 왜? 허풍을 떱니까? 교만해서입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면 공명심이 생겨서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니 무리수를 쓰게 되고 체병이 걸립니다. 실력이 모자란 것처럼 보일까봐 아는 체하게 심지어 소학교 나오고도 대학 나왔다고 거짓말 하고 회사에 취직하거나 회사를 차린다고 해도 결국은 실력부족으로 들통 나고 맙니다. 못사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잘사는 체하면서 무리하게 좋은 옷 사고, 고급차를 타고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가산 다 말아 먹고 가정 잃고 신용 불량자의 대열에 들어갑니다. 한국사람 고질적인 병이 무엇인지 압니까? 체병입니다. ‘아는 체 모르는 체’ ‘있는 체 없는 체’ ‘잘난 체. 못난 체‘ ‘아 푼 체 안 아 푼 체’ ‘배부른 체, 배 고 푼 체’ ‘피곤 한 체, 피곤하지 않은 체’ '즐거운 체 괴로운 체‘’행복한 체 불행한 체‘’기쁜 체, 슬 푼 체‘’지고도 이긴 체‘등 등 체병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 체병이 많은 사람은 변신술에 능해서 자랑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얼마 전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건이 TV 뉴스시간에 방영되었습니다. 국회의원 운전기사 두 사람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는데 파출소에서 행패를 부리고, 심지어 경찰관을 폭행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국회 출입증을 보여 가면서 뭔가 대단한 사람인양 소리를 친 것이다. 여러분 오늘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알고 세계를 알고 정치와 경제를 알고 심지어 미래의 세계와 자연변화까지도 예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알아야 할 자기 자신을 모릅니다. 여기에 비극이 있습니다. 사탄의 최고 수단과 방법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모르게 하는데 있습니다. 너는 너를 알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는 너를 감추며, 할 수만 있다면 과대포장하며 스스로를 드러내라고 자랑하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신을 알면 자신의 병든 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계3:17) 이렇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과 강한 모습만을 자랑하고 약한 인의 본연의 모습을 숨기려고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자신의 나약함 까지도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자랑을 하려면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자랑을 한다고 자기의 양심을 속이면 불행해 집니다. 적은 것을 자랑하려고 깨끗한 양심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킴으로 우리에게 주신 선행 은총입니다. 때문에 양심을 속이는 것은 사실상 예수님을 부인하며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는 줄기세포 사건도 역시 과학자들이 자기 양심을 속여 가며 세상에 자기를 자랑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속인 자랑거리가 얼마나 오래 갔습니까? 속담처럼 자랑이 화를 가져 왔습니다. 권력을 희롱한 '어둠의 남자'로 불리 우는 브로커 윤 상림의 로비백태가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사회에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의 ‘형님’ ‘동생’은 청와대, 총리실, 여당, 군(軍)·검(檢)·경(警)·법원, 대기업 등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의 수첩에는 그러한 형님과 동생 1000여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등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청와대에도 드나들고, 국무총리와 의원 시절 골프도 쳐보고, 카지노 출입금지를 당하면 여당 대변인에게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전·현직 판·검사들은 그에게 돈을 빌려 주고 돈을 떼여도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난해 11월 23일 구속된 거물 브로커 윤상림(53)씨 행적의 일부입니다. ‘현존하는 최대 브로커’라는 한 수사검사의 비유가 점점 사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꿀 향기를 풍기는 꽃에는 꿀벌들과 꿀을 즐기는 나비와 새들이 날아들지만 똥통과 오물통에는 온갖 쉬파리를 비롯한 오물냄새를 좋아하는 잡 벌레 들이 모여 들어요. 윤씨 주변에는 윤씨처럼 자랑과 허세 물욕과 권세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너도 나도 줄을 섰습니다. 보세요. 양심을 속인 자랑과 거짓이 얼마나 오래 갑니까? 몇 년을 넘기지 못해요. 북한의 김일성이 아무리 자기 조상으로부터 가계는 물론 반일 투쟁까지 과장하다 못해 남의 투쟁업적도 자기 것으로 과대 자랑했지만 이제는 세상에 다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자기가 독재정권에 아부하면서 부를 누리고 국민들을 괴롭히던 그 시절을 반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시절을 잘 나가던 시절로 자랑하고 다닌다면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의 보안 원(경찰) 보위 원(국정 원)들과 당 일군들이 모여 앉으면 서로 자랑하는 것이 인민들 단속해서 빼앗은 자랑 죄 없는 사람 죄를 만들어 잡아넣고나 자기 말에 순종하지 않거나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고 철직시키거나 공직에서 내 쫓은 일을 자기의 위세를 높이기 위해 과장까지 해 가면서 자랑합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김일성 김정일을 닮아서인지 자기 친척자랑을 빼놓지 않습니다. 삼촌은 중앙당에서 무엇을 한다 거니 조카가 국가보위부에 있다 거니 하면서 말입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것이 결국 북한 경제 말아먹고 국민들 굶어 죽게 했다는 것을 모릅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런 생활에 습관 되어서 체격이나 좋고 옷이나 잘 입고 나서면 간부인줄 알고 자각적으로 봉사를 해 주어요. 어느 해 무더운 여름날 북한군 2군단장 운전기사가 평양에서 군정간부회의에 참가한 군단장을 모시려 평성(2군단 사령부)에서 평양으로 가는데 옷차림이나 걸음걸이며 부채질 하는 풍이 중앙간부들 급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옆에다 차를 세우고 내려서 깍듯이 인사를 하고 어데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간부들에게서 흔히 듣던 말투로 “평양에 올라가려는데”하는 말이 나오자 자기의 추축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고 차문까지 열어주어서 태우고 평양에 갔지요. 그리고 평양역 앞을 지나려고 하는데 ‘차 좀세우시오. 난 내려야 하오.’라고 해서 운전기사는 중앙당당이거나 정부 종합청사로 가시는 줄 알았는데 내리겠다고 해서 차문을 열어 주면서 알아두면 후에 신세 질 일도 있을 것 같고 또 누구누구를 모셔다 드린 적도 있다는 자랑도 할 겸해서 ‘조송하지만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에 그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내 숙천 군 이발사요 태워다 주어서 고맙소.’ 북한 사람들은 뜯어 먹고 노동자는 노골적으로 요행수를 바랄 뿐입니다. 이 말은 유모 어가 아니라 북한의 현실이고 그들 각자의 자랑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거짓말이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데 동원되어 훈장을 탔던 사람들이 16년이 지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훈장 크기의 순서가 처벌 순위로 뒤 바뀌었습니다. 역시 지금은 김 정일의 수발을 들면서 온갖 훈장을 많이 탔다고 자랑하지만 그 훈장과 공훈의 순서가 처벌과 처형의 순서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후12;6) 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자랑은 세상의 지혜로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로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돈과 권력 학력 가문으로 자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돈이 없고 가간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최선을 다하고 산다면 그것이야 말로 자랑 거리입니다. 돈 자랑하는 사람은 돈으로 망합니다. 성경에 부자와 거지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은 다 천국에 가고 부자는 다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잘 못되어도 아주 잘 못된 생각이며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사로는 처음부터 거지가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여러분 주변에는 자기 나름대로 장사도 하고 사업도 해보고 최선을 다했지만 보증 잘못서고 어음부도나 I M F 로 어렵게 된 사람도 있고 뜻하지 않은 불치의 병으로 가난하게 되었지만 신앙생활 잘한 사람들은 나사로처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남 보다 부족해도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은 굶어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 없습니다. 어려워도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랑거리가 더 많습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비록 적지만 십일조 꼭꼭 내면서 자식들에게 좋은 신앙의 유산을 넘겨줍니다. 그리고 주변에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자원봉사 잘하는 사람들 잘살아서 하는 사람별로 없습니다. 넉넉지 못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 푼 사정을 알아요. 이 사람들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랑 거리입니다. 그러나 일 하기 싫어서 빈둥대고 놀이판만 따라다니고 남에게 협잡만 치다가 거지된 사람은 교회에 나오라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살기도 바뿐데 교회에 나가면 밥 준데’ 아니면 ‘교회에 가가서 헌금할 돈 있으면 아이들 학비 한 푼이라도 보태주지.’등등 구실도 여러 가지지만 자기가 체험도 하지 않은 일부 잘못된 교회나 교직자들의 행동을 실제 자기가 목격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마치고 고슴도치한테 혼나고 밤송이 보고 도망가는 호랑이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과거 잘 나가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시간만 있으면 과거를 자랑합니다. ‘언제 어데 있을 때는 나도 무엇을 했다 거니, 나는 이래도 우리아들은 무엇을 한 다 거니,’등 그러나 사실 알아보면 50%이상 뻥튀기입니다. 괜히 자존심만 살아서 세상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위안과 위로를 받으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위로가 됩니까? 진정한 자랑거리를 만들려면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김 요석 목사님은 “성경에는 돈 버는 법과 돈 쓰는 법도 다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야 자기의 은사를 찾을 수 있고 최선을 다하면 은사에 따른 자랑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부자는 왜 지옥에 갔습니까? 모든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고 부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사로 된 것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매일 잔치만 베풀고 돈 자랑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 잔치를 안 하고 그 비용으로 지금말로 나사로 병도 치료해주고 한 칸짜리 집하나 쯤하고 작은 가계라도 하나 장만해 주었으면 하나님은 그렇게 외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사로 돈은 벌었지만 제가 잘나서 부자가 된 것처럼 사람의 지혜로 자랑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자가 된 것은 자기 지혜가 나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했다면 왜 지옥에 갔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과 안나오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양적 차이가 아니라 천국과 지옥의 질적 차이입니다. 욥기에 나오는 부자 욥과 우에서 말한 부자의 종말을 보세요. 지금 우리주변에도 부자들이 많지만 이 두 가지 부류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어느 길을 택하는가는 선택권이지만 마지막에 가야할 곳은 선택권이 아니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권력이 자랑거리가 됩니까? 권력싸움으로 나라를 망치고 회사를 망칩니다. 이조 500년 역사는 권력싸움으로 시작해서 권력싸움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성계는 북방원정을 포기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았고 오랑캐에게 빼깃 광활한 북방 땅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침으로 후대들에게 오점을 남겼습니다. 이 성계는 권력을 잡기위해 자랑거리를 유언비어로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목자가 왕이 된다” 이(李)자가 나무 목자에 아들자자가 혼합된 글입니다. 꿈에 “뿔과 꼬리가 빠진 양을 탔다” 양(羊)뿌리와 꼬리가 떨어지면 임금왕자가 되지요 , 꿈에 “집이 허물어지면서 석 가래가 머리와 허리 다리를 눌렀다.”역시 머리와 허리 다리를 가로 누르면 임금왕자가 됩니다. 이렇게 왕이 될 위인이라는 것을 점 술자들과 아이들의 입을 통해 유언비어로 자랑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권력싸움은 서로 대국을 섬기게 되고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북한 정권이 아무리 권력을 장기 집권하려고 세습통치를 정당화 하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미 도끼는 발밑에 떨어졌습니다. 자랑은 사람의 지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자랑을 해야 영원히 기억되고 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랑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주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 빛도 없는 천한 우리들에게 까지 사랑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비천한 모습조차 주님 안에서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 지니라”(고후10;17)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도이면서도 손수 생업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기에 항상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일을 하는 것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생각했습니다. 북한 복음화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 지금도 고생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자랑하지 못해도 주안에서는 가장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 근원지인 주안에서 자랑하며 내게 능력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혜와 지식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웨슬리 목사는 부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은사라고 했습니다. 부자가 되겠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돈을 벌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남의 것을 강탈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수치입니다. 다음으로 주께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루어 놓은 결과와 업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며 자기만족에 빠지거나 사람들의 칭찬에 우쭐해 져서는 안 됩니다. 주께서만 인정받고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고후10;18) 헤 리 박사는 어린시절 구두를 만드는 작은 양화공장에 다녔습니다. 가죽은 많이 때릴수록 질기면서도 예쁜 신발을 만들 수 있어서 그 일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다른 양화 공장에서는 두들기지 않고 만들기에 빨리 많이 만드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나는 돈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라는 칭찬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자랑에 앞서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정말 칭찬받는 사람들은 결국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들은 다른 이들에게 당신의 뛰어남을 내세우고 자랑하고 싶습니까? 당신의 모든 자랑거리를 주님이 주셨는데도 말입니다. 바울은 사실상 사도들 중에서도 세상 적으로도 자랑할 것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는 북한식으로 말하면 빨갱이 출신중에 빨갱이 출신이고 학벌로 보아도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이고 간부등급으로 보면 계급적 원수들을 잡으려 다니는 김일성 정권의 충신 중에 충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알게 된 다음에는 모든 부와 명예를 분토처럼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주변에는 아직도 과거를 버리고 새 보금자리와 새로운 체제를 선택하고 도 과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기득권에 있던 사람들이 과거의 이념과 안락했던 생활과 무제한한 권한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북한 정권을 미워하고 망해야 한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표현과 행위를 보면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그리워서 불평하는 것입니다. 왜 주체사상을 버리고 공산주의 이념을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까? 결국 마지못해 그 사회를 탈피했다는 말입니다. 진실로 탈피한사람은 바울처럼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새롭게 최선을 다해서 시작하고 살아갑니다. 바울은 개심한 후에 예수님을 위해 수많은 죽을 고비와 고난을 당하면서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자신은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일부 동역 자들과 교인들로부터 불신과 오해를 받을 때에도 자랑이 아니라 자신을 변호 했을 뿐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고후12;5-6)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 우는 조 만식 선생과 순교자 주 기철 목사는 인연이 깊은 관계였습니다. 조 선생이 오산학교의 교장 직을 맡고 있을 무렵에 주 목사는 그 학교의 학생이었고, 또 주 목사가 평양 산정 현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을 때 조 선생은 그 교회의 장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평양 산정 현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조 만식 장로가 교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급한 손님이 찾아와 한 10여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대화를 마치고서 조 장로는 황급히 교회로 왔습니다. 헐레벌떡 도착한 조 장로가 뒷문을 살짝 열고 보니 벌써 설교 시간이었습니다. 에크, 설교가 시작되었구나. 그렇다고 안 들어갈 수도 없지‥‥‥ 이렇게 생각한 조 장로는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주 기철 목사가 설교를 하다말고 갑자기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조 장로님 ! 오늘은 서서 예배를 드리세요! "조 장로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에 보통 사람 같으면 아무리 예배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 장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제자가 호통을 치는 대로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꼬박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 시간의 예배 시간이 조 장로에게는 끔찍이도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제 예배를 다 마치자, 주 목사가 조 장로에게 대표 기도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조 장로님, 예배 마치기 전에 기도를 해주십시오. "그러자 조 장로는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히 여긴 이 못난 죄인을 용서하옵소서‥‥또한 이 일로 주의 을 마음 아프게 하였사오니 이 어찌 큰 죄가 아니겠습니까‥‥흐흐흑 흐느끼면서 ‥‥‥ 조 장로는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교인들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마음이‥‥겸손하니‥‥내게 배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겸손의 본을 보인 조만식 선생은 이로 인하여 더욱 존경받는 스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셋째로 서로서로 자랑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서 자랑은 자기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위로나 존중하는 의미에서 해 주어야 그 값어치가 있습니다. 자화자찬(自畵 自讚)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기가 한일이나 행동을 스스로 칭찬하고 자랑한다는 말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세상의 지혜로 자랑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면서도 스스로 떠벌리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웃는 말입니다. 특히 우리조상들은 ‘자기 여편네(아내)자랑’하는 사람은 1등 머저리 ‘자기 자랑’하는 사람은 2등 머저리 ‘자기 자식 자랑’하는 사람을 3등 머저리라 불렀고 그런 자들을 가리켜 삼 불출 또는 3대 머저리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 김 정일을 가리켜 3대 머저리라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김 정일을 ‘백두 광명 성’(星)으로 여편네 김 정숙은 항일의 여장군으로 자랑하고 내세웠고 김 정일은 자기 아버지를 민족의 태양으로 자기 어머니는 조선의 어머니로 자랑하면서 내세우고 동상과 기념비들을 만들었는가 하면 심지어 12살에 죽은 외삼촌(김 오성)의 동상까지 해 세웠습니다. 아마도 김일성이 모태에서부터 이 성경구절을 제일 많이 들었는지? 아니면 태어나서 아빠 엄마와 외삼촌 목사로부터 들은 내용 중 이 성경구절만이 제일 가슴에 와 닿고 마음에 들어서 잊지 않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혼자 은혜받기 아까우니까 아들에게 까지 이 구절만은 하나님의 진리라고 착각 하고 전해 주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찌되었던 김일성 김 정일 부자가 세상에서 대를 이어가면서 서로서로 자랑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들 착한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제는 벌써 3대째 대를 이어가면서 서로서로 자랑을 해가면서 내 세워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물론 사도 바울의 말씀은 예수의 날에 라는 전제 조건 분명히 달았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재림 시에 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 특히 교회는 천국가기 위한 훈련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현실에서 자기가 자기를 자랑하기보다 서로서로 자랑해 주고 고무해 준다면 이 어려운 시기에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간 부모와 자식간 형제간에 내부적으로 서로 내세워주고 칭찬해 주면 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와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정치인들 선거 유세하듯 자기가 자기 자랑을 하다못해 옆에 사람들까지 돈을 주어가면서 잔뜩 부풀려서 자랑하고 떠들면 그것은 성경의 뜻이 아니라 김일성의 뜻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기도 합시다. 유모 미국에서는 클린턴이 여 비서와의 성희롱이 들통 나서 미국 정계뿐 아니라 세계적 뉴스거리가 되고 중국에서는 강 택민이 실권을 쥐면서 정계가 안정되면서 잔뜩 자신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김 대중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상까지 받고 남북관계는 정상화 되고 가는 듯 하는 시기에 모처럼 세정상이 모여 앉아 서로 자랑을 하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먼저 클린턴이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바지 지퍼를 쭉 내리더니 “강력한 무기” 하더래요. 그러자 이번에는 강 택민이 벗어진 이마를 손바닥으로 철석 때리면서 “광활한 영토” 했다고 합니다. 사실 중국의 영토가 얼마나 광활 합니까? 그러자 한반도의 남쪽을 통치하는 김 대중은 불편한 엉덩이를 쑥 내밀면서 “둘로 갈라진 영토”라고 했다고 합니다. 2006년 1월 21일 이 요셉‘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