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길과 국가를 살리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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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1:27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하나님의 본성은 그 반대되는 것에 대하여 항상 영원히 진노하시는 싫음 혐오감을 일으킨다. 그것을 가증하다 한다. 그 가증함은 하나님의 본성을 역겹게 하고 메스꺼움을 일으키고 질색 혐오감 역겨움 넌더리를 나게 한다. 하나님의 본성은 모든 심판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은 빛의 속성이시고 정직하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에 지극히 작게라도 반하는 것에도 강력한 거부감을 내신다. 그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흠과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혐오감을 유발하는 것은 심히 작은 것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큰 허물이랴?
하나님의 본성은 천국의 기준이고 잣대이고 저울이다. 하나님의 본성에 嫌惡感(혐오감)을 유발하거나 역겹게 만들거나 역겨운 것과 구역질나는 본질과 그 존재와 행동은 결코 가증스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영원히 물리쳐 지옥 불과 불 못에 던지신다. 천국은 하나님의 본성에 반하는 것의 그 조금이라도 결코 허용될 수 없다. 혐오스러운 넌더리나는 존재들이 누군가? 악마를 품는 자들인데, 악마의 악심과 악습과 악성으로 행하는 자들을 총 망라한다. 그 속에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모시면 모든 악심과 악습과 악성과 악마에서 떠나게 된다.
결코 심히 작은 악의 것이라도 멀리해야 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을 모신 자들은 그 속에 하나님을 모신다. 하나님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을 모두 버리게 하신다. 그 모양이라도 버리게 하신다. 하나님의 본성으로 그를 완전히 사로잡으신다. 이는 마치도 쇠를 달구는 풀무불과 같은 의미로 譬喩(비유)할 수 있다. 쇠는 검은 것이고 사람을 비유한다. 이 비유에서 풀무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고 불은 하나님의 본성을 비유한다. 쇠의 검은 상태는 곧 可憎(가증)한 상태를 비유한다.
그 검은 쇠를 풀무 속에 넣으면 불이 그 쇠 속으로 들어간다. 그 불이 맹렬하면 그 쇠는 녹기 시작한다. 달구어지되 붉은색을 띄고 그 다음에는 노란색이고 그 다음에는 흰색 곧 백열상태로 들어간다. 하나님의 본성의 열은 무한하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불이 들어가서 그를 사로잡으면 그는 백열상태에 이르게 된다. 백열상태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불이 더 높은 열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는 지극히 빛나는 흰색이 된다. 가열되면 될수록 그는 하나님의 불 곧 하나님의 본질을 온전하도록 입게 된다. 사도 바울의 평생은 이런 것을 위한 달음질이었다.
기독교는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참된 예배가 있고 가증스러운 예배가 있다. 가증스러운 예배는 하나님의 본성에 반대되는 짓을 하면서 드리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그 가증스러운 자와 그 예배와 헌물을 강력히 거부하신다. 돌아서신다. 오히려 진노하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의식에 있지 않다. 의식이 있어 예배를 드리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전이 곧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간절히 목표해야 한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 기복신앙이다. 악용하려는 것이다.
인본주의자들도 적그리스도도 그 예배에 참여하여 기독인임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악용한다. 하나님의 성령에 지극히 흰 백열상태로 사로잡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다만 하나님과 그 이름과 그의 모든 것을 악용하려는 의도에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에게 사로잡혀 행동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본성에 반하는 짓은 결코 할 수 없게 되는 사로잡힘을 누리게 된다. 그들이 곧 흰옷을 입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불이 들어가야 흰색의 권능을 가진다. 그 흰색으로 행동해야 흰옷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불에 들어가지 못하고 인간의 힘으로 흰색에 이르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 최면일 뿐이다. 하나님의 불에 들어가서 흰색이 되는 것이 성도의 옳은 행실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본질의 불에 사로잡혀 달구어져서 흰색으로 행동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기뻐 받으시는 자들이다. 그 백열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하나님의 기뻐하는 바요 아시는 바가 된다. 그들이 곧 자기들의 그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본성으로 행동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악심이라는 지극히 작은 혐오감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데 하물며 그 속에 악마를 품은 자들이랴? 그들이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고 예배에 참석하고 그것을 악용하나 하나님은 이를 심히 진노하신다. 혐오 증오 몹시 싫어함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처럼 혐오감을 주는 짓을 하는 자들과 동류가 되는 자들이 드리는 예배 또한 지긋지긋한 혐오스러운 가증스러운 질색인 싫은 예배이다. 모름지기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불 속에서 늘 단 쇠가 되데 백열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그 불에 사로잡히기를 심히 갈망해야 한다.
그 갈망을 따라 하나님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은 그 시에 그들을 달구시되 審判(심판)의 영과 燒滅(소멸)의 영으로 임하신다. 심판의 영은 하나님의 본성에 반하는 것의 심히 작은 것 그 하나까지도 다 드러나게 하시며 이를 悔改(회개)케 하시려고 回心(회심)과 悔心(회심)을 일으키게 하신다. 하나님의 본성에 반하는 그 작은 것 하나라도 미워하고 이를 버리게 하는 마음이 곧 하나님의 본성이시다. 그 본성을 누리게 하심을 심판의 영이라 한다. 심판의 영은 사람으로 회개에 열성이게 한다.
소멸의 영은 심판의 영이 드러낸 그것들을 다 태워버리고 그 악심을 다 태워버리고 악습을 몸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여 하나님의 본성으로 사는데 익숙하게 한다. 하여 하나님의 본성으로 그를 달구어 하나님의 본성으로 사는데 굳어지게 한다. 그러한 흰옷으로 입게 하신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받으신다. 심판의 영으로 회개를 하는 회심과 회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 심판의 영이 없는 예배는 가증한 것이다. 소멸의 영이 없는 예배는 더욱 가증한 것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하시는 심판의 영 소멸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본성을 입고 행동하려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그 영으로 오셔서 그들을 정화하신다. 하지만 가증한 악심과 악습과 악성에 빠진 자들과 악마에 묶인 자들의 예배는 즉각 거절하시고 진노하신다. 그 때문에 단순히 예배 의식만을 목표하는 자들의 예배는 다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을 입으려고 하지 않는 예배는 다 가증한 것이다. 그 헌물도 다 가증한 것이다. 이는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기에 거하지 않으시면 결국 악마의 영역이 된다. 오늘 날 교회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그 교도들이 남한적화를 위한 교두보로 악용하고 있다.
그들이 거기 거하는 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름부음에 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악마의 악심과 악습과 악성으로 굳어져서 악마의 거처가 되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예배를 악용하여 남한적화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을 숨겨주고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주는 자들이 기복신앙의 자들이고 인본주의자들과 황금송아지를 섬기는 자들과 종교다원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그 속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원치 않는다. 다만 예배를 드리고 군중을 속여 하나님의 기름부음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들은 참으로 가증한 자들이다. 만일 한국의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불 속으로 들어가기를 힘썼다면 하나님의 본성으로 상당한 도수의 백열상태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 백열상태에 들어가게 하도록 인도하는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이 그들이 모이는 집회마다 아주 강력하게 역사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성령의 대 각성운동이라 한다. 그처럼 그 군중 속에 그 안에 각 사람 속에 하나님의 본성이 불처럼 들어가서 저마다 백열상태에 이르게 된다. 물론 백열상태는 최초에 1,000도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3,000도 1만도의 백열상태는 더 거룩하다.
다음은 이사야 4장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산 세대가 戰亂(전란)으로 인해 상당수의 남자들이 죽게 된다. 이런 전란의 의미는 악마를 품는 가증한 자들을 땅에서 掃滅(소멸)하시는 심판을 의미한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을 거부하고 악마를 품고 하나님의 곁을 영구적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 세대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다. 하여 그 戰亂(전란)으로 상당수의 남자들이 죽게 되고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7대 1이라 한다. 역사의 심판이란 각 사람마다 이런 저런 평가를 내리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심판을 내려 掃滅(소멸)하심이다.
[1.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이사야가 외친 내용은 전란 후에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을 주시는 성령 대 각성의 운동을 내리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곧 악마를 품는 자들은 결코 심판하여 소멸하신다는 의미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자들은 이미 팔았기 때문에 회개의 기회를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掃滅(소멸)하심을 의미한다. 악마의 종자들은 스스로 회개의 기회를 팔아버린 것이다.
다만 악심과 악습의 유혹을 받아 행하는 자들에게는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살리신다. 그 때문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부어주셔서 회개케 하신다. 진정한 참회는 심판의 영이 임하여야 한다. 그 심판의 영에 의해 드러난 상태를 하나님이 오셔서 그 본성의 불로 정화하시는데 이를 소멸의 영이라 한다. ‘by the spirit of judgment, and by the spirit of burning’ 누구든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의 은총을 입는 자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육성의 모든 욕심을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본성을 입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본질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의를 행하기 때문이다. 그런 은총을 입는 날이 오면 인간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름답고 영화로운 성품을 입는 그 시작이다. 이를 여호와의 싹이라 한다. 비유컨대 1,000度(도) 時(시)에 백열상태에 도달한다면 그것이 곧 백열상태의 시작이다. 그 도수가 높아지면 질수록 더욱 거룩한 흰색이다. 여호와의 본성을 입는 시작이 일어나야 하고 그 시작은 싹처럼 무성하게 자라야 한다. [2.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모든 산업은 그 성격에서 나온다. 악마의 성격에서 나오는 산업을 악마의 경제라 한다. 악마의 경제는 가증스럽다. 착취 사취 갈취 약취 강취 약탈 수탈 강탈 억탈 겁탈 늑탈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악마에게 묶이면 그들의 속에서는 언제나 악마의 기만에서 나오는 取(취)와 폭력살인의 수법에서 奪(탈)만 나온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입은 자들의 속에서는 하나님의 경제가 나온다. 그 경제는 의롭고 선하여 영화롭고 아름답다. 전자는 식인종의 경제이나 후자는 하나님 기준의 이웃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경제이다. 사람다운 사람의 경제이다.
[사도행전 2: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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