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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영구평화론' 은 어떤 이유로 폭력적인가 ? (1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498 2019-09-08 01:39:33

오늘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많이 온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닌 태풍 링링 이 지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날은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어지는데..  막상 행동하기가 귀찮다.

나도 나이 먹었나 보다..ㅎㅎ


 

내 책상에 앉아서 맨 윗쪽의 책꼿이에 칸트의 오래된 책이 눈에 띤다.  그래서 책을 빼서 펼쳐 보았다.

아 하  그때 읽었던 책이구나.!!  단번에 생각이 난다.



이때 한생각이 머리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글을 써서 올려 보려 한다.




21세기가 이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막연히 생각하던 21세기는, 장밋빛은 아니어도 적어도 전쟁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이라크 전쟁, 리비아 전쟁, 시리아 전쟁 등 새로운 밀레니엄은 전쟁으로 얼룩졌다. 장밋빛 21세기가 이처럼 처참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인류에게 평화는 도달할 수 없는 꿈일까? 오래전 꿈을 꾼 철학자가 있었다. 칸트다. 칸트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영구평화론'이라는 설계도를 그렸다.


  

30년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이 체결되었다. 30년 전쟁(1618년~ 1648년)은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이다.



전쟁의 후유증은 혹독했다. 사망자만 무려 800만 명이었다. 평화 조약으로 한동안 평화의 시기가 흘렀다. 그러나 스페인 왕위 전쟁, 프랑스 혁명 등이 또다시 찾아왔다. 유럽인에게 평화 수립은 어려운 과제였다. 지식인들은 평화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칸트도 그런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다.

 

칸트에 앞서 프랑스의 생피에르는 '영구평화론'을 통해 국제연맹 및 국제재판소 설치, 분쟁 해결을 위한 무력 사용 금지를 주장했다. 생피에르는 국가 간 분쟁이 결국은 국내의 정치적 불안정성에 기인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생피에르는 군주들이 상호 인정하고 단결할 것을 주문했다. 군주의 단결을 촉구하는 그의 주장에 대해 계몽주의자들은 동의할 수 없었다. 루소는 국가 체제의 폐지 없이는 국가 간 항구적 평화는 요원하다고 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적 단일 체제 국가가 먼저 수립되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혁명이 수반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희생을 초래하기 때문에 혁명은 바람직하지 않다. 루소는 영구평화를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았다.



그는 책 <에밀>(이환 옮김, 돋을새김 펴냄)에서 인간에 대한 교육을 통해 평화적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권하고 있다.

 

 

칸트는 루소와 달리 세계평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만, '확정조항'이란 이름으로 몇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 두고두고 탈이 날 조항이었다. 칸트는 책 <영구평화론>(이*구 옮김, 서*사 펴냄)에 나온 제1 확정조항은 이렇다.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체제는 공화정체이어야 한다." 칸트는 어째서 세계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공화정을 주장하는가? 칸트의 대답이다. "전쟁을 해야 할 것인가 또는 해서는 안 될 것인가를 결정하려면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한데(이 체제 아래에서는 이런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이때 국민은 자신의 신상에 다가올 전쟁의 재앙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나쁜 경기를 감행하는 데 무척 신중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공화제가 아닌 체제 속에서는 전쟁 선포를 결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손쉬운 일이다." 여기까지는 납득할만하다. 그런데 칸트는 세계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써 모든 국가가 대의제 공화정체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대의제를 중요시한다. "대의적이지 않은 모든 정부 형태는 정확하게 말해서 형식을 갖춘 것이 아니다." 칸트는 대의주의를 지배방식과 통치방식의 세부항목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친다. "법의 개념에 부합하려면 통치방식은 대의주의의 형태를 취해야 하며, 그리고 이 체계 속에서만 공화정체가 가능하다." 대의제와 공화정체에 방점이 찍힌 칸트의 주장은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영구평화를 위한 제2의 확정조항은 이렇다.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체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칸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인 자연 상태에서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체제의 보호 아래 들어가듯이 국가들도 국제적 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각 국가의 국민들. 내가 주)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두가 공민적 체제와 비슷한 체제에 귀속되기를 요구할 수 있고 또 요구해야만 한다. 이때 비로소 각자의 권리는 보장될 수 있다. 이것은 아마 국제연맹일 것이다."





영구평화로 가는 과정은 순탄할까? 철학자 한 사람의 평화론으로 평화가 오진 않을 것이다. 칸트가 기대한 것은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 그 자체의 힘이었다. 칸트는 전쟁에 대해 인류문화를 진보시키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칸트의 또 다른 글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에서는 전쟁을 "사회 속에서 인간들 상호 간의 항쟁(적대. 본인 주)이야말로 자연이 인간들의 모든 소질을 계발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인간의 폭력성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한다. "자연은 처음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불완전한 시도들을 감행하게 하고, 결국 무수한 황폐화와 몰락을 거쳐 그들의 모든 힘을 고갈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그렇게 많은 불행한 경험이 없어도 이성이 이야기해줄 수 있었을 것으로, 즉 야만의 무법상태에서 벗어나 국가들 사이의 연맹을 이루는 것으로 몰고 간다."





칸트는 인간의 선의가 아닌 인간의 폭력성에 기대어 세계평화를 기획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그 동력은 인간의 '비사회적 사회성'이다. 비사회성은 인간의 잔인한 폭력을 의미한다. 인간은 폭력적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간은 타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성을 갖고 있다.


거대한 폭력이 휩쓴 후 인간은 자신의 비사회성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다시 잠재되어 있던 사회성을 발휘하여 이웃과 다른 국가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 칸트의 예측은 그대로 맞았다. 1차 대전의 잔인함은 사회성의 발현인 국제연맹을 촉발했고 2차 대전의 끔찍함은 국제연합(UN)을 가져왔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의 이념적 근거가 되었다. 칸트가 그리던 꿈이 100여 년 후에 실현되었다. 칸트의 평화론을 연구해 온 정태일이란 사람은 "칸트의 평화사상은 오늘날에도 매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칸트의 평화사상은 규범적 국제정치이론의 선구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평화이론의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적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평화가 온 것일까? 국제 사회는 평화적인가?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칸트 기획의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감히 칸트의 주장 하나하나를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칸트의 주장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체제는 공화정체이어야한다"라는 제1 확정조항이다. 칸트의 평화론은 20세기 후반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에 의해 민주평화론으로 발전된다.



도일은 칸트의 대의주의에 기반한 공화정체제 국가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해석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우호가, 자유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비자유국가 간에는 적대가 빈발하는 현상적 사실을 칸트의 평화론을 이용해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다.

 

이후 그의 '민주평화론'은 미국 패권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정치학자 이혜정의 논문 '민주평화론의 패러독스'(2008)에서 민주평화론에 대한 평가다. "민주평화론은 냉전의 종언 이후 미국 패권의 지구적 확산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고 9.11테러 이후에는 테러의 근본 원인을 미국이 체현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근대성의 부정으로 보는 부시 정부에 의해 대테러전쟁의 궁극적 승리를 보장하는 전략적 지침으로까지 설정되었다.



" 칸트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칸트 이론을 오용한 후대 지식인의 잘못이지 칸트가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변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론 자체에 오용의 가능성이 큰 요소가 처음부터 존재했다면 그것은 칸트 자신의 책임일 수 있다. 칸트 주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의 전쟁관이다.

    제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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