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 소장, 네 살 때 중장, 다섯 살에 상장, 여섯 살에 대장, 일곱 살에 원수, 여덟 살 때는 대원수로 올랐다. 아버지인 김정일이 올려주고 계급장을 군복에 달아주었다. 여덟 살 이후 관저의 수행원들은 정남이를 ‘대원수 동지’로 불렀다
정남이는 인민군 대원수복을 입고 나왔다. 6.25때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입었던 옷을 본떠 맞춘 옷이다. 나는 인민복을 입고 수행했는데 규채 등 몇 명이 더 따라갔다.
정남이가 그런 곳에 갈 때는 주로 리무진을 타고 간다. 김정일이 타는 리무진과 똑같다. 차량 행렬도 요란하다. 평상시에는 쓰지 않는 중앙차도에 경광등과 빨간 전조등을 켠 경호차량이 맨 앞에 달려간다. 선도차량은 벤즈다. 그 뒤에 정남이 차가 가고 바로 뒤에 벤즈가 1대 더 따라온다.
55사단에 도착했다. 참모장과 정치위원인 대좌들 둘이 마중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먼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하고 정중히 인사 했다. 그런데 사단장이 보이지 않았다.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일남 : 사단장은 어디로 갔나? 왜 보이지 않는가?’
대좌1 : 지금 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계십니다.
일남 : 뭐야, 전화? 어느 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있는가?
대좌1 : 호위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일남 : 뭐 호위사령관, 사단장 새끼 당장 나오라고 해, 이 개 새끼가 누가 왔는데.....
내 상식으로는 리해가 안 갔다. 호위사령관보다 정남이가 우선 아닌가. 물론 호위사령관은 정남이가 거기 간다니까 잘 모시라는 얘기를 하려고 했겠지만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3-4분 뒤에 사단장이 뛰어 나오며 ‘죄송합니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단장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찼다.
일남 : 이 개 새끼, 너 모가지 몇 개야? 사단장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장 동지! 정말 죄송합니다.
일남 : 너 반성문 써서 정치국장에게 제출해. 김규채! 알아서 조치해
당시는 나도 정남이 덕에 또 김정일 이모부 덕에 안하무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치기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다. 참모장의 안내로 부대를 돌아보았다. 고사포를 조직하는 시범도 보았다. 포 한 문에 서너명의 병사들이 붙어 있었다. 포신 돌리는 병사, 조준하는 병사 등이 방공호 속에 들어갔다가 뛰어나오는 모습이며, 보이지도 않는 적기가 공격중이라며 고사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정남이가 한번 더 오자고 보챘는데 다음 번에는 공군으로 가자고 둘러대면서 관저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규채가 ‘사단장 한번만 용서해 주자’고 부탁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남 : 그 따위 소리 말라우야. 저 새끼 대가리가 틀려먹은 것 아닌가! 호위사령관 전화가 우선이야, 대장이 우선이야? 무조건 정치국장한테 반성문 제출하라고 그래.
돌아와서 호위사령부 권성린 정치국장에게 전화했다.
권성린 : 일남동지, 부대 방문은 잘 하셨습니까?
일남 : 네. 권국장 덕분에 잘했습니다. 그런데 55사단장 그 간나새끼 못 쓰겠더만요. 호위사령관 전화받는다고 우리를 5분이나 기다리게 하고 말이지..’
권성린 : 아이구! 일남동지 죄송합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일남 : 날려버릴 것까지는 없고 반성문이나 받으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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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니까 18살 리일남이한테 손발이 닳도록 빈게 아니라 8살 김정남이한테 빌은거였구만 50살이 넘고 환갑이 다 되어가는 호위사령부 55사단장이.8살 김정남이가 사열하는데 동원된 인민군들. 참 불쌍타
꺼지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