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스케치 2) 환각제 |
---|
그때 나는 통일거리 건설장에 나가 있었다. 보름기약으로 부서내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노력동원이었다.
마침 내가 속한 조는 혼합 작업을 하게 되었다. 즉 모래 자갈 혼석에 시멘트와 물을 섞고 그것을 적당한 비율로 혼합하여 건설장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보내는 작업이었다.
건설초기에는 철판들을 이어붙이고 그 양쪽에 여섯 명 정도씩 갈라서서 모래와 자갈 그리고 세멘트까지 부어지면 거기에 물을 붓고 순 삽으로 이갰는데 그 나마 미끼샤(혼합기)가 들어와서 좀 나아진 다음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하마같이 먹어대던 미끼샤 아가리에 끝도 없이 모래 자갈 그리고 세멘트며 물을 먹여주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고막을 찢을 듯한 혼합기 소리, 삽질소리, 따지까 굴러들어오고 쏟아지는 소리, 줄창 쏟아지는 땀방울 그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종일 일하고 나면 나 자신이 과연 아직 살아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날도 그렇게 하루 해를 보냈다. 마침내 어득어득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커다란 도람통에 얼굴이며 몸이며 같이 대충싯고 휴계실에 들어갔다. 이제 총화만 지으면 집으로 간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 모두가 불에 타다 남은 숱검댕이들 같다. 아프리카 흑인이 왔다가 오히려 깜짝 놀라지 않을까. . 날씨는 추웠는데도 찬바람에 거기에다 간간히 내려쬐는 해빛까지 맞으며 일하다 보니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꼭 마른 장작 개비에 비닐박막을 씌워놓은 몰골들이었다.
그래도 그 순간만은 나름대로 웃기도 하고 말도 한다.
마침내 호동장 (건설장 책임자)이 들어왔다. 이제 분명 그 날 건설 지휘부에서 토의 된 내용들을 전달할 것이고 그 다음은 하루 작업에서 잘 한 것과 못한 것도 지적하리라, 그러면 우리들은 머리를 푹 숙이고 듣는 척 마는 척 끝나기 바쁘게 도시락 곽을 챙겨 들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으리라. 그런데 호동장이 이외에도 말이 없었다. 그저 옹색한 눈길로 죄지은 사람들처럼 머리를 푹숙이고 앉아있는 우리들을 보는 것이었다.
"저 이거 참 말하기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모두는 머리를 들었다.
좀 전에 건설지휘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강남역에 씨리카트 벽돌 여섯 차 방통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중으로 부려야 한다고 했다. 부리지 못하면 내일 아침에는 다른 건설장으로 돌린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말은 더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번했다. 그러니 우리들중 누군가는 나가서 밤새 그 씨리카트 벽돌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나간다는 말인가. 하루 종일 일하고 보니 지치고 배고프기는 꼭 같다. 그래서 호동장이 더 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각 호동별로 열 두 명씩 나가야 하는데 나갈 사람들 자원해 주십시오" 마침내 호동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솔잎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사람 좋은 호동장이 기다리다 못해 먼저 한마디 하였다. "자 나도 나가겠으니 이제 열 한 명만 더 자원해 주십시오" 그래도 말이 없었다. 흔히 모르는 사람들은 뚱뚱하고 힘꼴이나 쓰게 생긴 사람이면 일에서도 한 몫 하는 줄 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그게 아니었다. 내 경험으로는 그런 놈들일수록 어렵고 힘든 일에 들어가서는 몸을 쇄리기 선수였다. 역시 우리들 중에도 그런 인간들도 두셋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모두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내가 나가지요" 나는 몸도 약했지만 그때 벌써 나이도 이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어차피 누군가는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 보니 끝내 나서고 만 것이다.
"자 이제 열명만 더 나서 주십시오" 뒤를 이어 주섬주섬 사람들이 따라 나섰다. 결국 열 두명의 제일 마음 약한 사람들이 차출되었다. 우리는 "망짝" 이라고 부르는 화물자동차에 앉아 떠나게 되었다. 호동장이 제일 마지막으로 오르면서 창고에서 시뻘건 비닐 방통을 하나 들고 올라왔다.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 방통이었다. 건설일이 힘들다 보니 가끔은 그 일이 끝나고 술한잔씩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보던 바로 그 술 방통이었기 때문이다.
차는 달리고 대동강역을 지나 역포 대로에 들어섰다.벌써 12월에 들어선지도 며칠 된 다음이고 보니 날씨도 여간만 춥지 않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집으로 가는데 우리는 강남역으로 일하려 가는 길이었다. 평양에서 수 십년 산 사람도 강남역이라면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일반 여객 역이 아니라 평양 대동강 역과 역포 역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화물역이기 때문이다.
도착하고 보니 다른 호동들에서 우리 비슷한 사람들이 불려 나와 있었다. 호동마다 한 방통씩 부려야 하는데 한 방통이면 60톤이다, 죽으나 사나 그 밤으로 우리는 그것을 전부 부려야 하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다시 말하지만 춥고 배고프고 지치고 가까이에는 마을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가깝다는 것이 역사건물인데 불꺼진 건물은 꼭 여우 파먹은 무덤같이 거무테테하고 번뜩이었다.
호동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비닐 방통을 내 놓았다. "자 동무들 죽으나 사나 오늘 우리는 이걸 모조리 부려야 한다고 하는데 있는 건 이것 밖에 없구만" 얼핏 보아도 술은 꽤 되었다. 거기 하나 가득 차면 열 리터인데 적어도 일 여덟리터는 되게 출렁거리었다. "어떻게 하겠소,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고 안주는 모두 자체로 해결하지"
호동장이 먼저 비닐 방통을 기울려 거무테테한 늄식기에 하나 가득 술을 부었다. 그리고 마치 사약이라도 마시는 사람처럼 담배한 모금을 깊이 빨더니 쭉 들이켰다. 한 번 꺽지도 않았다. 그 늄식기로 말하면 군대에서 쓰는 밥그릇으로 한 식기면 한 병 거의 되는 양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일을 하려면 뭐로든 속을 채워야 했다.
사람들은 주섬주섬 안주감을 찾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허허 벌판에 무슨 안주감이 있단말인가. 있다는 건 얼마 멀지 않게 다 캐고 버린 배추밭 같은 게 전부였다. 거기에 드문드문 캐고 버린 배추 찌꺼기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거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그걸 주어 들었다. 하지만 거긴 마침 기차길 옆이어서 석탄먼지가 한벌 씌어 있었다, 탁탁 손바닥으로 털어 입에 가져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난 암만해도 그럴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다. 하여 그 거무테테한 늄식기에 그대로 술을 받아 들었다. 호동장이 술만은 넉넉히 주었다.
나는 슬며시 술그릇에 입에 대 보았다. 으드득 늄식기에 이가 닿는 소리가 났다.
"여 장동무 그렇게 해서는 어림없어, 한 번 입을 대면 바닥을 내야지 중간에 멈추면 다시 입을 대지 못해 " 호동장이 옆에서 충고주는 소리었다. . 그래 어쨌던 일을 하려면 이거라도 마셔야 한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힘들때만다 속으로 읇군하던 시 한쪼각을 뇌까리었다. "...그렇다 그러나 오래진 않으리라 조심하라 우리의 복수 무산자들이 모조리 일떠설 것이다" 엔 뽀지에인지 뭔지 하는 프랑스 파리 콤뮨 참가자의 시였다. 내가 처한 현실과 맞고 맞지 않고가 없다. 그저 제일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늘 속으로 혼자 뇌까리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하여 보았을 뿐이다.. 찬술을 입에 부어 넣었다. 한번 욱 치밀어 올랐으나 그래도 억지로 끝까지 부어넣었다. 찬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알리었다.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