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세계적인 전원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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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낼 테니 맞혀보시라. 도시 이름을 대는 문제인데 첫 번째 힌트는 '세계적인 계획도시이자 전원도시'다. 범위가 너무 넓다고? 하긴 내가 봐도 좀 그렇다. 아마도 따뜻한 햇볕 아래 너른 포도밭이 펼쳐진 프랑스 남부의 어디쯤이거나 네덜란드인들이 아기자기하게 만들어놓은 암스테르담 근처가 아닐까 싶다. 스페인 사막지대의 올리브 재배 단지? 거기도 예술이다. 보고 오신 분들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 두 번째 힌트는 '옛 고구려의 수도이기도 했던 유서 깊은 도시'다. 뭔가 이상하다. 세계적인 계획도시이자 전원도시라더니 설마 '그곳'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세 번째 힌트는 '이 도시는 북한의 수도'다. 설마 했더니 진짜다. 대체 무슨 이런 문제가 다 있냐고? 있다. 북한에서 낸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모 교육청에서 펴낸 '즐겁게 놀다 보면 나도 통일 전문가'라는 책자에 나오는 문제다. 원문은 이렇다. '세계적인 계획도시이자 전원도시로 알려진 ○○은 옛 고구려의 수도이기도 했던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북한의 수도인 이 도시의 이름은?' 아이들은 뉴스도 안 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매사에 한없이 긍정적인 인간이다. 혹시 모든 것이 계획에 의해 통제되고 개발이 성숙하지 않아 농촌과 도시가 병존하는 곳이라는 것을 비아냥댄 대단히 중의적이고 매우 고차원인 문제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니까 또 그렇게 보인다.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 교육청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 책자의 뒷장으로 넘어가니 황당한 구절이 또 눈에 들어온다. 6·25전쟁에 대한 설명인데 이렇게 되어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북위 38도선을 넘으면서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이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됨.' 북한군이 38도선으로 넘으면서? 무슨 소풍 나오셨냐. 전차를 앞세우고 인명을 살상하며 진격한 것을 마치 피크닉이라도 나온 듯 넘으면서라고 표현하다니. 긍정도 바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북한을 싸고돌지 못해 안달일까. 이런 정서는 외국인의 눈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타자(他者)의 시각이라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며칠 전 이 신문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던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국가보다 민족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취급받는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실이다. 청춘들에게 '꼴통' 소리를 듣는 비법이 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룬 자랑스러운 나라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분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대한민국을 '씹어야' 진보 지식인 소리를 듣는다.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가 좋다고 말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고민하는 정치인 대접을 받는다. 평화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인데 둘을 동급으로 취급해도 바보 소리를 안 듣는다. 책자에서 최종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북한은 가난하지만 자부심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행간에 숨겨진 건 '대한민국은 좀 살기는 하지만 병들고 자부심이 없는 나라'.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모독한 다음에 남이 모독하고,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다음에 남이 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아주 정확히 그 길로 가고 있다. *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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