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특한 악마의 술책, 어찌 두 길 보기를 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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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6:3.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이웃의 손에 빠진 자들을 구출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인데, 저마다 자기들 앞가림에 혈안이니 그런 구출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본인이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구출하는 길밖에 없는데 그게 여의치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있기에 이웃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겸손히 간구하라고 한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남 같이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새가 벗어남 같이 스스로 벗어나라고 한다.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면 만사형통인데도 그러하다.
악마와 그 종자들의 손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행하려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훈련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대로 행하기에 熟達(숙달)되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본다. 그 지혜대로 행하는데 능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힘이 그의 뒷배가 된다. 악마와 그 종자들이 기만 폭력 살인의 위협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지만, 악마를 몰아내면 그들은 그 종자들인지라 힘이 없다. 결국 하나님의 지혜가 그들을 이긴다. 그 때문에 그들의 손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
관건은 악마 종자들의 뒤에 있는 악마의 세력이다. 그 세력을 몰아내는 능력이 없으면 결코 악마의 종자들을 제압할 수 없다. 악마의 종자들 배후의 악마를 제압하지 못하면 아무리 간청해도 겸손히 간청해도 그들이 들어줄 턱이 없다. 따라서 본문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인본주의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힘으로 순종이 가능하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것을 율법의 행위라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갈라디아서 2: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면, 하나님의 본질의 요구를 만족케 하는 것이 가능하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태초의 말씀이 인간으로 오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인용구의 말씀의 부분을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갈라디아서 2:15.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계신 하나님 만물의 창조주의 요구를 만족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해도 그것은 다만 인간 의다.
스스로만이 스스로를 만족케 하시는 유일무이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시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케 하셔야 한다. “시편 136:4.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는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신 태초의 말씀이 인간의 육체로 오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의 의만 받으신다. 이를 하나님이 내신 의라 하여 하나님의 의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케 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이 곧 율법주의자들이다. 그 율법행위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든 의이다.
인간 의다. 이는 그 인간에게 만족을 줄지 모르나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는 없다. 전혀 없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데 완전해지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된다. [17.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데 완전해져야 하는데,
불완전하면 여전히 그리스도의 통제 밖의 행동을 하게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완전히 받아 행한 자이다.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그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행하는데 완전하여져서 인간의 힘으로 다시는(죽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이요구하는 의를 행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 하나님의 의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예수를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데 완전해진 것을 말씀함이다. 누구든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 통제를 받으면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은총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예수를 믿는 것이 믿음이다.
진정한 믿음이란 의미이다. 인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통치를 받는 것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것이 곧 믿음이라는 의미이다. [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인간의 힘으로 의롭게 되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요구를 달성하거나 만족케 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신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으로 오셨으니 그리스도 예수시다.
인본주의의 오만의 극치에서 벗어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자. 만일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의롭게 되려는 운동이 율법주의자들인데, 율법의 행동이란 곧 인간의 능력을 그리스도의 통치보다 더 믿는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의 신념이다. 율법의 행위는 신념이고 그리스도의 통치는 신앙이다. 신념을 통해 인간의 성품이 좋아지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우기는 것인데, 이는 인본주의의 오만의 극치이다. 인간의 힘으로 세상이 새롭게 된다고 믿는 자들이 곧 율법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다.
그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사람을 개혁하려는 노력을 금해야 한다. 그것은 곧 율법주의자들, 곧 인간의 신념의 마인드 컨트롤에 불과하다. 만일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기준의 의를 이루려고 한다면 이는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인간의 힘으로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그 자유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유란 하나님의 기준의 의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이룸을 의미한다.
eleutheria{el-yoo-ther-ee'-ah} 그 자유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유의 개념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자유이다. 누구든지 이러한 비밀을 성령으로 깨달아야 모든 것을 인본주의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에서, 속히 인간의 그 모든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두 가지를 다하면 어떠냐고 한다. 이는 참으로 복음을 혼잡하게 하는 행동이다.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통치를 겸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분명히 선을 그었다. [2.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완전히 온전히 그리스도의 통치만을 받아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각기 나름의 분할로 두 가지를 겸하려고 애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기준보다 인간의 기준을 더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 하나님의 기준의 의는 그리스도의 통치에서만 나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지키려고 애쓰지 말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하여 받으라. 바울은 분명히 선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유익을 얻으려면 인간의 노력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인간이 노력한 것은 인간의 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나오는 것이다. 그 의의 본질도 다르고 출구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그는 더욱 강하게 이 문제를 거론한다. 만일 인간의 힘으로 만드는 의에 거하는 자들은 인간의 힘으로 율법전체를 지켜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지키려고 애쓰니 말이다.
그는 다시 증거한다. 할례 곧 인간의 노력으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자들은 율법을 인간의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것이다.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 안에서 인간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이고 그리스도께서도 그들과 함께하시지 않으신다. 그 때문에 끊어진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은 인간의 의를 아울러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만 받아야 하는데, 인간의 노력도 동등하게 두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완전함과 온전함을 받지 못하는 자들은 거부하는 자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고 은혜에서 끊어지는 자가 된다. 이는 무서운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의 노력의 의미는 도리어 적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원흉임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성령의 각성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기독교는 성령의 각성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함이다. [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성령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믿음을 좇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각기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믿음인데, 하나님 기준의 믿음은 성령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통제를 받음이다.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행하는 것을 믿음으로 행한다고 한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그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통치의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그 모든 신념의 행위들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 기준의 의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의미는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에게는 인간의 노력이 아무런 효력을 얻어내지 못함을 알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로 공급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통제받아 행하는 믿음의 행동만 한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버린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벗어나게 하는 모든 자들이 있다.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는 악마의 미혹이다. 악마의 입김 입심을 이길 수가 없다. 특히 아직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은 그것들의 유혹에 미혹될 수도 있다.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때문에 우리는 진리에 굳게 서게 하는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을 받아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그 길만이 악마와 그 입김을 입심을 이기게 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아니면 인간은 망한다.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니 성령의 충만을 받자.
성령의 인도하심만이 그리스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누가복음 11:13.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갈라디아교회의 성도에게 바울은 묻는다. “갈라디아서 3: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성령이 아니면 결코 믿음에 설 수가 없다.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요한1서 4: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성령이 아니면 결코 그리스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한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되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 진리는 자명하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하나님의 기준의 의에 이를 수 없다. 그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고 거기서 성령으로 말미암는 의의 소망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두 길 보기의 사특함은 악마의 술책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떠나게 하고 두 길 보기를 유도하는 악마의 간교함은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게 한다. 그런 짓들은 교묘하게 파고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진리에 서야 한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진리의 영은 결코 인간의 의를 요구치 않으신다. [8.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9.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듯이 이 두 길 보기의 사특함은 교회들을 온통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악마의 술책이다.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통치만이 인간을 자유케 한다고 거듭하여 확인하면서 성령의 충만 곧 진리의 영의 충만으로 이 모든 거짓을 몰아내라고 요구한다. [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교회 내에서 인간의 의를 강조하는 모든 이들은 다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하는 유사기독교일 뿐이다. 진정으로 진리의 영의 교회가 되려면 그 정과 욕심을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곧 인간이 자유를 얻는 길이다. 하나님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기준이다. 그 기준에 따라 그 기준을 만족케 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뿐이다. 그 때문에 세상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도리어 핍박한다. [11.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세상은 세상의 말을 믿는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자는 말을 거부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자는 말을 세상은 싫어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자는 것은 어떤 자들에게는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오는 것에 거치는 것이 된 셈이다. 그들이 오기 좋게 하려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변하게 하거나 두 길 보기를 해서는 안 된다. [12.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진리의 영이 아니면 미혹의 영이다. 어찌 두 길 보기를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대한민국에는 진리의 영이 충만해야 한다. 그때만이 인본주의자들이 적그리스도들이 득세치 못하게 된다. 그들이 득세하니 남북빨갱이가 득세하고 그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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