曠野(광야)보다 더 苛酷(가혹)하고 孤獨(고독)보다 더 무섭고 움막보다 더 불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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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曠野(광야)보다 더 苛酷(가혹)하고 孤獨(고독)보다 더 무섭고 움막보다 더 不便(불편)한 여자들이 많아지면 나라가 亡(망)한다.
[잠언 21:9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인생은 宇宙(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짧다. 그 짧은 시간의 동안에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그 때부터 운전대 싸움이 일어난다. 누가 그 집안의 운전대를 잡는가에 대한 싸움이다. 오늘 본문에 운전대를 잡는 방법에 다툼으로 굳어진 여자가 나온다. 다툼은 쉬지 않는 도전이다. [잠언 27:15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여자가 일찌감치 그 싸움을 포기하면 될 것인데 여자가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쉬지 않는 다툼이 일어난다. 본문에서 다툼의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그 다툼은 악마의 방법이다.
여자가 악마에 사로잡혀 운전대를 잡아서 그 집안의 미래를 결정하여 무엇을 이룩했다 해도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 다만 악마의 흉기일 뿐이다. [잠언 19:13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악마의 흉기는 재앙이고 그 자신의 멸망일 뿐이다. 거기서 나오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함에도 악마의 충동을 따라 惹鬧(야료)를 하듯이 쉬지 않는 독이다. [야고보서 3: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야료 떠는 힘이 악마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누가 당하랴?
뱀의 눈으로 남편의 허물과 실패를 늘 찾아내고 그것을 상기시켜 기를 죽이고 인격을 죽이고 결국 운전대를 쥔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을 다 여자의 맘대로 운행하여 그것으로 무엇을 이룩했다 하여도 그것에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여자는 지배욕의 충족감을 얻을지 모르나 남자가 노예가 되고 마당쇠가 된다. 남편이 존경 받을 공경의 대상이 아니라 그 멸시와 下待(하대)를 받을 열등인간이요 그런 존재로 전락시킨다. 그렇게 남편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성들이라면 이는 악마적이다. 공포를 주는 恐妻(공처)의 횡포에 항의 한번 못하고 시달린다.
그 집안은 악마로 드센 여인의 큰 소리만 가득하고 쉬지 않는 악의 분출을 보게 된다. 눈을 부라리고 악마의 얼굴이 되어 악을 바락 바락 쓰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드는 여자의 쉬지 않는 毒(독)의 噴出(분출)을 누가 다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여자는 그런 식으로 가정을 유지하려고 한다. 하여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녀의 주장, 그것을 세워나가는 것은 미래의 어떤 결과를 떠나 남편 위에 군림한다는 것에서 그 결혼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현대의 시류가 그러한 것 같다. 여자가 득세하는 시대 여자가 그 집안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다.
女必從夫(여필종부)를 외치던 시대의 여성들은 남편의 명령에 수용적이었다. 남편의 명령에 따라 성공 실패를 떠나 다만 수용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을 德(덕)이 있는 여자라 하였다. 남편에게 그 운전대를 바쳐서 일생을 수용적으로 행동하는 여자이다. 사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의미가 기준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여자를 먼저 만드신 것이 아니라 남자를 먼저 만드신 것이다. 垂直(수직)의 관계라는 의미이다. 橫的(횡적)이나 縱的(종적)인 관계를 구성되는 것이 부부의 관계이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되는 것이니 남자가 수반이 된다.
누구든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 안에 오신 성령이 그 사람의 운전대를 잡고 인도하신다. 만일 여자라면 하나님이 이와 같이 그를 다스리신다. [디모데전서 2: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여자의 아름다움이다. 그런 아름다움을 입히신다.
그 속에 오신 성령이 그녀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입히시는데 그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 행하는 것에 있다. [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從容(종용)히 배우라 12.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從容(종용)할찌니라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자가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되는 이유가 먼저 지음을 받은 것에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악마의 꼬임에 먼저 빠져서 인간을 망하게 하였기 때문이란다. 이 말씀의 의미는 악마는 늘 반복적인 공격의 패턴으로 나오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악마는 여자를 유혹하여 흉기를 삼아 그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전술적인 의미를 인간에게 알려 주심이다. 그 때문에 여자는 결코 나서면 안 된다. 하지만 나선다. [고린도전서 11: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그 때문에 남자가 여자의 위가 되는 것이다. 수직적인 관계를 존중하는 것이 곧 공경이다.
여자로 남편을 공경하여 순복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도리어 어떤 여자는 대등한 관계보다 더 높은 위치를 점하고자 한다. 하여 다툼을 쉬지 않고 일으킨다. 그런 類(류)의 여자가 곧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이고 이는 무질서요 질서파괴이다. [잠언 20:3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잠언 17:19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야고보서 3:14.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하나님의 방법은 결코 다툼을 일으키지 않는 지혜로 행하게 하신다.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이런 의미는 하나님의 성령의 통치를 받는 여자들 곧 하나님의 지혜의 지휘를 받는 여자들의 속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란 의미인데,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치는 여자들은 주 안에서 남편에서 순복하게 된다. [베드로전서 3: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하나님께 운전대를 바친 자들은 하나님의 운전하심을 따라서 남편이 하나님께 그 운전대를 바치지 않았어도 주 안에서 順服(순복)해야 할 것은 반드시 순복하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여자의 아름다움이고 값진 것이라 하신다. [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운전대를 바친 여자들은 항시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따라 남편에게 순복하게 된다. 하나님께 그 운전대를 바친 여자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세운 질서를 준수한다. 그 질서를 대적하여 허물고 자기의 질서를 세우려는 짓을 하지 않는다.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남편에게 주라고 칭하여 복종하게 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운전하심을 받지 못하는 여자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여자들이다. 그러한 여자들은 하나님의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이고 그 파괴는 악마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 악심 악습 악성에 굳어지면 흉기가 된다.
하나님의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는 흉기가 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을 모신 여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신 여자들은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가 반드시 있게 된다. 인용문은 성령을 모신 여자들의 속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복하게 하신다는 것의 明文化(명문화)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신 여자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이 여자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어 주시고 값진 여자의 기준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는 主(주) 안에서 남편에게 순복하는 여자들이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 남편이라는 질서에 순복하는 여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지휘를 따라 남편을 선용하는 여자이다. 남편을 악용하는 여자들은 악마의 악심을 품거나 그 악습에 빠졌거나 그 악성에 굳어져서 악마의 흉기가 되어 있는 여자들이다. 그런 여자들은 결코 악마의 충동에 냄비처럼 요동치는 여자들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는 여자들은 그 가정이라는 구조를 악용하는 여자들이다. 악용은 흉기이다. 흉기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의 병기이다. 그 여자의 평생의 도전과 투쟁은 결국 악마의 흉기로 자기 정체성을 삼는데 있다.
만일 남편이 하나님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시면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받아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수직으로 섬기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대한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 아내에게 이 말씀처럼 행동하게 하신다. [7.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에게 잘못하는 것은 아내를 악용하는 것이니 이 또한 흉기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면 아내에게 함부로 대하고 아내를 악마의 악심으로 악습으로 악성으로 대하는 흉기가 된다. 그 때문에 아내를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따라 사랑하고 섬기는 선용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부부의 길이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 운전대를 바치지 않는 여자들의 폐해를 강조하심이다. 여자의 지배군림욕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자기의 정체성을 존재성을 남자를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에서 찾는 여자들은 날마다 남자의 허물과 실패를 거론한다. 그것으로 포격을 하듯이 공격을 한다. 남자의 기를 꺾는다.
주변에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자녀들이 보거나 말거나 소리를 쳐서 남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깎아 내린다. 남자를 완전히 짓이긴다. 시비를 걸고 그 시비에 걸리면 그것을 근거로 해서 쉬지 않는 독설을 퍼붓는다. 그야말로 쉬지 않는 독 샘이다. 사람의 속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이다. 여자의 속에 다툼의 악심이 자리 잡으면 그 악습에 빠지면 그 악성에 굳어지면 그는 그렇게 쉬지 않고 몰려오는 파도처럼 남편을 향해 돌격한다. 마치도 전쟁에서 적을 죽여야 산다는 원칙처럼 남편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남편을 시달리게 한다.
사람들이 볼 때는 아주 현모양처처럼 행동하고 없을 때는 괴물처럼 군다. 그것을 다 받아주지 않으면 온갖 인격살인적인 말을 퍼붓는다. 남편은 그 여자에게 시달리는 존재이다. 함에도 사랑한다면 어쩌면 인질로 잡힌 스톡홀름 러브로 대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로부터 강포를 당하는 남편은 거기서 외롭게 된다. 마치도 광야에서 혼자 움막을 짓고 사는 것처럼 결혼의 의미가 광야의 생활과 같다. 광야는 사람을 삼키는 땅이다.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곳인데, 차라리 그런 광야에서 움막을 짓고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니 큰 고통이다.
가정폭력에 관해 여전히 여자가 그 특혜를 누리고 있다. 그런 여자에게 묶여 그런 강포를 견디다 못해 폭력을 쓰면 가정 폭력범으로 몰린다. 남편은 설 곳이 없어진다. 그 폭력을 일으킨 것은 아무런 죄가 없고 그 폭력에 견디지 못하여 폭력을 쓴 것이 가정폭력이 된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자들은 여자의 폭언을 극복하는 하나님의 힘을 누린다. 하나님의 지혜로 그 여자의 강포를 피해간다. 하지만 하나님의 힘을 누리지 못하는 남자들은 결국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껴 집을 나가거나 이혼을 한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는 언제나 피해망상에 빠져 있다.
근원적 나르시시즘(primary narcissism)이 부패하면 이차적 나르시시즘(secondary narcissism)에 묶인다. 이차적 나르시시즘에 묶여서 나오는 피해망상은 자살이 아니면 공격이다. 남편을 타도할 적으로 設定(설정)하고 그 적을 이길 모든 방법을 구사한다. 주변에게 자기의 공격의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기초 위에서 남편에게 파상공세를 낮이고 밤이고 쉬지 않고 퍼붓는다. 남편은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극복하지 않으면 결혼을 지킬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그녀의 힘이 곧 악마의 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그만큼 무서운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삼켜 죽게 하는 광야보가 더 무서운 여자요 고독보다 더 무서운 여자란 의미다. 그렇게 무서운 여자와의 결혼이 행복하겠는가?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남자는 그런 여자를 늘 극복하지만 하나님의 통제가 없는 남자들은 그런 여자에게 묶이지 않는다. 스톡홀름 러브에 빠지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대개 뛰쳐나가거나 폭력으로 자기방어를 한다. 정당방위 가정폭력을 통해서 자기 위치를 굳히고자 한다. 결국 피차 물고 먹고 망하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은 인간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받아서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남녀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비참해진다. 결혼은 에로스라는 사랑을 토대로 하는 것인데, 그 사랑이 빈곤한 부부들이 더 많다. 결혼을 꼭 둘이 서로 사랑해서 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 속에 자리 잡는 여러 사랑이 있는데 그 중에 主(주)된 사랑이 있다.
만일 여자 속에 자리 잡은 사랑 중에 이차적 나르시시즘(secondary narcissism) 이기적 自己愛(자기애)가 主(주)된 사랑이면 여자가 아무리 에로스를 가지고 있어도 이차적 나르시시즘이 남편에게 도전하게 한다. 그 자기애가 에로스를 악용하여 운전대를 장악하게 한다. 그 집안의 운전대를 장악하고 남편을 그 운전에 순히 복종하는 노예마당쇠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게 된다. 그것에 조금이라도 거역하면 그 때부터 쉬지 않는 폭격을 한다. 참 불행한 남편이다.
대한민국 만세를 위한다면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 운전대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바쳐서 여자는 남편을 주로 존경하여 순복하고 남자는 아내를 자기 몸처럼 귀하게 섬겨 선용해야 한다. 그런 부부들이 많으면 나라가 부자가 되고 남자의 근로의욕이 넘쳐나서 그런 집은 가화만사성으로 부자가 된다. 부부싸움의 경제학을 논한다면 다투는 여자는 국가의 부요를 망치는 흉기가 된다. 그 때문에 다툼이 없어야 한다. 국가의 부요는 다투는 여자로 증발된다.
부부의 싸움은 아이들에게 자기사랑을 일깨우는 악행을 하게 된다. 이는 잠자는 악마를 깨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기를 희생하여 이웃을 섬기는 것을 일깨워야 하는데 도리어 자기를 사랑하려면 남편을 적으로 삼고 타도하는 것을 몸소 행동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이들이 결혼하면 그로 인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이혼하고 그 자녀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범죄자가 되고 또는 고아가 되어 사회 부적응 부적격자로 굳어지게 되어 사회정화비용을 막대하게 지불해야 한다. 그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해내는 여자들이 되려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자기사랑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으로 가정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그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치고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게 하는 가정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지만 오늘 날 여자들은 자기사랑을 위해 가정을 이웃을 나라를 희생하게 하는 입김을 그 자녀들에게 불어 넣는다. 참으로 불행한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다. 그런 불행을 없애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면밀히 살펴 후대를 키워야 할 가정교육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다투는 여인들의 그 弊害(폐해)가 국가의 미래를 망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가페로 행하는 여자들은 자기희생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다. 그 때문에 그 가치를 자식들에게 전이한다. 그 때문에 국가를 세우는 棟梁(동량)들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애국자들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여자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이게 하시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강조한다.
[전도서 7:26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결혼의 適齡期(적령기)에 있는 자들이 결혼을 하려고 노심초사하는데, 사실 여자 속에 다툼을 좋아하는 습성 성향이 있으면 결혼은 지옥과 같은 것이다. 차라리 광야에서 사는 것이 더 낫고 고독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주거환경이 좋은 곳에 있을지라도 그런 여자와 사는 것은 차라리 너무나 불편한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신 말씀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사망보다 독한 여자가 있다는 것, 광야보다 더 혹독한 여자가 있다는 것, 고독보다 더 고통을 주는 여자가 있다는 것 움막에서 사는 것 보다 더 불편함을 주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여자들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여성들의 품에서 나오는 것인데 여성들이 자기사랑에 함몰되어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를 잡아먹고 뜯어먹는 떼거리들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끼리 집회결사자유를 악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투는 여인은 악마의 미인계요 세상의 주도권을 악마에게 마치는 흉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악마의 미인계로 망하게 되는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 그런 흉기에 당하는 나라가 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값진 여자들과 아름다운 여자들이 득세해야 애국심이 강하고 이타적인 아이들이 나오게 된다. 그 공장에서 그 제품이 나오는데, 이차적인 나르시시즘에서는 자기愛(애)에 눈을 뜬 아이들만 나와서 세상을 망하게 한다. 여자들을 어려서부터 이차적인 나르시시즘으로 몰려가게 하면 그 나라는 곧 폭삭 하도록 망하게 된다. 핵무기보다 더 가공할 흉기이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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