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유나의 후견인인 자랑스런 탈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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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1월 7일 평양에서 태어남. 할아버지는 교육부장관을 아버지는 평양의 허름한 창고를 관리하는 당중앙고위간부이기에 200평 아파트에서 살았다고함. 그런데 도둑이 들어도 훔쳐갈거라곤 녹슨랭동기가 전부였다고 함. 장흥인민학교와 성북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예술영재들만 교육하는 금성고등중학교를 또다시 졸업해 고등중학교만 2번을 졸업했다. 덕분에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이와는 동문이 되었다.
1986년에 인민군에 입대하여 인민군 권력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과 안면을 터 주위로부터 너 총정치국장을 아느냐라고 부러움의 질문을 받으면 그럼 잘알지라고 해서 쌀도 받고 기름도 받고해서 200평 아파트에 계신 부모에게 갖다주고 그랬슴.
1990년대초에 인민군 하전사의 신분으로 모스크바 영화대학에 유학갔다. ( 총정치국장과 잘아는 하전사니까 유학이 가능하다고 봄) 그러다가 평양에서 소환령이 떨어져 귀국해 죽도록 맞았슴. 생각하기도 싫다고함. 인민군 똘마니들을 데리고 개성인삼밭을 4년간 도둑질하러 다녔다고함.( 이때가 유학기간이니까 아마도 모스크바에서 방학을 맞아서 개성으로 날라와 유학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할려고 알바로 인삼밭을 도둑질하러 다닌것으로 추측됨. 그래야만 모스크바 유학기간과 인삼밭 도둑질한 기간이 맞아떨어짐)
1994년에 개성인삼을 고위층들에게 바친 결과로 꿈에그리던 당원증을 받게 되었슴. (할아버지가 교육부장관 출신이고 아버지는 허름한 창고를 관리하는 당중앙고위간부인데도 아들의 당증취득에 전혀 힘을 안쓴걸봐서 역시 훌륭한 가문은 범인들과는 달라도 다름)
남한방송을 듣다가 걸렸고 심지어는 보위부의 문서를 위조한 것까지도 들켜서 13년 중형을 받아 탈북하게 되었다고함. 수용소로 끌려가던도중에 영화처럼 호송차가 굴러 호송하던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정감독만 안죽고 심지어는 수갑까지 풀리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함.
귀순해서 술집호객꾼과 병원에서 시체닦이를 했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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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지하교회가 수두룩히 싸이고 넘치여서 기적이 일어났겟지요...
인간들은 북한을미화하는 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