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시절 나의 군복상의 오른쪽 주머니엔 늘 손바닥만 한 달력이 들어있었습니다. 땅 끝 마을 해돋이 사진이 뒷면에 그려져 있던, 또 어느 해엔가는 정동진의 푸른 바다가 출렁이던 작지만, 10년을 함께해온 내 삶의 동반자였습니다.
“풍선에서 떨어지는 ‘적지물자’를 다치기만 해도 손이 썩는다”던 소문이 나 돌던 어느 해 겨울엔, 그 말이 거짓임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중대며 대대 연병장에 ‘불티나’ 표 라이터며 ‘아리랑’ 표 담배 등에 섞여 새롭게 디자인된 달력이 하얗게 내리기도 했습니다.
눈에 쌍심지를 켠 지휘관들 앞에서 ‘적지물자’ 따위는 불태워버리기도 했지만 달력 몇 장만큼은 주머니에 포개 넣었다가 또래 사병들끼리 나누어 갖던 그때, 나는 그해 달력의 뒷장을 통해 유독 북한에서만 군복무10년이 강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끼리 등에 탄 20대 초반의 ‘괴뢰군’사병과 젊은 여성이 어울려 찍은 사진 한편에 ‘한국군은 30개월, 북한군은 10년, 세상에서 유일한 인민군의 장기복무제도’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었고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어이없는 병역제도의 중심에 내가 서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 놀랐던 것은 김정일의 고향이 백두밀령이 아니라 하바롭스크였더라는 것과 ‘미제의 식민지인 남조선’에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경기대회’가 개최되었는가 하면 90년대 초, 자동차 누적생산량이 1천만대가 넘었더라는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 자꾸만 자꾸만 가슴속에 쌓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손바닥만 한 삐라가 없었다면 나는, 그리고 탈북자들 다수는 ‘지구는 주체사상을 축으로 돌아간다’던 북한당국의 이야기를 지금도 믿었을 것이고 ‘장군님은 백두산이 낳은 불세출의 영장이시며 남조선은 헐벗고 굶주린 미제의 식민지’라는 것에 매료되어 탈북을 꿈꾸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삐라가 북한주민들을 계몽시키는 것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어느 교수님의 이야기는 ‘무식’이고, “밥벌이를 위해 삐라를 뿌리는 고로 정부가 저들에게 직업을 주면 골치 아픈 일이 없어 질 것”이라는 어느 연구위원의 이야기는 ‘교만’을 넘어 갈등과 상처의 씨가 되어 탈북자들의 가슴을 두고두고 아프게 할 것입니다.
결국 그런 ‘북한전문가’들과 ‘사이비 연구가’들의 잘못된 인식과 발언에 기댄 북한의 대북전단 살포중지의 파상공세가 시작됐고, 고사총탄 몇 발에 6.25를 겪은 우리 국민들임에도 ‘생명권’을 논하게 했으며, 대북전단 살포현장에서 우리가 우리끼리 싸우는 가슴 아픈 현실이 연출되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북한의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북한주민들에게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는 대북전단이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는 괴물’이 된 이유를 저는 알고 싶습니다. 또 핵무장까지 갖추었다고 하는 북한이 대포 몇 발을 쏘면서 NLL을 새롭게 그어버리면 그때도 우리끼리 싸우지 않는다는 담보가 과연 있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의 우월성이 없다면 핵무기를 가진 북한정권과 어떤 대화를 하든 밀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정의와 원칙에서 한걸음 물러서면 백 걸음 천 걸음을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왜 탈북자들만 외쳐야 하는지도 궁금하고 또 궁금합니다.
대북전단 살포현장에서 일부시민들에 의해 전단과 풍선이 갈가리 찢기던 날 북한은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우리 공화국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극악무도한《인권》소동을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릴 것이다’는 폭언을 퍼 부으며 또 다른 위협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김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