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영에 창의성이 샘물처럼 솟아나야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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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4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 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각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여건에서 附與(부여)된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세팅setting의 의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領域(영역)이 있고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사실 인간이 세팅 할 수 없는 영역이 더 많은 것은 분명하다. ‘遭遇(조우)와 더불어’ 라는 의미에서 세팅은 수많은 조우와 관계하면서 그 나름의 걸음걸이를 결정해야 한다. 한 걸음의 발소리가 주어진 여건의 賦與(부여)와 그 附與(부여)된 조건에서 그 나름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세팅은 인간이 전혀 바꿀 수 없다는 것에서 그 안에서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그런 피할 수 없는 선택의 판 속에 갇힌다.
이를 破(파)할 수도 없고 깨버릴 수도 없고 엎어버릴 수도 없고 否定(부정)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것이 그 세팅의 의미이다.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져도 그 주어진 부여와 부여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없다. 거기서 인간은 다만 선용과 악용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선택은 하나님의 안목의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專門的(전문적)인 素養(소양)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안목에 겨우 자기기만이라는 최면에 빠져 산다. 사실 사람의 걸음은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나와야 정상이다. 이는 자기의 선택에 대한 미구의 결과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不確實(불확실)한 미래를 不透明(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간다. 그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오늘의 선택이다. 미래의 행복은 하나님의 기준의 안목으로 그 모든 것을 선용함에 있다. 미래의 불행은 하나님의 기준의 안목을 거부하고 인간의 안목 악마의 안목으로 행하는 것 곧 만물을 악용함에 나온다. 하나님의 기준의 안목이 아니면 무엇이 선용인지 악용인지 도무지 모르는 것이 인간인데 악마에게 속는 인간은 스스로 대단한 존재처럼 행동하는 패턴 때문에 자기의 선택이 지상 최고 최선의 선택임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미래를 망하게 하는 선택임을 통찰치 못한다.
사람이 한걸음을 뗄 때마다 그의 모든 조건과 여건을 선택하여 응용하게 되는데 그 안목에 따라 선용하는 자들이 있고 악용하는 자들이 있다. 물론 하나님의 기준의 선용과 악용이다. 인간이 선택으로 어디로 이사 가서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가 이사 간 곳의 여건을 환경을 자기 한계 안에서 응용해야 한다. 이에 선용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면 악용이다. 악용하면 그 미래의 재앙을 만드는 것이다. 선용의 洞察 通察(통찰)력과 악용의 통찰력의 의미는 안목의 의미이다. 인간이 자기 길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으니 어찌 자기 선택이 선한지 악한지를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應用科學(응용과학)은 문명의 利器(이기)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마저도 악용함은 이웃을 파괴하는 凶器(흉기)가 되어 자멸하게 되는 것이다. 선용이냐 악용이냐 하는 그 사이에 인간은 있게 된다. 이 여건 조건을 결코 인간이 파할 수도 벗어날 수도 깨버릴 수도 없다. 전혀 바꿀 수 없도록 주어진 여건 조건의 세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것에서 인간의 길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선용해야 한다. 그것이 곧 이웃사랑을 하는 길인데, 사람의 걸음이 그 사람의 길을 내는지 길이 그 사람의 걸음을 내는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前者(전자)는 핑계이다.
뭐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의 抗辯(항변)이 그것이다. 그런 것은 대개 모든 것을 악용하는 자들이 즐겨 찾는 手法(수법)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제시한 유일무이의 길로 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것이 곧 인간이 가야 할 유일무이의 길이다. 그 길로 가는 사람은 만물을 선용한다. 그 선용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만물을 선용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안목을 받지 못한 자들은 모두 다 만물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를 피할 수 없다. 사실 만물을 악용하는 것은 重罪(중죄)이다. 그 죄 값은 死亡(사망)이다.
그 선용의 통찰력의 안목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목은 하나님의 선의 본질에서 나오는 그 사랑의 본질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無窮無盡(무궁무진) 낸다. 그런 아이디어가 샘처럼 솟아나는 자들은 그야말로 창조적인 발상으로 모든 것을 선용하여 이웃을 사랑함으로 미래의 행복과 자유와 생명과 모든 부요를 만들어간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길로만 가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길이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받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는 줄여서 하나님께 그 운전대를 바친다 한다. 운전대를 바친 자들은 그 바친 만큼 하나님이 그를 운전해주신다. 그는 그 만큼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선용하는 것이다. 그 만큼의 안목을 누리게 된다. 그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선용하는 것이 절대 관건인데 그 선용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안목을 가진다는 것은 선용의 idea와 그 item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하게 된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 생각으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지식과 능력과 명철이 무궁무진 무한하시다.
그분이 만든 모든 만물의 디자인 기능 색상 꼴 태 등의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성을 보게 된다. 한 존재도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다 각기의 다름을 자랑하게 하니 모든 것이 각기 자랑을 가지도록 지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 아이템의 의미의 寶庫(보고)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그 착상의 창의의 sauce를 인간에게 다함이 없이 공급하셔서 주어진 모든 것을 선용하게 하신다. 그 sauce를 찾아내게 하는 하나님의 안목에 의해 그 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안목으로 식별 분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고 분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이를 알아보고 뚜렷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창조경제도 여기서 나오는 것인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목의 기름부음을 받고자 그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치기를 싫어한다. 국가 운영의 운전대를 잡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최고위 결정권자가 되는 길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가 그 주어진 모든 것을 선용하는 안목이 無窮無盡(무궁무진)해야 하는데 한계를 갖게 된다면 그만큼 선용하게 되고 모르는 것은 다 악용하게 되는 것이다. 선용은 조금이고 악용은 다수를 이루게 된다면 그는 성공적인 임기를 채운 것이 아니라 하겠다. 그는 다만 예산낭비를 한 셈이다.
하나님의 선용의 안목을 이해하고 알고 알아들어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다. 하나님께 그 운전대를 바치면 그의 성령의 지각을 주셔서 그것을 이해하도록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그 창의적 안목 그 선용의 각종 생각 그 착상이 이와 같이 인간에게 축복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이사야 55: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 운전대를 바치려고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기복신앙에 빠져서 하나님을 구한다. 이는 千不當萬不當(천부당만부당)한 요구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생각을 무궁무진하게 공급받아서 만물을 선용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 운전대를 바치면 하나님이 그 안목을 주셔서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이디어 그 아이템을 그 sauce를 주신다. 그것을 행하도록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신다. 지극히 무능한 자들이라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하나님의 생각대로 그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만물을 선용하게 됨이다. 이런 아이디어 아이템의 착상의 sauce가 무한정 솟아나야 하는데 이런 연결이 없는 자들은 결국 악용에 빠지게 된다.
그들이 인간의 안목이나 악마의 안목으로 행하는 악인들이다. [7.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자신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침이다. 그것이 인간의 길이다. 그 길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만물을 선용하는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부어주신다. 하여 그는 그것으로 만물을 선용하는 발걸음 그 스텝을 떼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전에 행한 모든 악용의 행위가 용서받게 된다. 예수의 피로 사함 받게 된다.
[8.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의 차원이 다르다고 하신다. 인간이 인간을 운전하면 그것이 곧 악용이다. 인간이 모든 환경(인적 물적 환경)을 운전하면 이는 악용이다. 물론 악마의 입김에 따라 입심에 따라 운전하는 것도 악용이다. 그것이 죄악 된 길인 것이고 국가 패망의 길인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잡는 안테나를 가지고 산다고 한다. 하나님의 생각만 담아내는 안테나가 있어야 한다. 그 안테나가 하나님의 안목이다.
하나님의 그 고상한 생각만을 늘 捕捉(포착)하는 洞察通察(통찰)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만이 그 주어진 환경 여건 조건을 선용하여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늘의 높이를 안다면 인간이 어떻게 그 차이를 구별치 못할 것인가? 150억 光年(광년)의 길이를 가진 宇宙(우주)가 아닌가? 그 우주의 깊이와 높이와 길이와 넓이가 어떠한지 인간이 상상도 못할 정도라고 하는데 그 안에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생각의 구현물들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을 創案(창안)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운행하신다.
하나님만이 만물을 선용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그러한 하드웨어를 만드신 분이시고 그것을 선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무궁무진하게 내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이 나라를 운전하시면 그러한 무궁무진의 선용의 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10.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11.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생각의 보고에 들어가서 그 보화를 누려야 한다.
우리 국민이 남북으로 8,000만이라고 한다. 그 수가 모두 다 그 寶庫(보고)에 들어가서 그 만물선용의 아이디어 그 寶貨(보화)를 얻어가지고 나와서 행동을 한다면 그 창조성과 생산성의 부요가 태산처럼 쌓일 것이다. 그 보화 하나하나가 다 인간의 생명과 행복과 자유와 모든 부요를 증진시키는 것이기에 기쁨이고 환희이고 희락의 강수가 된다. 그런 보화를 무궁무진하게 누려야 할 것이다. [12.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만물의 선용에서 모든 평안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속에서 하나님의 그 무궁무진한 선용의 아이디어 그 아이템 sauce가 무한정으로 나온다면 [13.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는 것이니 그 맛을 누리는 자들은 결코 그 복을 놓치지 않을 것이기에 결코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그 創意的(창의적) 생산적인 그 선용의 모든 생각을 잘 찾아내고 그것을 考慮(고려)하고 熟考(숙고)하고 考察(고찰)하도록 샘솟는다.
늘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생각들이 만물을 선용할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미리 준비하게 한다면 그렇게 부지런하게 열심히 애써서 그 일을 해낸다면 이는 곧 성령의 知覺(지각)을 共有(공유)함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속에 각종 모든 생각을 讀解(독해)할 수 있게 하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2:9.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인간은 창의성이 없다. 하나님 속의 생각을 알아볼 힘과 능과 권이 없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령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 속으로 오신다. 그 통로가 유일무이하시다. 그 통로가 아닌 것은 모두 다 惡靈(악령)이다.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지각 하나님의 안목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인간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 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 함이니라 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보게 하는 성령의 지각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절대 필수적 조건이다.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도록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그 성령을 구해야 한다. [로마서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하나님의 안목을 누림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선용의 각양 아이디어 그 아이템 그 sauce를 그것도 무한정으로 얻어낼 재간이 없다. 얻어낸다 해도 이를 독해할 지각이 전무하다. 성령의 지각으로 이해하고 지각하고 감지하고 인지하고 눈치채는 것이다. 성령의 지각으로 하나님의 선용의 생각을 알게 되고 그 영역을 관찰하여 포착하게 되고 그것을 진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표 흔적 자국 흠집처럼 남겨진 것들이라도 그것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찾아낼 수 있게 하는 힘이 성령의 지각이다. 성령의 지각으로 기호를 알아보고 그를 준수하고 보게 된다. 때문에 성령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힘으로 識別(식별)하고 分別(분별)하고 보고 分揀(분간)하는 것이다. 그 지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보고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지각을 가진 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생각에 대한 예의가 바른 태도로 임한다. 참으로 사려 있는 신중한 예의 바른 조심스러운 친절한 주의 깊은 細心(세심)한 敬聽(경청)하는 정중한 신중한 조심성 있는 세심한 분별 있는 현명한 태도로 하나님의 생각을 추구하게 한다. 무엇보다 관계를 고려하되 존경하여 지극히 높은 가치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분들은 언제나 만물 선용의 무궁무진한 생각의 보고에 들어가서 그 보화를 누린다.
[로마서 8: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지각의 힘으로 모든 것을 注意(주의)하고 조심하여 留意(유의)하여 하나님의 생각을 捕捉(포착)하고 마음에 두는 것이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그 보배영역에 들어가서 그 모든 보화를 구별하고 식별하고 구분하고 분류하고 그것을 늘 알아보도록 특징짓게 하여 이름 짓기가 가능하게 하신다. 결국 이런 식별 인식 그 통찰력과 眼識(안식)의 의미는 통찰력의 간파 및 간파능력과 見識(견식)의 영역의 크기를 의미이다. 그들은 성령의 지각의 도와주시는 분량만큼을 이해하여 알고 알아듣고 이해하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령의 지각이 그를 가르치고 교수하고 훈련하고 길들이고 교육하고 지시하고 통고하고 알리심의 의미이다. 그분들만이 만물을 선용하는 스텝으로 행한다. 따라서 복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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