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
칸트는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전쟁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칸트는 전쟁이 인간성을 고양시킨다고 보았고 인류의 진보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간주했다.
칸트의 소논문 '추측해 본 인류역사의 기원'에는 "(전쟁은)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수준의 문화에서도 전쟁은 그 인류 문화를 계속 진보하게 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칸트는 인간의 소질을 모두 발현시키는 것이 인류의 최종목표라고 생각한다.
칸트는 이런 발현을 촉진시키는 핵심 매개체를 전쟁이라고 보았다. 게다가 칸트는 전쟁을 전제정치의 출현을 자제시키는 요인으로 보았다. 전쟁 때문에 국가가 국민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전제정치라는 독재로 흐르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철학자 김상봉은 논문 '법을 넘어서 영구평화론 비판적 고찰'(2005)에서 칸트 역사철학의 핵심 개념인 '비사회성의 사회성'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칸트의 주장을 비판한다. 칸트 당대 전쟁의 개념으로 구축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사람과 사람이 맞서서 소총 기껏해야 대포를 이용한 전쟁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세하기 어렵다.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전폭기를 이용한 공중폭격으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현대에서는 칸트의 비사회성을 통한 평화구축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전쟁의 참화를 통해 배우고 깨우칠 것이라는 칸트의 소박한 판단은 수많은 전쟁에 개입한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나 돌통은, 칸트 이론의 맹점으로 인간의 '망각'을 말하고 싶다. 아무리 처참한 전쟁이어도, 수십 년 뒤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가 사회의 다수가 된다.
전쟁에 대한 칸트의 찬양은 중국에 대한 비난에서 절정을 이룬다. 칸트는 중국에서는 모든 인민들의 자유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인민의 자유가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 중국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국가가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철학연구자 나종석은 논문 '칸트의 자율성 도덕론과 동아시아'(2016)에서 칸트의 이 같은 의외의 면모를 잘 지적하고 있다.
칸트에게 전쟁은 단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이론 전체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다. 인간의 소질 계발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 전쟁을 통한 전제정치의 억제, 전쟁을 통한 국민적 자유의 신장, 국가와 국가 간 전쟁을 통한 비사회적 사회성의 실현, 이런 일련의 역사적 계획이 '섭리'라는 칸트의 주장에 대해 나종석은 과도한 전쟁 찬미라고 비판한다. 결국 부시의 침공을 정당화한 '민주평화론'의 씨앗은 칸트 자신이 뿌린 것이다.
세계평화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 국가 간 전쟁이 아니다. 서구 국가 간 전쟁이 사라진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제3세계로 대변되는 비서구와 서구의 주축 세력인 미국 및 미국 우호 국가 간 갈등이다. 그런데 칸트의 사상에는 비서구와의 마찰을 유도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내장되어 있다. 더군다나 갈등 요소들이 '영구평화론'과 결합되면서 갈등의 수준은 더욱 격화된다.
서구는 식민주의를 진행시키면서, 예를 들어 처칠의 인도에 대한 대량 학살과 그의 인도인에 대해 개,돼지와 같이 평가 생각한것들... 식민지 민중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려 했다. 인간으로 보게 되면 자신들의 식민주의를 정당화시킬 수가 어렵다.
식민주의를 위한 맞춤 담론이 오리엔탈리즘이었다. 전제주의에 고통받고 자유는 전혀 없는 비서구, 비인간적 문화, 창의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수천 년간의 정체 상태, 이런 것은 서구가 비서구를 향해 투사한 이미지다.
자신들이 만든 이미지를 의심 없이 믿었다. 비서구인들을 향한 이런 조롱에서 비서구는 서구의 침탈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비인간이었기에 이들을 향한 무제한적 폭력은 은폐되었다. 칸트 역시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칸트는 개별적 역사가 아닌 거시적 보편사를 구상했다. 거대담론적 보편사를 정식화한 최초의 문건이 1784년 발표한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다. 이 글을 통해 칸트는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 역사를 인류의 보편사로 정립하려 한다. 파편적인 역사를 특정한 관점의 보편사로 꿰맞추고자 하는 지점이면, 칸트의 오리엔탈리즘이 돌출한다.
역사학자 김기봉은 논문 '독일 역사철학의 오리엔탈리즘'(2004)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문제는 칸트가 이러한 보편사의 과정은 오직 문명화된 유럽인들만이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보편사의 과정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본점이다." 즉, 역사의 주체는 오직 유럽인이라는 독선이 칸트의 보편사 구상에 깔려 있다.
칸트는 비서구 민족의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을까? 칸트는 "그들(유럽인들)에 의해 인식되지 않은 민족의 역사는 미지의 영역이다. 또한 그 이외의 국민에 관한 역사는 단지 이러한 문명화된 민족과 접촉하게 돼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라고 자신의 논문에 적고 있다. 유럽인에 발견되고 나서야 보편사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지극히 오만한 입장이다. 김기봉은 "칸트는 서구중심으로 설정한 보편사적인 위계질서의 말단에 비서구인들을 위치시킴으로써 그들을 역사 없는 민족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칸트의 '계몽' 역시 문제적이다. 칸트는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계몽이란 마땅히 그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는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뒤이어 미성년 상태의 자들은 계몽된 타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식민주의가 비서구를 향해 확산되는 시점에서 이런 인식은 식민주의에 대한 지지 담론으로 전환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김기봉은 이렇게 말한다. "계몽과 지배(계몽된 타인의 지도. 필자 주) 사이의 연결의 결과 칸트가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서구 자체 내에서는 계몽을 야만화하는 계몽의 변증법으로 나타났고 비서구에 대해서는 타자인 서구에 의해 자신에 대한 역사적 정체성이 규정되는 오리엔탈리즘의 인식론을 낳았다.
" 칸트적 '계몽'은 서구가 비서구인에 대한 야만적 계몽에 나서게 만든 동력의 하나였던 것이다. 실상 야만적 계몽은 없다. 야만적 폭력의 에두른 표현일 뿐이다.
박배형 서울대 교수는 근대문명이 비서구 세계로 전파되고 확장되는 과정에 동반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칸트의 평화론 사이에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고 역설한다. 칸트가 제국주의를 대놓고 옹호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칸트 사상의 특정 요소가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논문 '영원한 평화 그리고 제국주의'(2016)에서 "칸트는 야만인들의 '무법적 자유'를 '경멸'하며 이를 '인간성의 조야함'으로 여기면서 그러한 '추락된 상태에서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당대 유럽의 정치형태와 제도를 보편적 기준이자 모델로 설정한다.
야만인들을 어떻게 여기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라며 유럽을 기준으로 설정한 칸트의 오류를 지적한다. 작은따옴표 속의 표현은 비서구를 향해 칸트가 직접 쓴 표현이다. 비서구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사용한 단어로부터도 유추해볼 수 있다.
비서구를 야만으로 보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은 지독하게 뿌리 깊고 끈질기다. 21세기 들어서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높았던 리비아를 향해, 13억 인민을 단시간에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3세계에 대해서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중국을 향해, 극빈층에게 300만 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국가최우선 사업으로 진행하는 베네수엘라를 향해 던져지는 서구의 의심은 바로 서구의 비이성적인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지점에선가 칸트를 만나게 된다.
비서구의 미개성(?)에 대한 칸트의 반감은, 마침내 인종주의로 전개된다. 칸트는 "인간의 최고의 완전성은 백인종에게서 발견된다. 황인종인 인도인들은 보다 적은 능력을 소유한다. 흑인들은 훨씬 여기에 못 미친다.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일부는 가장 지체되어 있다"라는 주장까지 내뱉는다.
누가 미개하다고 판정하는가? 18세기 중반까지도 인도의 생산력은 영국에 못지않았다. 중국 역시 19세기 중반 제국주의의 침략 이전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칸트의 비서구에 대한 야박한 평가를 무지 때문이라고 말하고 넘기기는 애매하다.
당시 비서구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의 경우 수백, 수천 권의 여행기를 읽는 경우가 흔했다. 칸트도 지리학과 인간학을 개설해 수십 년간 강의해 왔다. 무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 개인의 비판은 단호하다. "칸트의 유럽중심주의 내지는 유럽우월주의, 그가 지닌 인종주의적 편견, 유럽근대문명의 세계적 확산과 바로 이 확산의 정당성에 대한 그의 확신, 문명화와 인류의 궁극적 목적을 위한 전쟁의 불가피성 및 필요성에 대한 긍정은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또는 정당화하는 요소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나,돌통 이라는 사람은 생각한다."
칸트에 대해서 너무 혹독한 평가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던 칸트는 계몽의 수호자로서의 칸트다. 그런데 몇몇 한국 연구자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칸트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연구하는 해외 연구자 중 한 사람인 마이클 대쉬(Michael. C. Desch)는 논문 'benevolent cant? Kant's liberal imperialism'(2011)에서 칸트를 이렇게 평가한다. "칸트 독해를 통한다면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실천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변호될 수 있다."
대쉬의 논문 결론 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유주의(liberalism)와 공격적 행위(비서구에 대한 폭력적 개입-필자주)는 양립 가능할 뿐만 아니라 흔하게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들과 연결된다. 우리는 이제 그 사상가들의 목록에 칸트를 추가해야만 한다."
* 마이클 대쉬의 논문 'benevolent cant? Kant's liberal imperialism'에서 'cant'는 저자의 언어유희이죠. 'kant'를 의도적으로 'cant'로 표기해 자비롭지 않다는 내용을 암시하죠.ㅎㅎ.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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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돌이 드뎌 쫏겨났는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