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표도 드립니다. 단지 제 경험을 참고드리면 1974년 평남순천 평산고등중학교 때 대학입시 시험을 친 결과 저의 딱친구가 1등(재일교포) 제가 2등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순위에 따라 중앙대, 지방대 선정원칙공시. 나는 김대를, 1등인 친구 문영철은 김책공대를 지망. 따라서 앞서 경쟁자가 없으니 당연히 나는 김대가야 했지요. 근데 발표때 보니 전부 하의 점수의 군 간부자녀천지. 이렇게 하면 가르치기 힘들다고 학교선생님들과 아버지가 강력히 항의하였지만 김대는 끝까지 간부자녀가 차지 하고(토대가 우선*물론 점수미달로 다 떨어져 옴) 뒤늦게 폰트를 하나 요청하여 나는 김책공대 추천. 실제 대학에 가보니 김대가 김책공대에 실력이나 체육경기마저 지고 있는 실정. 제가 있을 때가 아닌 요즘은 좀 나아 졌는지...
*오해없기 바람니다. 저는 추후 쌀은공산주의! 교시를 받들어
충성하기 위해 농업쪽으로 전환, 농업 전문학교, 대학, 대학연구소, 농업과학원 연구원으로 되었음.
70년대 김책공대에는 반도체 공학부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없습니다.그리고 전자공학부에서 반도체이론을 배우는 과목이 있지만 반도체공학부라는 학부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김책공대출신 탈북자들에게 물어보면 70,80년대에는 입학시험을 먼저치뤄서 합격한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학과를 배치했지 처음부터 학부에가서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고 합니다.민복씨를 잘 아는 사람에게 들은 소리인데 중학교 나와서 협동농장에 배치되었고 초급일군으로 일하다가 탈북했다고 하던데요.그리고 매스컴에 나와서 삐라보고 탈북했다는 탈북자들 거의다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전형적인 대남사업부 스타일이네요.
언제는 할머니를 겁탈하고 탈북했다고 하더니...
정확히 1974년 2월 김책공대에는 반도체공학부가 존재.
그후 전자공학부로 통합되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당시반도체공학부장은 여자, 그의 남편이 전 학부장,
헬기를 설계하고 자신이 탔다가 떨어져 사망.
당시 대학교의유일잡지인 <대학생>에 보니 선배들이
수근대기를 김평일의 김대논문과 사진이 나온 것을 보고
수령 자제라고 ...
반도체공학부를 모르니 정말 가짜네요.
그리고 가장 혁명적이고 문명계급인 로동자농민의 나라에서
농민을 그렇게 하대하는 듯하면 안되지-
이렇게 욕해야 하지요.
동무레-신성한 농민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구만
김책공대 같은 거이 뭐 갔어...
그러면서 시집장가가라면 아니고^^
수령님들도 못배운 김정숙이 아니라 김성애
배우, 따다라들과 부화하고 결혼하고...
수령님이 그러시는데 이것이 앞뒤가 않맞는 누만.
그러기에 사기공화국이지요.
아래에 김대 모임에 관한 글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찬성표도 드립니다.
단지 제 경험을 참고드리면
1974년 평남순천 평산고등중학교 때
대학입시 시험을 친 결과 저의 딱친구가 1등(재일교포)
제가 2등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순위에 따라 중앙대, 지방대 선정원칙공시.
나는 김대를, 1등인 친구 문영철은 김책공대를 지망.
따라서 앞서 경쟁자가 없으니 당연히 나는 김대가야 했지요.
근데 발표때 보니 전부 하의 점수의 군 간부자녀천지.
이렇게 하면 가르치기 힘들다고 학교선생님들과 아버지가 강력히 항의하였지만
김대는 끝까지 간부자녀가 차지 하고(토대가 우선*물론 점수미달로 다 떨어져 옴)
뒤늦게 폰트를 하나 요청하여 나는 김책공대 추천.
실제 대학에 가보니 김대가 김책공대에 실력이나
체육경기마저 지고 있는 실정.
제가 있을 때가 아닌 요즘은 좀 나아 졌는지...
*오해없기 바람니다. 저는 추후 쌀은공산주의! 교시를 받들어
충성하기 위해 농업쪽으로 전환, 농업 전문학교, 대학, 대학연구소, 농업과학원 연구원으로 되었음.
그 충성이 결국 중국식개인농주장 1호편지 사건(1990년5월)과
남한 삐라 본 계기(1990년8월)가 맞물려 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