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 사진 설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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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창광거리 (일명 음식점 거리) 입니다. 예전에 <해방산거리>로 정부관리들이 사는 2층짜리 소련식 주택지구 촌이었죠. 김정일의 지시로 1985년 노동당창건 40돌을 기념하여 <창광거리>로 재탄생하였고 노동당간부 아파트단지로 되었습니다. 아파트 아래부분은 모두 30여 개의 각종 음식점으로 되었고 설비는 전부 일본제. 제가 있었던 1996년 11월 까지 모든 음식점의 음식 판매는 '안내표'(쿠폰)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냉면 한 그릇이 5원인데 '안내표' 값은 50원. (한달 월급 100원) 승용차들이 주차된 왼쪽 둥근벽체 건물이 '평양고려호텔' 그 맞은 켠 '창광식당' 뒤 부분에 제가 다녔던 '평양철도안전국' 본부가 있죠. 이 거리 오른 쪽 뒤로 500m 지역에 '평양의학대학이' 있으며 그 근처에 제가 살았던 외성동 아파트가 있답니다. 아! '창광식당' 간판 위에 '약산식당' 간판이 보이네요. 저 식당에서 1994년 10월 딸의 돌생일식사를 했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 제 한 달 수입으로 수백 키로그램의 쌀을 살 수 있는 이곳 대한민국 서울에 살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김일성 아버지는 참 나빴습니다. 2017년 9월 2일 - LIM IL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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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림일선생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2 16:30:18
- 림일선생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2 16:30:33
- 림일선생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2 16:30:52
이똥개 같은쉐레기가 이창에서 사는구나.
인간 말종 새캬...
내가 말하니까 좀 보라...한달 수입이 2-300만원 되면 1톤의 쌀을 사겠지만
수입이 200만 미만이면 한톤은 못사는거지...
네가 남의 수입을 아냐? 멍퉁아
그다음 북한에 계층별로 집 평수 규정해 놓은건 없어...간부들이 큰 집을 쓰는건 맞지만 급수별에 따르는 평수 규정은 없어.
글구 솔직히 탈북 여성들 집 평수에 대한 개념 부족한거 많은거 인정한다..
그런애들 재잘 거리는거 신경 붙들어 매라..
그리구 좀 멍충하게 놀지 마라
알긋냐?
- 림일선생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2 16:31:14
근데 왜 그좋은곳을 버리고 늙은몸을 이끌고 이먼곳까지 오셨을까?
저희들은 토끼장같은 하모니카주택에서 서로 몸을비비면서 살았는디...
밤이면 옆집부부가 그짖거리하는소리 방귀소리같은 별의별 멜로디를 듣으면서
잠자리에 들곤했는데...
암튼 당신은 가는곳마다 좋은데서 살았는디 우리는 안좋은추억땜에 이런거 별루
안좋아하니 혼자나 즐기고 올리지마슈..특히 평양노랭이들은..
글그 초삥이 이놈아,,
평양거리 거닐고싶다고..얌마 너 거시기 간첩훈련받을려고 초대소에 있을때 많이
걸어 다녔잔어...어디서 쌩까냐구..
뒤질려고 . 지금은 내 참는다.
다음 정부때는 어림없당 알았제
지금정부때 할짖다하고 먹을거 다묵고 해라 시간얼마 안남았당.
그런데 어쩌지 ? 담정부는 수구애들 그릇은 없어,, 망했다구 ㅋ
너 참 안타깝다
니 아무리 충절가를 불러보렴 그들은 끝났어 ㅋㅋㅋㅋㅋㅋㅋㅋ
행에게 뭔 말버릇이고 ..
면봉으로 혀바닥을 돌 돌 굴려서 꼬치구이 할가부다..ㅉ
행이 너그럽게 참는다..
도제 두시간도 못있고 지워버릴 글은 와 쓰노.....
무쟈게 궁금하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5 14:04:07
- 조삥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3 20:11:16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5 14:03:54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5 14:04:00
- 조삥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3 20:11:43
- 조삥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3 20:12:09
- 조삥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3 20:12:31
만날 그날 가까이 왔습니다.
그때 큰 일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