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성민> -1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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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남조선의 수도 서울에서 인민의 독재자 김정일과 노동당정책에 의해 베일에 가려진 공화국의 모든 진실을 생동하게 알려주는 ‘자유북한방송’입니다. 인터넷과 단파방송을 통해 하루 8시간씩 진행되는 본 방송의 ‘김성민의 특별초대석’ 진행을 맡은 김성민입니다.” 스튜디오 밖에 방송진행을 알리는 빨간불이 켜졌다. 황해도 새길협동농장의 모내기현장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황장엽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열심히 군사복무를 하던 김성민은 어느 날, 서울에서 송출하는 ‘사회교육방송’(북한, 중국, 러시아 등지의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KBS 라디오방송)을 몰래 청취하였다. 놀랍게도 방송에서는 황장엽과 김덕홍의 기자회견내용이 나왔다.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부친 김순석과 동료인 황장엽은 사회주의건설에 꿈과 희망을 갖고 펜을 들었던 지식인이다. 황장엽은 노동당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으로, 김순석은 김일성 충성문학 작품으로 북한주민들을 계몽시켰다. 아버지의 동지인 황장엽의 남한망명은 김성민에게 믿기지 않는 충격이었다. 평양에서 그의 아들 황경모와 한솥밥을 먹으며 휴가를 보낼 때도 친아버지처럼 자상했던 황장엽이다. 당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높은 그가 김정일을 배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김성민이 더욱 놀란 것은 부대 정치부에서 전체 군인들과 함께 받은 강연 중 “민족반역자 황장엽이 김포공항에 내리는 것을 서울에 침투한 대남전투원(간첩)들이 사살했다, 우리를 배반하면 누구든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응징한다, 모든 군인들은 계급적 경각성을 높여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내용이다. 당에서 혁명의 배신자 죄 값을 톡톡히 치루고 죽었다고 발표한 노동당 국제비서 황장엽이 서울에 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나온 음성은 분명 황장엽의 목소리가 맞다. 하면 노동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황장엽의 폭로는 사실이었다. 인민들이 굶어죽는데 죽은 김일성 시신보존을 위한 호화궁전건설에만 신경을 쓰는 김정일은 잔인한 독재자라고 했다. 멀건 강냉이죽도 없어 못 먹는 노동자·농민 몰래 전국도처에 비밀별장을 만들어놓고 호화생활을 누린다고 했다. 전체 인민들이 하는 각종 학습과 정치행사는 모두 그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 교활한 독재통치수법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조직생활을 하며 김일성·김정일을 신처럼 받들며 살아야 하는 불쌍한 공화국 인민이라고 했다. 김성민은 고뇌했다. 황장엽이 공화국의 일상을 그대로 말했다. 우리가 여태 이런 비참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 마냥 가난하고 불쌍하게 사는 인민들이다. 이건 아니다! 아무런 희망은 둘째 치고 어떻게 사람이 동물처럼 살아야 한단 말인가? 김일성이나 김순석이나 같은 인간이고 김정일이나 김성민이나 뭐가 다른가? 수령과 인민이기 전에 꼭 같은 사람이다. 수개월간의 숙고 끝에 그는 김정일 시대에 더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여 지난 1999년 2월 중국을 경유하여 남한으로 왔다. 결국은 그를 한국으로 부른 것은 서울에서 송출하는 ‘사회교육방송’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방송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었던 그는 지난 2004년 4월 서울에 정착한 탈북자들과 함께 폐쇄적인 북한사회에 ‘자유로운 남조선 바로 알리기’ 목표로 만든 대북전문 인터넷 라디오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설립했다. 차분하고 매력적인 김성민의 목소리다. “지난주에는 황장엽 선생님을 모시고 노동당간부들의 실태를 진단해 봤는데 ‘노동당 간부는 식물인간이다’고 하신 황 선생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실이죠. 이런 통쾌한 증언을 이 세상 어느 방송에서도 들어볼 수 없습니다. 북조선 인민들의 심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진솔한 방송, 자유북한방송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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