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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축통화를 하는것은...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280 2015-12-02 16:24:14

제목:중국공산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축통화를 하는것은 세상을 분요와 혼란에 빠뜨리는 악용함이다.


 [잠언 10:15.부자의 財物(재물)은 그의 堅固(견고)한 城(성)이요 가난한 자의 窮乏(궁핍)은 그의 敗亡(패망)이니라]
 
 중국의 위안화가 key currency 기축통화대열에 들어섰다고 한다. 세상이 중국 돈을 알아주는 계기가 된 것이라 하는데 달러의 전성시대가 마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함수들은 달러를 도리어 강하게 하는 계기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은 중국의 위안화의 힘은 그들 목표의 시작일 뿐이다. 달러가 많은 나라가 경제안보가 튼튼한 것으로 평가되는 세상이다. 오늘의 본문은 부자의 재물이 그의 견고한 성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밝히고 또 밝히는데, 그것을 위해 악마와 결탁하는 경우가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금 수저 물고 태어난 자, 은수저 물고 태어난 자, 흙 수저 물고 태어난 자, 등등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유산을 받는 자들의 득세에 대한 풍자가 그것일 것이다.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자들의 견고함은 마치도 그의 성과 같은 것이다.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라 한다. 그 때문에 돈이 많지 못함에 대한 갈등이 가득한 세상이다. 이런 차별을 눈에 두드러지게 구분을 하여 전체를 가리는 짓을 하는 것이 곧 남북의 빨갱이다. 가진 자에 대한 원망을 분출되게 하여 그것을 폭동으로 몰고 가려는 선동이다.
 
 하나님의 기준의 부자이다.  
 사회 통념으로 성경을 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늘의 본문은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부자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을 충만히 모신 분량만큼 그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부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을 받아 모든 것을 선용하는 자들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안목으로 모든 것을 선용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견고한 성을 가진 자들이다. 견고한 성은 곧 그 건물을 선용하여 모든 전쟁의 공격방어로 이김이다.
 
 이김이 없는 城(성)은 견고한 성이 아니다. 모든 전쟁을 이기게 하는 성을 견고한 城(성)이라 한다. 견고한 성을 구축하고 그것을 선용하여 전쟁에서 이기게 함이 곧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된 자들, 성령 충만한 자들이고 그리스도의 통치에 완전히 길들여진 자들이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뜻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은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분은 만물을 선용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선용의 스펙트럼과 본질이 무한하시다. 그 無限(무한)하신 부요에서 나오는 선용은 마치도 부자의 재물과 같다.
 
 아무리 부자가 재물이 많아도 그것을 악용하면 그의 패망이 되고 그 재물을 선용하면 그것은 그의 견고한 성이 되는 것이다. 결국 본문은 하나님의 선용을 누리는 것에 부자가 된 자들의 재물은 견고한 성을 이루게 하고 하나님의 선용에 가난한 자들은 선용의 궁핍에 패망하게 된다고 하는 의미이다. 거기서 재물은 곧 하나님의 선용이다. 하나님의 선용을 부요하게 누리는 자들만 그 財物(재물)로 견고한 城(성)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선용이 없다면 그것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부자가 그 재물로 견고한 성을 삼는 것은 별개이다.
 
 부자가 가진 응용의 범주가 그 재물을 사용한다. 금 수저니 은 수저니 하더라도 응용이 한계가 있으면 도리어 그 재물을 다 허비하게 된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탕자의 말씀에서 탕자가 그 유산을 다 허랑방탕하였다고 한다. (누가복음 15:11.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다고 해도 그가 가진 응용의 범주가 그의 재물을 사용할 것이니 견고한 성이 되는 여부는 불투명하다.
 
 (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부자의 재물이 그의 견고한 성이 될 수 없음이 곧 그가 가진 응용의 한계이다. 응용의 한계에 봉착하면 그렇게 인생은 궁핍해진다. 응용의 힘을 지혜를 무한하도록 하나님께 받지 못한 자들은 언제나 가진 재물을 다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 사람이 겪어야 할 한계이니 견고한 성은 고사하고 자기 한 몸 돌아볼 능력도 없게 되는 것이다.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인간은 자기 한계를 알아야 한다. 응용의 한계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을 이기는 견고한 성이 어디서 오는 가를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누구든지 하나님은 그의 선용의 부요가 되신다. 그 부요를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부자들이다. 그 부자들은 하나님의 선용으로 재물을 활용하여 견고한 성을 구축하게 한다. 모든 공격과 방어에 능하여 늘 이긴 자가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하나님의 부요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용의 무한하신 부요를 확보하는 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는 하나님의 부요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용의 무한하신 부요를 확보하는 길이다. 하나님의 선용의 무한하신 보고를 얻어 누리는 자들이 많은 나라가 견고한 성을 이루도록 그 재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중국의 위안화가 과연 그 나라의 견고한 성을 이루게 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하게 된다. 그 나라 국민이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선용의 부요를 누리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결국 기축통화가 된 것이 화가 될 것이다.
 
 나라의 모든 자산을 선용하여 견고한 성을 구축해 이김을 삼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음이다.
 
 경제의 길은 늘 변화무쌍하다. 오늘은 부자인 것 같으나 내일은 가난해진다. 오늘은 가난한 것 같으나 내일은 부자가 된다. 그것이 인생의 無常(무상)함이다. 무상에 시달리는 나라는 경제가 장구한 재물을 얻지 못하는 한계에 묶인다. 그 때문에 견고한 성은 없다. 나라의 경제를 견고한 성으로 삼으려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국민의 수가 나날이 많아져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만물 기회 선용의 寶庫(보고)를 받아 누리게 된다. 그들이 많아야 비로소 득세하고 그 得勢(득세)를 따라 하는 경제운영에 하나님의 선용이 그 운전대를 잡게 된다.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무한한 善用(선용)의 보고가 대한민국에 공급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이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형상이시다. 그분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선용하여 견고한 성을 구축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기게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자고 날마다 강조한다. 대한민국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이들이 많아지면 나라에 하나님의 선용을 누리는 자들이 많아진다. 그 부요가 나라의 모든 자산을 선용하여 견고한 성을 구축해 이김을 삼는다.
 
 견고한 성을 삼게 하는 재물은 하나님의 선용의 부요에 있지 재물 자체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선용에 부요치 못한 자들은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그 재물로 모든 것을 이기는 견고한 성을 삼지 못한다. 전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악마의 유혹과 그 종자들의 유혹에 의해 그 재물을 허랑방탕 허비하게 된다. 결국 그렇게 망하게 된다. 비로소 견고한 성을 삼게 하는 재물은 하나님의 선용의 부요에 있지 재물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자신을 알아야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를 한다.
 
 하나님은 悔改(회개)하는 나라를 사랑하신다. 悔改(회개)하는 사람을 받으신다.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하나님은 悔改(회개)하는 나라를 사랑하신다. 悔改(회개)하는 사람을 받으신다.
 
 회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그 회개의 완성을 이룬 자들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데 완전해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선용을 공급받는 것이다. 그들만이 재물로 견고한 성을 삼는다. 견고한 성을 삼지 못하면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지 못함이고 만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선용의 보고에 부자가 되어 그 선용으로 재물로 견고한 성을 삼아내어 모든 전쟁을 이기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이 기축통화를 한다고 해도 長久(장구)함은 보장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버린 나라는 결코 장구한 재물을 누릴 수 없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려고 돌아오는 나라만이 그 혜택을 보게 된다. 그 때문에 중국의 국민이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데, 그 반대면 기축통화가 그 나라에 禍(화)가 될 것이다. 그 나라 경제운용을 악마와 그 종자들이 한다면 결국 그것으로 피바다의 세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들의 응용의 범주는 결국 악마적인 발상에 갇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재물을 선용하여 세계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發想(발상)만이 가능하다.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자기 한계를 깨닫고 돌아온 아들은 종 또는 품꾼의 하나가 되고자 했다. 운전대를 버리고 시키는 대로 일하고 먹을 것이라도 해결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크신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내려 주신다.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하여 하나님의 선용의 부요를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의 선용의 가치를 알려면 그리스도의 통치의 가치부터 알아야 한다. 작은 아들은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안 것이다. 큰 아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있다.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진정한 선용이 무엇인지 모른다.
 
 기축통화의 구실은 가난한 나라를 살리는 경제운영인데 아가페 사랑이 없는 무신론자들에게서 나올 리 없다.
 
 그 때문에 큰 아들은 사랑이 없다. 동생이 살아서 돌아온 것만도 기뻐할 일인데, 재산을 탕진한 것에 초점을 두고 동시에 동생에게 자기 재산을 빼앗길 것을 염려한 것이다. (29.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기축통화의 구실은 가난한 나라를 살리는 경제운영인데 아가페 사랑이 없는 무신론자들에게서 나올 리 없다.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하나님을 비유한 탕자의 아버지의 기쁨은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용은 바로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 곧 선용이다. 그 선용은 남을 부자가 되게 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 “잠언 11:24.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하나님의 선용으로 구제에 힘써야 한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구제하는 것은 결코 구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이웃국가에 대한 사랑으로 구제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나라가 국민이 무신론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 준 만치 큰소리치고자 하는 것이라면 기축통화가 세상을 분요케 하는 혼란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저 어려운 이웃 나라를 사랑으로 섬기는 선용은 그들의 본질에서 나올 수가 없다. 그 나무에서 그 열매다. 그 때문에 그들의 경제는 곧 무너지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 때에 빛을 발해야 한다.
 
 묵묵히 사랑의 구제를 온 세상에 해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하는 성령의 대 각성으로 회개를 한 국민들이 이 나라의 다수가 되어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지도자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이기는 견고한 성은 하나님의 선용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선용으로 흩어 구제하면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재물로 견고한 성을 삼으려고 인간 방법을 삼으면, 그 중에 하나가 과도히 아낌인데, 도리어 가난하게 될 뿐이다. 생각지 않는 일들이 터져서 낭비가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묵묵히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용으로 재물을 사용하기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구멍이 뚫린 전대나 물이 새는 그릇과 같은 의미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구제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그에게 재물을 얻게 하는 일을 만들어주신다. 나간만큼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주시기 때문에 여전히 그는 부요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용은 그런 비밀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선용의 길은 언제나 재산의 증식의 비밀이 따라 다닌다. 생산 창조의 능력이 그 길에서 하나님의 선용을 행하는 자를 돕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길에 더욱 부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니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25.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그 때문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지는 것이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해지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지금 중국이 행하는 정책은 패권국가로 가는 것이다. 군사패권만을 가지고는 세상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고 경제패권을 장악하여 명실상부하는 초강국이 되고자 함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선용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서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중국은 결국 그 야심 때문에 족쇄에 묶여 헛된 힘을 낭비케 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묵묵히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용으로 재물을 사용하기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아무런 조건이 없이 가난한 나라를 돌아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을 베푸는 것이다. 이웃나라가 잘 살도록 돕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행만이 그 나라를 치료할 수 있고 그 나라 경제를 일으켜준다. 그 나라가 아주 고맙게 여기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용밖에 없다. 그런 일을 해내는 지도자들이 절실하고 공복이 절실하다. 그것은 이 나라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공복들이 전진배치가 되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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