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노 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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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노 군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때이다. 그 날이 마침 군대 복무라고는 하루도 해 보지 않은 김정일이 최고 사령관으로 된지 몇 번째 되는 날이었던 것 같다. 조선 중앙방송위원회 장기자 취재에 취재 길을 이어나가던 중 함경남도 금야군 인흥이란 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취재지에 나가기는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먼저 그곳 장마당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제일 잘 알 수 있는 곳은 그래도 장마당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방송과 텔레비에서는 귀 아프게 최고 사령관 김정일의 업적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지만 그런 게 일반 주민들한테는 먹힐 리 없다. 그날도 그곳 인흥 장마당은 김정일이 최고 사령관이 되었으면 되었고 말았으면 말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콩 한 두 되박을 가지고 뭘 바꾸려 나온 사람, 집에서 기르다가 먹일 것이 없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강아지를 안고 나온 사람, 팔겠다고 나온 사람보다 구경꾼이 많은 장마당이다. 그저 사람, 사람, 또 사람이다. 점심때가 거의 되었을 무렵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떡이며 두부, 음식물 따위를 들고 나왔던 사람들은 서둘러 감추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왜 그러는 것인가 장기자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아차 이거야 정말, 장마당이 한 눈에 보이는 용흥강 동뚝 에서였다. 갑자기 괴물들이 나타난 것이다. 계급장을 보면 분명 군대인 것 같은데 그 몰골을 보면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셋 중 두 놈은 신발조차 군대에서 내 주는 신발이 아니다. 공급받은 신발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동네 노인들이나 끌고 다니는 넓적 고무신이다. 그리고 한 놈은 그 행색이라고야. 틀림없이 웬 아가씨 것을 빼앗았을 것이다. 군모대신 웬 꽃 모자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름이 꽃 모자이지 필요에 따라 주저 없이 깔고 앉았던 모양이다. 마른 쇠똥도 그 보다는 나으리라. 소련 영화 “철의 흐름”에 나오는 꼬쥬흐 부대 병사들 같다. 거기다 대낮부터 어디서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모양인지 셋 다 시뻘겋게 달아 오른 얼굴에 그래도 뭔가 쩝쩝 씹으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뭔가 황급히 감출 것은 감추고 피하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세 콩나물 대가리들은 그게 오히려 더 기분이 좋았던지 사람들이 튀어준 길을 따라 가운데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의 장마당 한 가운데로 다가왔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모두 자기 물건들을 붙어 잡고 두려움에 떨며 그들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만은 그렇지 않았다. 가는귀가 좀 잡수신 모양이다. 주위가 그만 큼 술렁거리는 데도 장바구니를 앞에 놓은 채 뒤에 앉은 할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바구니에는 계란 여라 문 알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 모두가 조마조마해서 그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데 셋은 할머니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다행이 다른 쪽을 보느라 할머니는 못보고 지나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웬일이야 셋 중 제일 흉물스럽게 생긴 놈 하나가 갑자기 할머니의 계란 광주리에 달려들었다. 실로 병아리를 덮치는 독수리 같다고나 할까. 계란도 한두 개가 아니라 광주리 채 들고 달아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놀라 우 우 하는 순간 할머니 그제야 깜짝 놀라 돌아보는데 이를 어쩌나. 계란 광주리를 들고 도망치는 놈은 놈이고 할머니조차 그 먼지 바닥에 헛개비같이 끌려가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죽는다고 소리, 소리 지르고 광주리를 들고 도망치는 놈은 또 그놈대로 정신없이 도망치고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계란광주리를 든 그놈 문득 얼마 못가서 혀를 빼 물고 헐떡거리고 있었다. 누가 알았으랴 할머니 그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았던 모양인지 계란 광주리 밑을 밧줄로 자기 발목과 함께 연결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군대 놈이라 하여도 어떻게 할머니까지 끌고 도망칠 수야 있었으랴. 놈은 끝내 얼음판에 자빠진 황소같이 헐떡거리다 계란 광주리를 내 던진다. “에이 진짜 악질 노친네. 장군님 군대가 필요해서 그러는데 발목에 밧줄로 묶어 놓아?” 계란은 깨져 먼지 위에 흐르고 할머니는 허우적거리다 기가 막혀 통곡 한다. 그런데도 그 위대하다는 김정일 장군의 군대 놈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누런 이발을 드러내고 웃으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참으로 러시야 10월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활동하였다는 무정부주의자 비적 까자크 아따만 마흐노의 군대도 이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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