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19편.. 북한건국과정.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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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파 입북 ◎김일성 집권 터 닦은 「정치일꾼」/소 지시로 5차례 2백여명 평양 도착/50년대초까지 당·행정기관 요직 장악 해방초기 소련군정을 지원하고 김일성 빨치산파와 함께 북쪽을 통치해나간 중심세력은 소련파였다.
정률(해군군관) 최종학(소련군 대위) 최흥국(소련군 대위) 최표덕(소련군
중좌) 정학준(소련군 군관) 최왈렌친(소련군 상위) 등 소련군의 성원으로
45년 8월9일부터 시작된 대일 전투에 참가한 인사들과 박창옥·한일무·이학용·김원길·김성훈 등과 같이 대 일전에 앞서 북한에 파견돼 첩보공작을 하던중 해방을 맞이한 인사 등이다.
그는 조만식 선생을 도와 평안남도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김용범·오기섭·박정애 등이 조선공산당 분국을 조직할 때도 산파역을 맡았습니다.
조만식 선생도 그가 소련 25군 정치부내의 유일한 한인인데다 정치적 식견이 높고 성격이 원만해 인간적으로 그를 신뢰했습니다.
고당이 45년 10월 하순께 고향에서 잡아온 꿩 두마리를 들고 찾아와 북한 정국을 논의하기도 했었다는 말을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강소좌의 부인 루드밀라 여사(67)로부터 들었습니다.
또 전동혁·조기천·임하·김세일 등 문필가들은 평양역전에 소련군 신문사를 조직하여 한글신문을 발행,인민들에게 「김일성장군」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지요. 전동혁은 45년 10월14일 「김일성장군 환영대회」의 김일성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 사람이지요.』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민족민주진영·기독계 인사·젊은층 등의 소비예트화 거부와 가짜설, 김일성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만만치 않더군요.
도착과 동시에 나는 소련 25군 정치사령부에서 통역 및 내근요원을 맡았기 때문에 당시 북한정세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지요. 소련군 수뇌부는 조만식 선생을 끌어들이는데 안간힘을 쏟았지요.
그러나 조만식 선생은 자신의 민족·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많은 지식인들과 지주·청년층이 그를 추앙했습니다.
이에 당황한 소련군 지도부는 소련정부에 공산당 조직과 정치·행정경험이 있는 소련의 한인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요. 이 그룹이 바로 소련파 제3진에 해당됩니다.』
남도당위원장·군총정치국장) 강상호(내무성 부상) 이춘백(군정찰국장) 김
택영(사법성 부상) 기석복(로동신문 주필) 김승화(내각사무국장·건설상)
김렬(함북 도당위원장·공업성 부상) 허빈(황북 도당위원장) 김동철(최고
재판소 부소장) 김찬(조선은행 총재·재정성부상) 김영수(도인민위원회
위원장) 박영(도당위원장) 정국록(민주조선 주필·정전위 수석대표) 고히
만(임업상·중앙당 부장) 박창식(자강도인민위원장) 안동수(사단정치부장) 이동건(외무성 부상) 등이다.
(최고검찰소 부소장) 박원무(전기성 부상) 김영삼(전기성 부상) 김학인
(내각호위처장) 박일(김일성대 부총장) 김이노겐치(건설성 부상) 천치억
(도로국장) 이문일(조선통신사 사장) 정철우(기갑여단장) 장주익(과학원
서기장) 등 36명이다.
박라오니드(수송대 대장) 김칠성(해군참모장) 장돈야(여·김일성대 교수)
강소피아(여·당중앙학교 교원) 심수철(인민군 간부국 부국장) 이황용(인
민군 병기국장) 김용수(출판지도국장) 박일영(체코대사) 김광(무역성부상) 허익(중앙당학교장) 등이다.
예를 들면 내무상은 연안파의 박일우에게 넘기고 부상겸 정치보위국장은(후에 사회안전성) 소련파인 방학세를 시켰지요. 48년 1차내각때 고려인이 부상을 차지하지 못한 성은 하나도 없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당기관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조선공산당 분국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6·25까지 「팔도장군」으로 불리는 각 도당 위원장은 대체로 고려인이 점했습니다.
이와 함께 당중앙에서도 조직부장 허가이,선전선동부장 박창옥 등이 장악하고 있었지요.』
파북 소련파 인사중 현재까지 북한에 남아있는 인사는 방학세(중앙재판소장) 김봉률(인민군 대장·인민무력부 부부장) 김학인(조선혁명박물관 관장) 등 3명뿐이다.
장철(전인민군 중장·전선후방사령관) 김세호(전 인민군 대좌·원산 해군군관학교장) 등 5명은 90년 5월과 8월 김일성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김일성으로부터 당시 군인이었던 이춘백등 4명은 1계급씩 명예특진을 받기도 해 많은 동료 소련파 인사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이상. 끝. 제 20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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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술 다 깨셨어요? 호호.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푸세요?
그리고 술마시고는 홧김에 글 쓰면서 남을 욕하고.... 후....
난 님이무서워서 며칠 혼났어요,
다시는 술 마이고 글 쓰지마세요.
그리고 술도 적게 마이세요.
술 한데 이기지도 몬하면서...ㅋㅋㅋ
술 두병은 마시나요?
아님 세병 정도?
우리 훗날 같이 술 한잔 마셔요.
친구중에 싸우면서 정이 든 칭구가 참 좋아요.
상대방 속을 빤히알기때문에 서로가 실수가 없고 실망도 없으니까요..
그럼 약속해요... 굿빠이..