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성민> -4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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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의 도움으로 미국의회의 초청을 받아 워싱턴을 방문한 김성민은 국회의사당에서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상황을 기자들에게 설명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구상 최악의 노예국가입니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을 비판하면 총살당하고 하나뿐인 생명을 바쳐 화재현장에서 그의 사진을 구했다면 영웅이 되는 괴상망측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인민들은 숙명적으로 수령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이런 히스테리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의 죄악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변혁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은 어떤 방법으로든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는 것입니다. 그가 있는 한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는 항상 불안합니다.” 기자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냥 일상에서 일반기사를 작성하는 자세다. 어떤 기자들은 약간 귀찮다는 표정도 보인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그동안 미국을 다녀간 강철환, 안명철을 비롯한 북한정치범수용소 출신의 많은 탈북자들이 공통된 연설을 했다. 북한에서 각자가 살았던 지역도 다르고 체제의 특성상 범했던 죄과도 달랐지만 굶주리는 인민들과 파탄난 국가경제의 책임은 하나 같이 김정일 독재정치에 빚어진 산물이라고 입을 모은 그들이다. 김성민의 증언을 듣던 기자들이 서로가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무슨 일일까? 조금 당황한 그가 어느 기자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북한의 한성렬 유엔주재 차석대사가 지금 의사당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선뜻 놀랐던 마음을 진정한 김성민은 “저의 증언은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라고 마무리를 하고 기자들이 간곳으로 따라간다. 많은 기자들이 로비로 들어서는 한성렬에게 마이크를 들이 댄다. “국제사회가 만류하는 핵실험 계속하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의 자위권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주민들의 배고픔이 계속되는데 비싼 돈을 군비에 써야 하나요?” “우리 인민의 고통은 미국과 서방세계 탓입니다.” “의사당에는 무슨 일로 왔습니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회의에 참석하러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성민은 화가 났다. 뭐? 자위권을 지킨다고? 누가 북한을 침공이라도 하겠다고 했는가? 굶주리는 인민의 고통이 미국과 서방세계 탓이라고? 공화국 전역에 수십 개의 비밀별장에서 호화파티를 벌이는 김정일의 호의호식만 없어도 인민들이 밥을 먹고 산다. 거기에 불려가 외국미녀들과 밤새껏 놀아난 한성렬 따위가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조금도 알기나 할까? 김성민은 기자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저는 서울에서 온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입니다.” “아! 그래요? 동포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역시 우리민족끼리지요.” “그건 그렇고. 좀 신중한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네! 어서.” “내 생각에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평양의 김정일만 없으면 된다고 봅니다. 위조지폐와 마약수출, 불법무기제조와 전쟁연습 등 온갖 못된 짓으로 이골이 난 독재자 김정일 때문에 7천만 한민족이 불행과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빨개진 한성렬이 “당... 당신! 누구야?” 하며 거칠게 반항한다. 한동안 멍해진 김성민이고 눈치 빠른 기자들이 특종이라도 잡은 듯이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러댄다. 불같이 화가 난 한성렬이 뒤에 선 보좌관의 귓속말을 듣고 입을 쩍 벌린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대놓고 노발대발하는 그다. “이 탈북자 새끼야! 너 죽을래? 당과 조국을 배반하고 서울에 갔으면 그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 너 모가지 몇 개인데 그렇게 설쳐?” 김성민이 만만치 않게 대꾸한다. “한성렬 동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께서 당신더러 외국에 나가서 만나면 반가운 동포에게 그렇게 쌍스러운 표현을 쓰라고 했습니까?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도덕과 의리의 화신이라는 그 인간이 말입니다.” “너! 아가리 못 다물어!” “한반도의 평화? 가소로운 넋두리 하지 마세요. 지금 공화국인민들이 일제시기보다 더 혹독한 인권유린 속에서 전쟁 때 만큼이나 가난한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그거 다 김일성 동상과 혁명박물관 때문이라는 것 당신은 모릅니까?” “뭐? 뭐?” “인민이 굶어죽는데 비싼 외화를 들여 죽은 수령의 시신을 보관하고... 간부들에게 호화선물을 주고... 아이들이 배가 고파 학교에 못 가는데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민족을 위협하는 핵개발에나 몰두하는 당신들을 역사가 심판할 겁니다.” “이 개놈 새끼야. 그만 못해.” “당신 도덕과 윤리가 있는 인간이면 예의를 갖춰 말하세요. 적어도 한나라의 전권대표라는 사람이면 더욱 그렇죠. 내 입이 써서 더는 당신과 말을 섞지 않겠는데 제발 인민의 살인마 김정일의 노예로 살지 마세요. 한성렬 동지!” “뭐... 뭐야?” 태연한 자세의 김성민이 얼굴이 빨개진 한성렬에게 등을 획 돌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그를 따라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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