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계에도 그 실체가 조금은 공개됐지만, 북한의 마약 실태는 심각하다. 북한에 마약이라는 것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 정권 시기다. ‘외화벌이’를 한다며 전국의 지방 산골 농장들에서 양귀비를 공개적으로 재배하게 했다. 거기서 흰 가루를 뽑아서 만든 아편이 일명 ‘도라지꽃’이다. 도라지꽃은 외국의 마피아들과 연계해 수출되며 북한 정권에 목돈을 안겨 줬다.
당시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아편은 흔했다. 신경통, 폐렴, 장염 등의 병에 만병통치약처럼 쓸 요량으로 시꺼먼 아편덩어리를 비상약처럼 집집마다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아편 의존증이 심했다.
군수물자 용도로 마약생산 시작
본격적으로 마약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군이 마약에 손대면서부터였다. 인민무력부 군의국이 마약의 효과를 실전에서 이용하겠다며 ‘군수물자’ 명목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이 공포심을 느끼지 않도록 환각제로 이용하고, 전투 중에 부상을 입으면 통증을 없애 주도록 한다는 거였다. 군의국 산하에는 명신회사라는 회사가 있다. 사장인 변상호(군사칭호 상좌)가 ‘아이스(히로뽕)’와 ‘덴다(헤로인)’를 은밀히 중국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반주민들에게도 마약을 복용하는 방법이 퍼지기 시작했다. 북한에 ‘아이스’와 ‘덴다’ 등의 중독성 강한 마약이 서서히 사회 전반에 스며들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급기야는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가 나섰다. 김성훈이라는 한약 약제사를 대좌(대령)에 앉히고 ‘군상관리소’ 소장으로 임명했다. 군상관리소는 바로 마약을 생산하는 생산기지였다. 평양시 상원군 식송리의 산속에 위치해 있었는데, 비밀리에 헤로인과 코카인을 생산했다. 마약은 해외로 반출됐다. 보위사령부 31부(이전 6부)와 국가안전보위부 312조, 정찰총국 산하 연락소(이전 중앙당 연락소) 공작원들이 해외로 몰래 가지고 나가 외화벌이를 해 왔다. 막대한 외화가 들어와 ‘혁명자금’으로 정권에 바쳐졌다. 나중엔 해외에 파견되는 공작원들에게 공작금 대신 마약을 주기도 했다. 알아서 팔아 쓰라는 얘기다.
김성훈은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으로 추켜져 2중노력영웅 칭호까지 받았다. 김정일도 김성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2002년에 영웅대회가 열린 후 금수산기념궁전 앞에서 김정일이 영웅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군인과 일반주민, 이렇게 두 집단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이들이 김정일을 환영해 박수를 치며 만세를 부를 때, 김정일이 갑자기 군인 집단 두 번째 줄에 서 있는 대좌에게 가 웃으며 악수를 한 일이 있었다. 그가 바로 김성훈이다.
김성훈의 말로는 비참했다. 2006년, 마약에 관한 비밀이 노출됐다며 김성훈과 온가족을 15호 정치범관리소로 추방했다. 이들에게는 마약중독자라는 딱지도 붙었다. 그 후 군상관리소는 평양시 순안구역 재경리로 옮겨졌다. 현재도 계속 마약을 생산하고 있다.
쓰다가 버리는 북한 정권 특유의 용인술을 군의국의 변상호도 피할 순 없었다. 마약밀수 혐의로 그 역시 2006년에 잡혀 인민보안부 예심국에서 예심을 받고 재판을 받았다. 15년형을 받아 현재 북한 감옥에 있다. 일련의 마약 관련 검거선풍이 몰아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나왔다. 보위사령부 6부장으로 근무하며 마약판매를 담당하던 리계수 대좌라는 인물이 있었다. 6부는 평양시 대동강유역 문흥도에 사무실이 있었다. 리계수는 이미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드러나면 관리소로 추방될 게 두려워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은 살려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였다. 죽기 전에 외화를 많이 벌어들인 탓인지, 리계수를 신임하던 보위사령관은 그의 가족을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그대로 살도록 해 줬다. 보위사령부 6부는 31부로 명칭을 바꾸고, 사무실 위치도 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체육촌기지 옆에 있는 산속으로 옮겨졌다.
운동선수도 훈련시 마약복용
북한에서 유통하는 마약의 80%는 ‘아이스’라 불리는 마약이다. ‘얼음’, ‘빙두’라고도 불린다. 최초로 생산된 곳은 함경남도 흥남비료공장 6직장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들에게 아이스를 먹여 광적으로 싸우게 하기 위해 인민무력부가 생산을 주도했다. 비밀리에 생산이 되어 처음에는 생산자들도 비료인 줄로 알았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간부들이 조금씩 생산물을 몰래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츰 일반주민들에게도 유포됐다.
아이스를 흡입하면 중추신경이 마비되고 환각상태에 빠진다. 지속시간은 약 6~8시간이다. 아무리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심지어 부모가 죽어도 적당히 술을 마셨을 때처럼 기분 좋은 환각상태에 빠져 있게 된다. 마약의 마비 효과다. 순간적으로 체력도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훈련 중인 축구나 권투, 유술 선수들에게 아이스를 제공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경기 시작 3달 전까지만 쓰고 이후엔 끊으면, 도핑에도 걸리지 않으면서 힘을 쓸 수 있다고 북한 내에 알려져 있으나 요즘 도핑 체크 기술이 발달해 사실과 다르다.
아이스를 처음 접하면 중추신경이 마비되고 각성효과가 특히 심하다. 단 1분도 안 자고 밤새워 한국드라마를 보거나 도박을 해도 졸리지 않고 오히려 정신집중이 잘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중독이 되면 하루 3번씩 흡입을 하면서도 잠을 잘 자게 된다. 내성(耐性)이 생기는 것으로 점점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는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병이 나도 약이 없으니 아이스를 만병통치약으로 쓰는 형편이다. 저혈압, 감기, 폐렴, 뇌종양, 신경통 등 사실상 모든 병에 아이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눈병에 걸려도 아이스를 물에 풀어서 눈을 씻는다. 꼭 병에 걸렸을 때뿐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복용한다. 예를 들면 주부들이 빨랫감을 쌓아 놓았다가 한꺼번에 빨기 위해 강이나 개울로 들고 나갈 때, ‘아이스를 하고 가면 힘이 솟고 힘들지 않다’며 흡입을 하고 나간다. 고등중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학기말이나 학년말 시험을 볼 때, 돈이 좀 있는 부모들은 밤에 자지 말고 공부하라며 아이에게 아이스를 사 주는 위험천만한 짓을 서슴없이 행한다.
두부공장보다 마약공장이 많아
북한의 동물과 위조담배 밀매, 마약거래 등의 창구로 이용되는 평남 남포항의 컨테이너 부두. 간부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을 좋게 한다며 아이스를 흡입한다. 일반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육체적 피로를 풀고,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온몸이 아픈데 아이스만 하면 다 풀린다며 아이스를 찾는다.
보위부와 보안부, 검사들은 밤에 자지 않고 야간에 움직이고 있는 범죄자들을 체포하거나 야간취조를 하면 피곤하고 잠이 온다며 아이스를 찾고, 군인들은 잠복근무를 나가서 졸지 말아야 한다며 쓰고 있는 상황이다. 1980년대까지는 간부들이 아파하면 진통제로 몰핀을 놔 줬다. 그래서 간부들이나 그 가족들 중에 몰핀 중독자가 심심치 않았다. 1990년대부터는 일반주민들도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데 10여 년가량밖에 안 걸린 셈이다.
아이스가 대중화하면서 웃기는 얘기도 돈다. 북한은 조선시대처럼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공손하게 복종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아이스를 복용하는 여성들이 쌓이고 쌓인 분풀이를 남편들에게 풀어 버리는 일이 일어나게 됐다. 이걸 아이스의 ‘물난이(역효과)’라고들 한다. 이뿐 아니라 가정 폭력, 파탄이나 살인사건 등 크고 작은 범죄들이 늘어난 데에는 아이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아이스를 생산하기 시작한 곳은 함흥, 순천, 남포, 사리원 등 화학 분야 공장이다. 이제는 집에서 생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1000달러를 주면 생산 공정을 배울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스를 만들어 북·중 국경지역에서 중국 사람들에게 팔아 돈을 벌어 생활에 보태려 했던 건데, 이제는 아이스 생산량의 대부분을 북한에서 소모하고 있다. 중국에서 단속을 강화하기도 했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함흥시 같은 경우에는 식료품인 두부를 생산하는 집보다 마약인 아이스를 만드는 집이 더 많다는 보고가 보안부에 올라올 정도다.
아이스는 원래 마황이라는 약초에서 에페트린을 뽑아서 공정을 거쳐 생산한다.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에페트린을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화학 시약으로 쓰이는 페놀과 초산을 합성해 염산 에페트린을 스스로 만든다. 이런 방법이 지금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에페트린으로 아이스를 만들면 결과물이 D물질과 R물질로 분리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에페트린 1kg을 다른 화학물질들과 합성하면 D물질과 R물질이 각각 1kg씩 나온다는 얘기다. R물질은 마약효과가 없는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지만 생산자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하여, D와 R를 섞어서 판다.
아이스의 가격은 A급은 1g에 30달러까지 나가고, C급이면 20달러가량이다. 중독자들은 한 번 할 때 1g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평균적으로는 1g을 가지고 5회 정도 한다.
보위사령부에서 생산하는 아이스와 개인이 임의로 만드는 ‘사제’ 아이스 사이에는 품질의 차이가 크다. 보위사령부는 아이스를 만들 때 습기를 없애고 무중력 압착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는 깨기 힘들다. 칼로 긁어서 복용해야 할 정도다. 너비 약 7cm정도, 길이는 15cm가량, 두께 8mm로 포장하는데 한 개에 333g이라고 해서 333이라고 부른다. 개인들이 집에서 만드는 것은 얼음덩어리 같은 겉모습을 하고 있다. 증발되기 쉽다.
‘마약 나눌 바엔 부인을 나눈다’
일본의 TV아사히에 보도된 북한 주민의 마약 흡입 모습. 왼쪽 위는 김일성 사진이 담긴 5000원권 지폐로 대롱을 만들고 있고, 오른쪽 위는 연기를 흡입하고 있는 장면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마약중독이 얼마나 심한지 아주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 ‘마약이 있으면 한 번 같이 하자’고 해도 질이 좋은 마약을 나눠 주지 않는다. 구하는 과정에 잡힐 수도 있기 때문에 대신 구해 주는 일도 없다. ‘마약을 나눌 바엔 차라리 부인을 빌려주겠다’는 우스갯 얘기까지 돈다.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아이스에서 더 나아가, ‘덴다’라는 마약을 쓴다. 헤로인이다. 덴다도 원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생산을 시작했다. 전투 중 부상자가 생겨, 이들이 신음소리를 내면 주변 사람들이 겁을 먹을 수 있다 해서 부상자에게 먹이기 위한 용도였다. 일종의 강한 진통제인 셈이다. 40캄마(CC의 용량 단위)로 만들어 보관했는데, 생산자들이 몰래 반출해 암환자들의 고통을 멎게 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몰핀에 중독되었던 간부들과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덴다는 40, 60, 80, 100, 120캄마짜리로 나눠 생산한다. 헤로인 1kg으로 직경 3~3.5mm, 두께 1.5mm가량 크기의 100캄마짜리 알약을 1만 알 정도 만들 수 있다. 보위사령부에서 생산하는 덴다는 흰 눈처럼 하얗고 양 옆이 볼록렌즈처럼 나왔다고 하여 암시장에서 ‘볼록이’라고 불린다. 개인들이 만드는 것은 질이 나쁘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 8.3소비품, 즉 ‘눅거리’라 불린다.
덴다를 복용할 때, 처음에는 한 알을 3등분 해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중독이 되면 한 번에 2알씩, 하루에 6~8회까지 사용한다. 덴다를 한 번도 복용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120캄마짜리 2알을 가루 형태로 코를 통해 흡입하면 4~5시간 이내에 뇌혈전과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북한에서는 이 방법을 이용한 살인사건도 많이 발생했다.
덴다 120캄마 한 알에 10~15달러가량 한다. 중독까지 되려면 돈이 얼마나 많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덴다 때문에 한 집안이 망한 사례도 있다.
평양시 모란봉구역 북새동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재일교포 출신이었는데 양가 친척들이 모두 일본에서 기업을 운영하며 부유하게 사는 집안이었다. 부모형제들이 돈을 자주 보내 줘 평양시에서 제일 부자 축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부부가 모두 덴다에 중독돼 버렸다. 하루에 덴다를 40~50알 정도 복용할 정도로 심각하게 중독됐다. 결국 집과 가구, 승용차 2대까지 다 팔고 단칸방으로 들어갔다. 돈이 없으니 마약을 구하지 못해 금단현상이 심하게 왔다. 몸부림치며 살다가 결국은 보안부에 잡혀갔다.
그외에도 약을 쓰고 나면 처음에 머리가 빙빙 돈다고 하여 일명 ‘돌이돌이’라고 불리는 마약과 총탄에 맞아도 아프지 않다고 하여 별명이 ‘총탄’인 마약 등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