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과 백선엽.. 이 두 인물의 인생의 갈림길에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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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개월 전인가? 조금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6?25전쟁의 영웅.. 노쇠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했다. 황 대표는 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군사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백선엽 장군님을 뵌 자리에서 백장군님께서 우리 국방의 초석을 다지셨고 6.25 전쟁때 큰 공적을 세우셔서 전쟁이란 비극에서 대한민국을 살리신 밑거름이 되셨다고 했다. 유엔군이 많이 도와줬지만 백 장군님의 특히 다부동 전투에 대해 우리 젊은 사람들도 내용을 많이 안다고 전했다. 이에 백 장군은 안보가 굉장히 중요하다, 라고 나직한 말을 하셨다. 이어 황대표는 6.25전쟁의 주범중 한사람이고 북한군 창설에 기여한 김원봉이 우리 국군의 뿌리가 된다는 말들, 말들이 안되는 이야기들이 가슴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 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의 항일공로를 인정한 문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것이다 . 또 황교안 대표는 “백 장군님이 우리 군을 지켰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 명백한데 김원봉이라는 사람이 군의 뿌리가 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그렇게 말해선 안 될 장소에서 말을 잘못했다. 김원봉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백 장군은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우리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듣고 알고 있다고 말하고 별다른 반응이나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황 대표의 이런 행보에 대해 정치권 에선 김원봉의 서훈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대척점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920년생인 백선엽은 6?25전쟁의 영웅으로 불릴 만큼 김원봉과는 대척점에 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벡선엽은 6?25전쟁 당시 32세의 젊은 나이로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돼 국군을 지휘했다. 6?25전쟁 초기부터 북한에 밀려 후퇴하면서도 편제를 유지해냈고, 낙동강 전투에서도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는 말로 병사들의 사기를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런 공적이 있는 백선엽도 안타깝게 역사의 회오리를 피하지 못해 부정적인 삶의 굴곡을 남기게 된다.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을 잔혹하게 토벌한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점에서 친일행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도 백 장군을 친일행위자로 발표했다. 백 장군도 본인의 회고록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김원봉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지만 광복 후 월북해 북한 정권수립에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황 대표는 백 장군의 친일행적 논란에 대해서는 “군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큰 틀에서 이분이 우리나라 국방과 안보를 지켜왔다는 점을 그대로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부분에서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기서 황교안처럼 정치적 목적을 위해 눈치나 보면서 얍쌉한 이런 인사 말고 백선엽과 김원봉이라는 두인물을 살펴보면 정말 가슴아픈 우리 한반도의 역사적 흔적을 지울수 없다.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시간이 날때 이에 대해 써볼 요량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두분다 진심으로 우리 한민족을 위해 일했다는거, 적어도 그런마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겼다는건 확실하다.. 다만 그 방법과 했던 행동들과 과정이 달랐을뿐 그건 이 밑바탕의 원인이고 원흉이었던 일제시대 일본에 의해 그들을 그렇게 인생길을 걷게한 가장 큰 이유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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